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맞섰고 조선은 떨었다

[태종 이방원 132]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난 영락제의 일본정벌

등록 2007.07.29 08:06수정 2007.07.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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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명나라가 일본을 정벌한다면 조선 반도가 전화(戰禍)에 휩쓸리는 것은 명약관화 한 일.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우선 일본을 정벌하겠다는 영락제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명나라가 일본을 정벌하는 일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는가?"


영의정을 비롯한 삼정승, 육조의 판서, 사간원을 비롯한 삼성(三省). 대소신료들이 편전에 모였으나 머리를 조아릴 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황제가 어찌 실없는 말을 하였겠는가? 만약 명나라 병선(兵船)이 일본으로 향한다면 우리나라도 비상경계 함이 마땅하다. 경들은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의정부에 당부한 태종은 대책을 내놓았다

"황제가 우리나라 사신에게 친유(親諭)하였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사신을 보내어 희경(喜慶)의 뜻을 아뢰어야 하지 않겠는가? 명나라는 반드시 우리나라가 왜(倭)와 통호하는 것으로 여길 터인데 모른 체하면 반드시 우리나라를 가지고 속인다 할 것이다."

사신을 보내어 명나라의 일본 정벌을 감축 드리자는 얘기다. 잠자코 가만히 있으면 우리나라와 일본이 밀통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황제가 북경으로 거둥한다고 합니다."

영락제의 칙유를 전한 통사(通事) 임밀이 꾸역거렸다.


"길천군이 속히 경사(京師)로 나아감이 옳겠다."

사신을 보내어 황제의 진의를 파악하자

남경에 있는 황제가 북경으로 거둥한다면 더없이 좋은 기회다. 한양에서 남경까지 8천리 길, 장장 4개월이 소요되는 여정인데 북경은 그 절반 정도면 충분했다. 안주도(安州道) 절제사로 있다 태종의 신임을 얻어 세자전 숙위를 맡고 있는 권규를 보내자는 것이다. 길천군(吉川君) 권규는 무인으로 군사에 밝았으며 정보에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왜인(倭人)은 우리나라와 원수이니 명나라가 그들을 주벌(誅伐)한다면 국가의 다행이지만 길이 우리 강토를 거쳐야 하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길천군 사행에는 명나라 말을 잘 아는 이현과 같은 자를 부사로 삼아 속내를 알게 하는 것이 어떨까? 전라도는 초면(初面)이라 양향(糧餉)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으니 금년은 조운(漕運)하지 말게 함이 어떨까? 한다." - <태종실록>

우리나라의 원수 일본을 명나라가 대신 쳐주면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명나라의 군대가 우리나라를 거쳐야 하니 걱정이라는 얘기다. 또한 명나라 말에 정통한 자를 사신에 포함시켜 세밀한 정보를 파악하자는 것이다. 또한 전라도는 전선(戰線)이 형성되는 곳이므로 군량을 조달해야 하니 세곡을 거두어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인(倭人)이 만약 이 변(變)을 안다면 크게 해롭다. 지금 한양에 와 있는 왜사(倭使)의 족류(族類)가 곳곳에 퍼져 있어 만약에 그들이 정보를 알아가지고 본국에 통지하게 되면 뒷날 중국에서 반드시 누언(洩言)한 까닭을 물을 것이다. 정왜(征倭)의 거사는 5, 6월에 있을 것이니 왜사를 구류하여 2, 3개월만 지난다면 누가 이를 누설하겠는가?" - <태종실록>

역시 태종은 정보통이었다. 조선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으니 그들의 정보 수집을 봉쇄하라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2, 3개월만 연금하면 좋겠다는 뜻이다.

"상교(上敎)가 지당하니 신이 마땅히 여러 정승과 의논하여 다시 아뢰겠습니다."

영의정 하륜이 머리를 조아렸다. 임금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병조판서 황희가 나섰다. 병판 황희는 임진강 거북선 실패로 경질된 박은의 후임자였다.

"무사한 때를 당하여 군용(軍容)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는데 더구나 지금은 변이 있으니 각도의 병선(兵船)과 군기(軍器)를 속히 점검함이 옳겠습니다. 또 갑사(甲士)의 신분으로 가난하여 말과 종자(從者)가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니 제도(諸道)로 하여금 가산(家産)이 넉넉하고 재예(才藝)가 있는 자를 택하여 한양으로 조송(調送)하게 함이 마땅합니다."

군 장비를 점검하고 기동력을 갖춘 군사를 한양으로 집결시키자는 얘기다. 갑사(甲士)는 조선 정예군의 기간병이었다. 갑사는 키, 힘, 기, 예를 갖춘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특수병종으로 기갑사(騎甲士)는 입속 시 본인의 자비로 말을 준비해야했다. 이러한 까닭에 사대부나 부유층 자제가 아니면 입속 자체가 어려웠다.

"북방의 오랑캐가 변방을 엿볼까 염려됩니다. 사람을 강계(江界)·경원(慶源) 이북의 무인지처(無人之處)에 보내어 그들의 동태를 정탐케 하여 불우(不虞)에 대비함이 어떻겠습니까."

병조판서 황희의 장비점검 방책에 지의정부참사 김승주가 덧붙였다. 남방의 불길만 볼 것이 아니라 북방의 여진족도 경계하자는 것이다.

길천군(吉川君) 권규를 정사로 한 사신이 명나라로 떠나던 날. 임금이 몸소 광연루(廣延樓)에 나와 전송하였다. 이들의 임무여하에 따라 국난을 당하느냐? 국체를 보존하느냐?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태종이 막중한 임무를 안고 떠나는 서장관 진준(陳遵)을 별도로 불렀다.

"정사와 부사는 황제의 진의 파악에 전념할 것인 바 너는 삼국지(三國志)와 소자고사(蘇子古史)를 구해 오도록 하라."

이 대목에서 국난에 처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갖는 태종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만백성의 필독서 삼국지는 이때 들어와 백성의 책이 되었다.

너 떨고 있니? 떨었던 조선과 대들었던 일본

당시 일본의 권력자는 족리막부(足利幕府)의 아시까가 요시미쓰(足利義滿)였다. 원나라의 침공을 받아 휘청거리던 가마꾸라 막부에 이은 실력자였다. 재정이 파탄난 일본을 일으켜 세우려는 아시까가는 원나라를 지원한 우리나라에 적개심을 드러내는 한편 대륙의 새로운 패자 명나라에는 머리를 조아렸다.

a 일본 교또의 금각사. 금박이 화려한 금각사는 아시까가 요시미쓰의 별장을 선종 사찰로 개축했다.

일본 교또의 금각사. 금박이 화려한 금각사는 아시까가 요시미쓰의 별장을 선종 사찰로 개축했다. ⓒ 이정근


이 시대 명나라의 영락제는 아시까가의 황제였다. 일본 역사 유일하게 종주권을 인정한 아시까가는 명나라에 조공을 보내고 바짝 엎드렸다. 그러나 아시까가를 이은 쇼군(將軍)이 등장하면서 일본의 태도는 달라졌다.

이전의 순종적인 태도를 버리고 조공을 끊었다. 명나라를 침범하여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을 붙잡은 명나라의 책임 추궁에 아시까가는 머리 숙여 사죄했으나 쇼군은 오리발이었다.

이에 화가 난 영락제가 군대를 보내 일본을 정벌하겠다고 위협했으나 쇼군은 종속관계마저 거부했다. 한 마디로 기어오른 셈이다.

응징을 벼르던 영락제는 북벌과 정화함대, 그리고 안남의 반격으로 일본 정벌 계획을 접었다. 원나라는 일본을 원정했지만 명나라는 일본을 침공하지 않았다.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선제공격이란 득을 전제로 감행한다. 절대 우위의 물량공세로 선공을 가한다 하더라도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전쟁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던 동북아 정세에 전운이 걷혔다. 병선 1만 척을 동원하여 일본을 정벌하겠다는 영락제의 엄포는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다. 명나라의 큰 기침에 조선은 떨었고 일본은 대들었다. 바짝 엎드려 평화를 유지한 나라와 맞서며 평화를 유지한 나라의 평화의 색깔은 달랐다.
#이방원 #영락제 #금각사 #아시까가 요시미쓰 #무로마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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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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