우리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은 인물 이야기

[아가와 책 70] 우리교육의 <잠든 세상을 글로 깨우다>와 나무숲의 <건축가 김수근>

등록 2007.02.09 10:09수정 2007.07.0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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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인물 이야기', '위인전' 하면 페스탈로찌, 아인슈타인, 링컨 등 외국의 유명인들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과학 관련 일을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파브르 곤충기와 퀴리 부인을 읽으며 나는 과학자의 꿈을 안고 자랐다. 지금은 과학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예전의 이러한 관심은 성장한 내게 어설픈 탐구심을 심어준 듯하다.

이처럼 어릴 때 읽은 훌륭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평생토록 기억에 남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최근 어린이 도서 시장에 불어 온 '한국 인물 이야기' 열풍은 긍정적이다. 머나먼 외국의 유명한 인물들 얘기도 좋지만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꿈을 꿀 수 있다.


a 책 <잠든 세상을 글로 깨우다>

책 <잠든 세상을 글로 깨우다> ⓒ 우리교육

지금 소개하려는 책들 또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장식한 이들의 생애가 담긴 '우리 인물 이야기'다. 우리교육에서 펴낸 '우리 인물 이야기' 시리즈는 실천하는 지성인 리영희, 길 위의 신부 문정현,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아름다운 농부 원경선 등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범하지 않은 현대사의 인물들을 소재로 한다.

이 시리즈는 참교육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윤영규 선생님, 스스로 가난을 자처하면서 불우한 이웃들에게 의술을 펼친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거미 하나만을 연구하면서 살아 온 남궁준 선생님 등 좀 생소하지만 열심히 살아온 인물들을 다루고 있어 아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편집한 이들은 이 인물 이야기를 엮으면서 '평생을 한 가지 일과 뜻에 매달린 우리 시대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였다. 한 마디로 쉽게 싫증을 느끼는 요즘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저것 호기심은 많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제대로 찾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내용이 많다.

그 중 첫 번째 도서인 <잠든 세상을 글로 깨우다>는 리영희 선생님이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너무 가난해서 밥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그가 군대에 가면서 세상을 향해 열린 눈을 갖게 된다는 얘기가 독백처럼 쓰여 있다. 책의 주인공이 곧 화자인 시점을 취하여 마치 리영희 선생님 자신이 직접 말하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구조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군부 독재의 참상을 바깥 세상에 알리는 기자가 된 리영희 선생. 그는 자신이 가진 천부적 능력인 언어적 재능을 활용하여 잠든 세상을 깨우고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며 살았다. 그로 인해 옥고를 겪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멋진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a 건축가 김수근

건축가 김수근 ⓒ 나무숲

하나의 일에 매진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다른 분야의 인물로 건축가 김수근 씨가 있다. 나무숲에서 나온 '예술가 이야기' 시리즈 중 이 건축가의 삶도 그려져 있는데 우리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이다. 이 시리즈는 음악, 미술, 연극, 국악, 사진 등 예술의 각 분야에서 20세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를 한층 북돋운 예술가의 삶을 전한다.

책 <건축가 김수근>은 이상주의적이고 열정적이었던 한 청년 건축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보다 성숙된 건축물을 설계하고 발전하는지에 대해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이야기한다. 세운상가처럼 도약적이면서 현실과 조금 걸맞지 않은 작품을 만들던 김수근. 그는 다양한 분야의 건축물을 세우면서 점차 정신적인 성숙을 이루고 자연친화적인 건물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문화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막히지 않은 공간을 창출하도록 다양한 시도를 펼친 '공간 사옥', 콘크리트와 철재 같은 인공 구조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산과 조화를 이루며 낮은 모습으로 한계령에 웅크리고 있는 '한계령 휴게소' 등은 그의 빛나는 건축 업적 중에 속한다.

해마다 춘천 인형극제가 열리는 강원 어린이 회관은 1979년에 지어진 낡은 건물이지만 붉은 벽돌과 자연 친화적인 구조로 현재까지 독특한 위용을 뽐낸다. 아름다운 호숫가의 경관을 그대로 볼 수 있게 낮게 설계된 무대와 층층이 올라가는 관중석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건물도 이렇게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김수근은 간암 진단을 받은 마지막까지도 공사 현장을 다니며 자신의 일을 향해 매진한다. 쉰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병상에서 서울역 앞의 게이트웨이 타워를 설계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이 세상을 보낸 김수근. <건축가 김수근>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지만 어른이 함께 읽으며 아름다운 생애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책이다.

멋진 삶을 살아간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된다. 아이들은 인물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기 나름의 역할 모델을 세우고 그들처럼 살고 싶은 꿈을 꾼다. 굳이 먼 외국의 위인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 현실에서 가까운 곳에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은 존재한다. 그들의 모습을 자주 아이에게 들려주자. 그러면 아이는 나름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올곧은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잠든 세상을 글로 깨우다 - 실천하는 지성인 리영희

장주식 지음, 원혜영 그림,
우리교육,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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