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달은 다음날 일찌감치 일어나 새벽밥을 지어먹고 모인 장정들을 데리고 하루 종일 활쏘기와 병기 쓰는 연습을 반복시켰다. 점심 무렵, 마을 밖으로 보낸 척후가 급한 소식을 전해 왔다.
“남산 너머에 알 수 없는 무리들이 모여 있는데 그 수가 천 여 명이나 됩니다. 때로 밤을 새워 불을 환하게 피워놓고 괴성을 지르는 것이 흉흉해 보이기 그지없습니다.”
두레마을의 장정들은 삼백 명이 남짓할 따름이었다. 목책위에 올라서 달려드는 적을 향해 돌이라도 떨어트릴 사람을 모아도 사백 명이 채 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하달은 여전히 싸워볼 만한 상대라고 여겼다.
“더 살펴 본 것은 없느냐?”
“그들이 쓰는 말이 괴이하여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오를 짜서 흉흉하게 생긴 병기들을 휘두르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이곳으로 치달아 올 것만 같았습니다.”
하달은 척후가 전해온 소식을 마음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척후가 온 거리는 반나절이 걸리는 거리다. 밤을 새웠다는 것은 해가 뜰 때는 쉬고 밤에 들이치겠다는 심산이다. 적들은 밤에 한차례의 기습으로 이곳을 무찌르겠다는 심산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밤에 싸움을 걸어온다는 건 여러모로 불합리한 일이었다. 불을 들고 있으면 화살의 표적이 될 것이 뻔했고, 경계만 잘 되어 있다면 어둠 속이라도 넓은도랑을 넘어 목책으로 접근하는 걸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게다가 그 놈들은 사람을 보내어 이곳을 염탐하기까지 했다.’
하달은 잠시 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무릎을 탁 쳤다.
‘그 놈들이 밤에 몰래 저 도랑을 메운 뒤 새벽에 목책으로 바로 들이칠 생각을 한 것이구나!’
목책위에서 경계를 서던 이들이 이를 보았다고 해도 도랑이 파여진 너머까지 활을 쏘아 넘길 수는 없을 터였다. 목책을 나서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기에는 사람의 수도 적었고 장정들의 전투 경험도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하달은 장정들 중 가장 민첩한 자들로 스무 명을 골라 일러두었다.
“너희들은 제사에 참여하지 말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라. 해가 진후에 너희들을 다시 부를 것이니라.”
“장로님, 그런 불경스러운 짓을 하면 저희에게 액운이 닥칩니다.”
장정들은 손을 내저으며 반감을 표했고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다.
“해가 지면 적이 올 텐데 그들이 하는 짓을 목책위에서 두고만 볼 텐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허나 그놈들은 잠도 없답니까? 밤에 올 일은 없을 터이니 제사에 참여하는 것을 막지 마시오소서.”
결국 하달이 가려 뽑은 스무 명의 젊은이 중 세 명만이 남아 버리자 하달은 모든 장정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전략을 설명했다.
“해가 지면 분명히 적은 와서 도랑을 메우려 할 것이네. 서쪽 숲에 몸을 숨기고 기다리다가 기습을 가해 저들의 사기를 꺾을 것인데 나설 용사가 없는가?”
장정들은 웅성거리며 대다수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기습의 위험성보다도 앞서 다른 장정들과 마찬가지로 부정을 타는 것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제사만 지내 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적이 크고 강대하지만 우리의 실상을 알고 있으니만큼 얕보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척후가 전해온 말로 적이 밤에 이르러 흉계를 꾸민다는 것쯤은 간파할 수 있었다. 그 틈을 노려 적의 기세를 꺾겠다는 것인 즉!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결국 하달의 설득으로 인해 열명의 장정을 더 끌어 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달이 애초 생각한 스무 명에서 일곱이나 모자란 숫자였다. 게다가 모인 장정들도 하달의 결정을 그리 미덥잖아 하는 눈치였다. 하달은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줘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누가 가서 마악 장로를 불러오너라.”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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