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가는 아들과 뒤로 가는 아버지

[태종 이방원 104] 아버지와 아들

등록 2007.06.13 18:13수정 2007.06.14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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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중 성민의 요구사항을 전해들은 태종 이방원은 불교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금의 의중을 간파한 의정부에서 오히려 더 강한 대책을 내놓았다.

"정한 숫자 외의 사사(寺社)의 전지는 모두 군자(軍資)에 소속시켜 선군(船軍)의 양식으로 보충하고 노비는 모두 전농시(典農寺), 군기감(軍器監), 내자시(內資寺), 내섬시(內贍寺), 예빈시(禮賓寺), 복흥고(福興庫)에 소속시켜 사역시킬 것 입니다."

강공 일변도에 전국의 사찰이 궁지에 몰리고 승려들은 긴장했다. 목탁을 치고 염불을 외던 스님들이 군대에 끌려가고 사역이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사찰을 빠져나온 승려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탈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태종은 국경을 지키는 도순문사(都巡問使)에게 방비를 철통같이 하라 명했다.

경원부(慶源府)에서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 박신의 보고가 올라왔다. 두만강을 넘나들며 나라를 비방하고 요망한 말을 퍼트리던 중 해선(海禪)을 붙잡았다는 것이다. 즉각 그를 한양으로 압송하라 명했다. 사헌부에서 심문을 받은 해선은 장(杖) 1백 대 형에 처해지고 내이포(乃而浦) 선군(船軍)으로 충군시켰다.

감옥에 갇혀있던 성폭행범 탈옥하다

불교를 혁파하기 위하여 강공책을 쓰고 있는데 난감한 사건이 터졌다. 부녀자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순금사(巡禁司) 옥(獄)에 투옥되어 있던 중 설연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탈옥을 도와준 비호세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당시 승려들의 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설연은 권력층에도 줄이 닿아 있었다. 권력층이 연루된 비리사건이다.

경상도 진주 와룡사 주지 설연(雪然)은 그 절(寺)의 종(婢) 가이(加伊) 등 다섯 명을 간음했다는 혐의로 진주목사(晉州牧使) 안노생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조사의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간파한 설연은 진주를 탈출하여 한양으로 잠입해 들어와 은거하다 체포되었다.

탈옥 사건을 조사하던 대간(臺諫)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지금 중 설연이 죄를 범하고 도망 중에 있는 것은 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인데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 원윤, 이덕근, 한평군(漢平君) 조연, 전 대호군(大護軍) 강진, 전 소윤(小尹) 이난, 전 산원(散員) 홍상검 등이 돌려가면서 숨겨주거나 고발하지 아니하고 그 무리들과 내통하고 있습니다. 죄인을 감추어 주는 것은 대죄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공신과 훈친이 연루되었다. 탈옥한 죄인을 대군(大君)과 군(君)이 감싸고 있다는 얘기다. 불교의 영향력은 권력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나라에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국책사업을 뿌리부터 흔드는 사건이었다. 이거 보통일이 아니다. 불교를 혁파하려다 공신과 훈친을 잃을 수도 있다. 자칫 방향을 잘못 잡으면 피의 향연이 펼쳐질 수도 있는 사건이다.

태종 이방원은 의안대군 이화 등 훈친(勳親)은 거론하지 말라 이르고 대호군 강진과 산원 홍상검은 유배시키라 명했다. 권력자의 하수인만 처벌받은 것이다. 그리고 장령(掌令) 이명덕(李明德)을 불러 꾸짖었다.

"이 같은 작은 일로 대군(大君)의 집을 파수하여 지키게 하는 것은 정도에 지나치다. 이와 같이 하지 말라."

탈옥한 중 설연을 잡기 위하여 의안대군 사저에 잠복해 있던 군졸들마저 철수시키라 명했다. 확대 해석하면 죄인을 감추어주는 것은 대명률로 다루어야 하는 중죄이나 축소한 것이다.

승왕이 나타나 세상이 태평하게 될 것이다

설연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탈옥하여 도망 중이던 설연이 순금사의 그물망에 걸려들었다. 중 설연을 순금사 옥에 투옥시키고 대간과 형조 그리고 순금사(巡禁司)의 합동 국문이 시작되었다. 설연의 제자 혜정을 먼저 심문했다.

"너희가 하륜과 안노생을 죽이기로 모의한 것을 중 홍련이 듣고 그 사실을 유양에게 고하였다. 모든 것을 이실직고하렷다."

전국의 승려들은 불교 개혁을 총지휘하는 하륜에게 저주 이상의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간직한 참서로 보건대 승왕이 나라를 세워 세상이 태평하게 될 것이다. 하륜과 안노생이 죽으면 내 참서가 맞는 것이다." - <태종실록>

참서(讖書)에 승왕(僧王)이 나타나 광명세계를 이끌 것 이라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자들이 포진한 조정에서 경계하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유언비어다. 지금은 제왕이지만 이방원 역시 엄격한 의미의 성리학 신봉자다. 스승 원천석으로부터 성리학을 수학했고 과거에 급제했다.

성리학은 내세(來世)에 회의적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誠意正心)이 그러하듯이 현세를 중요시 한다. 때문에 성리학을 이기심성학(理氣心性學)이라고도 부른다. 성리학을 꽃피운 퇴계 이황은 '성리란 사람의 본성을 이루는 것이다. 사람은 그것을 확충하고 발휘함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된 소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내일 아침에 해가 뜬다는 것은 과학이다. 실은 지구가 돌지만 뜨지 않으면 과학이 아니다. 과학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종교는 '사후에 천국에 간다'가 아니라 '갈 수 있다'다. 하기에 따라서 '갈 수도 있고, 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갈수도 있다'라는 소망을 '갈수 있다'는 희망으로 설정하면 맹신이 된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과 종교의 차이다.

불교 개혁과 훈친은 별개다, 사건을 확대하지 말라

합동 심문은 중 윤제 등 4~5명의 연루자를 밝혀냈다. 설연은 여자를 간범(干犯)한 죄로 장(杖) 60대를 때려 전라도 해남현 달량(達梁)의 수군(水軍)에 충군시키고 윤제는 알고도 자수하지 아니한 죄로 장(杖) 60대를 때려 경상도 동래현의 수군에 충군시켰다.

국기를 뒤흔드는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한 중 혜정은 참형(斬刑)에 해당되나 한 단계 감하여 장(杖) 1백 대를 때려 경상도 기장현에 유배시키고 그 나머지는 모두 석방시켰다.

태종 이방원의 조치에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 송우가 반발하고 나섰다.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을 주는 것은 고금의 떳떳한 법이요, 임금이 사사로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 혜정은 감히 부도한 말을 발하였으니 불궤(不軌)함이 심하므로 그 죄를 바루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법대로 시행하여 그 죄를 밝게 바루어서 후일의 난역(亂逆)하는 마음을 막으소서."

난처한 입장에 처한 태종 이방원이 헌납(獻納) 곽덕연을 불러 조용히 말했다.

"혜정을 가볍게 처결한 일은 과인의 뜻이 아니다. 양 정승이 내게 고하기를, '지금 5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사사(寺社)의 관습을 개혁하고 있는데 중들을 죽이면 뒤에 반드시 말이 있을까 염려되니 혜정을 죽이지 말기를 청합니다'하였다. 이 때문에 내가 순금사에 내려 죽이지 아니하는 율에 좇아 죄를 결정한 것이다." - <태종실록>

강온책을 구사하며 틀어쥔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는데 아버지 이성계는 아들의 뜻과 달리 엇나갔다. 사랑하는 부인 신덕왕후의 능참사찰 흥국사를 찾아가 계성전(啓聖殿)에 친히 전(奠)드리고 중관으로 하여금 정릉에 전(奠)드리게 했다. 뿐만 아니라 사리전(舍利殿)에 친히 들어가 분향하고 부처에게 배례하고 산릉을 돌아보면서 그칠 줄 모르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선군 #순금사 #설연 #혜정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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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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