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정치보다 재미있다"

[取중眞담] '자유' 찾아 대선 출마 포기한 정운찬 전 총장

등록 2007.04.30 20:33수정 2007.05.0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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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0일 오후 2시 세실 레스토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정운찬 전 총장이 대선 출마 포기선언 기자회견을 한뒤 입을 굳게 다문채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0일 오후 2시 세실 레스토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정운찬 전 총장이 대선 출마 포기선언 기자회견을 한뒤 입을 굳게 다문채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4·25 재보선은 지원할 수 없다. 이번 학기까지 강의하는 것은 확실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정치해도 학기 끝나고 시작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치선언하고 학생들 만나면 미안하다.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할 수 있나? 나는 그렇게는 못 산다… 심대평 전 충남지사는 동향에 서울대 상대 선배다. 그분 사무실에 들를 수도 있지만, 거기 가면 정치선언이다. 그런데 지금은 행동이 신중해야 하지 않나 그러다 망하면 할 수 없다. 나는 자유주의자니까, 어떤 때는 신중하고 어떤 때는 내 맘대로 한다."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 8일전인 지난 22일 저녁,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기자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대선출마 문제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는 이 자리에서 '출마를 결심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 "정치를 하게 되면 내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 같다. 최근에 국회의원들을 많이 만났는데 '선거 과정에서 내 생각을 무지하게 많이 양보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자신이 자유주의자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인정받는 경제학자로, 존경받는 서울대 총장으로 '맘껏 살아'왔는데, 정치를 하게 될 경우 자신의 소신과 다른 말들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론일 수 있으나, 그는 이날 자신의 불출마에 대한 의중을 상당부분 드러냈다.

"그냥 학자로 살겠다... 원칙 지키면서 정치할 능력 없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선 출마 포기선언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선 출마 포기선언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정 전 총장은 불출마 선언 전날인 24일 '20년 지기'이자 '정치적 후견인'인 김종인 민주당 의원을 만나서도 이같은 뜻을 밝혔다. "원칙을 지키면서 정치권을 주도적으로 추슬러서 뭔가 타협해 가면서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그만두려 한다. 그냥 학자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었다. 정 전 총장이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소중하게 여겨온 원칙을 지키면서 정치세력화 추진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이같은 차원이다.


지난 1월 불출마를 선언했던 고건 전 총리가 "결단하라고 하더니 막상 움직일 때가 되니까 주춤 거린다"며 기성정치인들에 대한 불만감을 나타냈던 것과는 다른 맥락이다.

정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기자회견 직전에 처음 알려질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범여권의 대선 후보로 본격 거론됐던 12월부터 최근까지 출마여부 자체를 놓고 고민해왔다. 그의 주변인사들에 따르면 정 전 총장은 4월 중순쯤 불출마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의원은 지난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제 그에게 출마하라 그런 소리는 자주 안 한다"고 말했다. 그 무렵 김 의원은 정 전 총장에게 "4월 15일까지 결심하지 않으면 더 도울 수 없다"고 했었다. 4·25 재보선을 방관할 경우 사실상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판단이었다.

정 전 총장은 결국 재보선을 수수방관했고, 그 무렵부터 그를 대선후보로 밀어왔던 의원들에게서 다른 소리가 나왔다. "정운찬에게 기대했지만, 결국 타이밍을 놓쳤다. 지금 나서도 지지세를 얻기 힘들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 뒤부터는 사실상 불출마를 위한 주변정리 작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총장은 총장시절부터 자신에 대한 기사를 꼼꼼히 챙겨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선 후보로 언급되면서부터는 단 한줄이라도 자신이 언급된 기사들을 체크해왔다. 언론의 '관심'에 단련되지 않은 비정치인에게 '충남 지역 정서에 기대고 있다', '소신없이 재고 있다'는 등의 보도들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는 그를 찾아간 기자들에게 "확인하지 않고 쓰는 기사들이 많다"는 어필을 하곤 했다.

그의 가족들도 그가 정치에 나서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출마하면 국민들이 찍어주지 않겠나, 그런데 정말 나라 잘 이끌 자신과 비전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전자는 후자를 말하기 위해 깐 자락이고, 방점은 후자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2% 안팎 지지도도 큰 부담

물론 그의 현재 지지도가 2% 안팎 수준이라는 점도 그가 불출마를 결심한 주요 배경이 됐다. 그는 자신의 스승으로, 1995년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던 조순 전 시장과 자신은 다르다는 판단이었다. 처음에는 인지도 5%수준이었던 조 전 시장은 DJ의 지원과 함께 본인의 카리스마로 당선됐지만, 자신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22일 저녁자리를 끝내면서, 야구광인 그에게 "정치가 재미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는 "보는 건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야구가 정치보다 재미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대학시절 자신에게 동창회 장학금을 준 사람이 두산그룹의 박두병 초대회장이었다는 점이 인연이 돼 응원하기 시작했다는 두산베어스의 승패를 꿰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학자의 길을 계속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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