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기를 깎는 모습을 그린 공재의 풍속화녹우당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활동한 윤두서는 조선 양반사회에서 하층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새로운 장르의 풍속화를 창조한 화가라 할 수 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자화상>으로 대표되는 사실주의적인 작품과 함께 풍속화의 선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작품 중에 <채애도(採艾圖)>, <짚신짜기>, < 시차도(施車圖)>, <석공도>등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들 풍속화는 본격적인 조선시대의 풍속을 다룬다는 점 뿐만 아니라 농공(農工)과 서민생활을 그림의 소재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사대부 출신이었던 윤두서가 이처럼 민중적인 것을 소재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은 공산기예(工産技藝)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가졌던 그의 실학성과 박학(博學)을 추구하는 집안의 학문경향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까지 회화에 나오는 인물의 주인공은 대부분 선비와 신선 아니면 고작해야 미인 정도였던 것을 볼 때 이러한 서민을 중심으로 한 인물의 등장은 조선시대 회화사에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하였다.
공재에 이르러 나물 캐는 아낙네와 짚신 삼는 농부가 선비의 자리, 신선의 자리를 밀어내 당당히 주인공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공재의 <짚신삼기>와 <나물캐기>는 조선 사회에서 서민의 위치가 전과 다르게 주목되고 있고, 그러한 시대조류를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