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212회

등록 2007.06.12 08:29수정 2007.06.12 08:29
0
원고료로 응원
그런 것을 알기에 광나한은 좌등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빠르게 공격해 들어갔던 것이다. 이번 역시 소림오권이었는데 표흘한 움직임이 용권연신(龍拳練神) 중 금룡헌조(金龍獻爪)다. 용이 앞발을 모아 좌우로 내리치는 모습. 좌등이 옆으로 돌았다. 그러자 금방 반룡탐조(盤龍探爪)의 초식으로 바꾸어 허리를 긁어온다.

츄츄--츠츠--


한수 한수가 하나같이 살짝이라도 긁히면 살점이 뚝뚝 묻어날 정도의 위력적인 공격이다. 좌등의 몸이 비스듬히 뉘이며 다시 빠르게 몇 바퀴 돌면서 광나한의 공격권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났다.

"정말 소림의 권법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군."

좌등이 팔을 두세 번 좌우로 펼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확실히 본래의 위력과 모방한 것과는 차이가 엄청나다. 수박 겉핥기로 배운 자들이 펼치는 소림권법이야 젊은 시절 수없이 보았던 터. 허나 지금의 위력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좌등이 밀리는 상황을 바라보는 좌중의 시선은 뚜렷하게 세 가지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추태감과 상만천 측의 안도하는 시선과, 또 하나는 일부 제자와 함곡일행의 안타까운 표정, 그리고 육파일방과 그 밖의 인물들의 애매한 표정이었다.

추태감이나 상만천 측이야 그렇다 해도 외부적으로는 언제나 어깨를 나란히 하던 육파일방이 애매한 표정을 짓는 것은 뜻밖이었다. 이미 허명뿐이라 해도 소림의 위명이 아직도 무시할 것이 아니라는 경각심과 시기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소림의 각원선사와 지광대사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어린 표정이 뚜렷했다. 지광의 경우에는 감격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위로부터 신망을 잃고 무시를 당하기 시작한 소림의 무공이 본래 이런 것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주고 있는 광나한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파문을 당했다 하나 지광으로서는 사문의 사형이다.

허나 금방이라도 피를 토하며 쓰러질 것 같은 좌등이 위태롭기는 하지만 계속 견디어 내자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좌등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저렇듯 권각법으로 안된다면 빨리 창을 잡아야 하지 않는가? 저렇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말 것을 무슨 배짱으로 맨몸으로 광나한의 권각법을 상대해 보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황은 더욱 급변하여 몇 초 지나지 않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광나한 역시 자신이 매우 유리함에도 좌등에게 조그만 타격도 입히지 못한 것이 오히려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는지 지금까지의 정통적인 소림무공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초심(初心)을 잊어버리고 승부를 서두르는 기색이었다.

그의 공격이 날카롭게 변하며 치고, 할퀴고 잡아채는 형태로 변했다. 좌등의 급소만을 노리는 그의 공격은 매우 교묘하고 현란했다. 소림의 금나수인 금룡십이해(金龍十二解)다.

좌등의 신형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보법을 밟으며 이리저리 피하며 간간이 주먹을 날리기는 했지만 위협적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광나한의 공격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어서 광나한을 더욱 초조하게 만드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었다.

'얼마나 견디는지 보자.'

광나한이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금방이라도 격중될 것 같은 자신의 공격이 자꾸 아슬아슬하게 빗나가자 더욱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소림의 절기(絶技)가 파상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금룡십이해인가 싶더니 무상각(無上脚)으로 좌등의 혼을 빼놓았다.

타타닥닥---!

신형을 허공에 띄운 채 연속적으로 십여 차례의 발길질이 좌등의 전신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것마저 빠르게 물러나면서 가까스로 피하자 급기야는 나한십팔수(羅漢十八手)까지 펼쳐졌다. 소림의 칠십이절기(七十二絶技) 중 몇 가지나 익힌 것일까?

"으흡!"

좌등도 더 이상 피하기 벅찼던지 나직하게 신음을 흘렸다. 하체를 휩쓸면서 상단과 중단을 노리며 파고드는 광나한의 수도(手刀)에 그는 황급히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몸을 홱 돌렸는데 그것을 노리며 다시 광나한의 오른발이 그의 허리를 노리자 등을 보인 채로 더욱 허리를 반대로 꺾으며 양 주먹을 머리 뒤로 뻗었다.

몸이 뒤로 활처럼 굽은 상태에서 주먹을 뒤로 뻗어 광나한의 얼굴과 가슴 상단을 노리는 반격이었다. 그것은 아주 적절한 임기응변이어서 광나한 역시 예측하지 못했는지 몸을 뒤로 활처럼 휘더니 빙글 좌측으로 돌면서 좌등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찌이익---!

좌등의 임기응변도 좋았지만 그것을 피하며 재차 금룡십이해를 펼치며 좌등의 어깨 부위의 천돌혈(天突穴)을 잡아채는 광나한 역시 감탄이 나오게 하는 한 수였다. 몸을 살짝 낮추어 빠져나가는 좌등의 왼쪽어깨의 옷이 길게 찢어졌다.

그러자 너풀거리는 옷 속으로 붕대에 감긴 어깨가 나타났다. 그는 급히 앞으로 쭉 튕기며 재차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던 광나한의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광나한은 그 자리에서 마보(馬步)를 취한 채 진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푸스--푸스슷---!

광나한의 양발이 단단한 돌로 되어있는 바닥을 조금씩 파고들고 있었다. 금강부동(金剛不動)의 자세. 어떠한 기학을 펼치려고 저러한 자세를 잡는 것인가?

잠시 숨을 돌릴 순간을 얻은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기 달랐다. 금방이라도 좌등이 쓰러질 듯 했지만 견디는 것이 용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좌등이 패하게 될 것이란 표정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보주의 제자들은 생각이 달랐다. 권각법을 모르는 좌등이 지금까지 수십 초를 맨몸으로 견디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좌총관은 만천성우(滿天星雨)의 요체를 알고 있다.'

그것이 제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운중보주의 독문비기로 제자 모두에게 전수한 일종의 박투술(搏鬪術). 수(手), 장(掌), 지(指), 권(拳), 각(脚) 등 사람의 몸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신체부위를 사용해 펼칠 수 있는 것으로 매우 실전적인 무공이 이것이었다.

허나 좌등은 머릿속으로 알고만 있을 뿐 수련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만약 좌등이 만천성우를 익히고 있었다면 매우 재미난 대결이 되었을 것이다.

순간 광나한의 권이 느릿하게 사오 장정도 떨어진 좌등을 향해 뻗었다. 그 모습을 본 좌등의 얼굴에 매우 긴장된 기색이 떠오르더니 몸을 허공에 날렸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바닥에 꽂아둔 무적신창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병기를 낚아챘다.

"아무래도 맨 몸으로는 철교두의 권각을 당해낼 수 없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을 격하여 권에서 무형의 강기가 쏘아나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쿠쿵---!

거대한 해일이 뭉쳐 좌등이 서있는 곳에서 터지는 듯 했다. 바로 백보 내에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소림의 절기 백보신권(百步神拳)이 펼쳐진 것이다. 이미 좌등은 그것을 예상했던 것 같았다.

촤르르르---

좌등의 창이 빠르게 회전하며 백보신권의 권력을 흩뜨리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신형은 백보신권의 권력을 헤집으며 광나한 쪽으로 빠르게 다가들었다. 창날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마치 부챗살처럼 퍼지며 광나한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지금까지 어설픈 동작으로 광나한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하기만 했던 좌등의 공격이 시작된 셈이었다. 역시 좌등의 손에 창 한 자루만 쥐여지면 무적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상황이 돌변해 버리자 더욱 당황한 것은 광나한이었다. 백보신권으로 최소한의 타격을 입히려 했는데 눈치를 챈 좌등이 병기를 꼬나 쥔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4. 4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5. 5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사진에 담긴 진실...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 끝난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