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기감 "청명, 한식도 한국에 뺏길라!"

24절기 둘러싼 한중문화 전쟁

등록 2007.04.12 21:53수정 2007.04.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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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고구려유적이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으로 편입되면서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고대사연구에 대한 자극제가 되었던 것처럼 2005년 11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는 중국사회에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5.4운동과 문화대혁명과정에서 전통은 철저하게 봉건적 요소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현대화과정에서도 전통문화는 발전의 걸림돌로 인식되는 분위기였다. 이런 중국사회에 일대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바로 '강릉단오제 충격'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염제(炎帝)와 황제(黃帝)도 중화민족의 시조라며 106m의 세계 최대의 조각상으로 깨어났다.

2003년부터는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통해 설화와 전설시대를 포함한 중국문명의 뿌리를 찾아낸다는 분위기가 일었다. 또한 매년 6월의 둘째 주 토요일을 '문화유산의 날'로 지정하여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계승하겠다고까지 한다. 중화민족주의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으려는 정치적 전략까지 더해져 지금 중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열기가 높다.

a 중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된 '청명'에 관한 시.중국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전통문화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된 '청명'에 관한 시.중국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전통문화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 김대오

이런 중국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일반인들의 풍습 속에서는 거의 사라진 청명과 한식에 대한 중국 언론의 보도도 예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풍습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절기의 유래만 주로 소개하는 정도이다.

4월 5일 전후는 24절기 중 한식(寒食)과 청명(淸明)이 하루를 사이에 두고 연이어 있다. 하루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을 빗대어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기도 하다.

춘추시대(B.C770-B.C403) 진(晋)나라의 왕자 중이(重耳)가 전란과 박해를 피해 도주하는 중에 극도의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개자추(介子推)라는 신하가 자신의 허벅지살을 도려 내여 그를 구해주었다.


훗날 왕위에 오른 중이는 개자추를 크게 포상하고자 하나 그가 면산(綿山)에 은거하여 찾을 수가 없었다. 개자추를 면산에서 불러낼 방책을 궁리하던 중이는 결국 면산에 불을 놓기로 하였다. 그러나 불을 피해 면산을 빠져 나오리라는 기대와 달리 개자추는 늙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버드나무 아래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중이는 은혜를 갚지도 못하고 개자추를 죽게 한 자신의 과오를 회개하기 위해 개자추를 기념하는 날을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한식(寒食)이다. 불 타 죽은 개자추를 위로하기 위해 이날은 사람들에게 불을 피우는 것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게 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중이가 이듬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산에 올라가니 개자추가 죽었던 곳의 버드나무가 다시 소생하여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버드나무에 '청명류(淸明柳)'라는 벼슬을 하사하고 한식 다음날을 청명으로 제정하였다고 한다. 개자추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를 추도하던 풍습이 청명절에 조상의 산소를 찾고 애도를 표하는 날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청명절이 한식절을 대신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 유물사관에 입각한 우상숭배와 종교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토장(土葬)의 장례방식이 간편하고 경제적인 화장(火葬)으로 바뀌면서 청명절의 풍습도 크게 달라졌다.

한식과 청명을 맞이하는 중국의 도시민들은 조상의 분묘가 없어지면서 조상에 대한 성묘보다는 애국열사나 혁명용사의 기념비를 찾거나 가족단위로 야외로 나가 봄기운을 즐기는 분위기이다. 청명과 한식 즈음에 나무를 심고 조상의 묘지를 돌보고 하는 전통은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더 잘 보존되어 있는 셈이다.

주(周)나라에 이미 달의 변화에 따른 음력을 만들어내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안해 낸 24절기는 사계절에 여섯 절기씩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과학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다양한 전통문화가 결합되면서 그 하나하나가 문화유산으로서의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이 전통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자신들의 전통절기 챙기기에 나선 시점에서 24절기뿐만 아니라 설, 정월대보름, 추석 등에 대한 한중 양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앞으로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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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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