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에게 "사랑해" 하는 사람 만나고 싶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37] 들꽃 예찬

등록 2007.08.07 17:26수정 2007.08.14 02:4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쑥부쟁이 ⓒ 김민수

들판을 거닐다 만나는 꽃들 중에서 똑같이 생긴 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종이라고 할지라도 피어있는 곳에 따라서 그 느낌이 다르고, 같은 줄기에서 피어난 꽃이라도 그 생김새가 다릅니다. 십인십색이라고 꽃들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기의 때를 피워내고 있는 것입니다.

a

좀나팔꽃 ⓒ 김민수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꽃마다 모양만 다른 것이 아니라 향기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것들이 서로 어울려 들판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고, 순서에 따라 오고 가면서 들판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꽃이 필요한 곤충들을 배려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모습, 다른 향기라도 그들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서로 배려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들 타고 난대로 피고 지는데 하나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마음이지요. 자연의 마음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법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a

제비동자꽃 ⓒ 김민수

자연의 마음을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메마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위적인 것들에 포위되어 편리하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던 자연의 마음이 마치 원예종 꽃처럼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눈으로 볼 때에는 화사하고 예쁜지 몰라도 생명력과 향기에 있어서는 혼자서 피어나는 들꽃 한 송이만도 못한 것이지요.

a

종지나물 ⓒ 김민수

그 많은 꽃들 중에서 저의 친구는 들판이나 깊은 숲 속, 혹은 한적한 시골길에서 홀로 자라는 들꽃들입니다. 애써 비교하지 않으려 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더 화사한 꽃들인데 차별하지 말자고 해도 원예종 꽃들은 정이 가질 않습니다.

조금 못 생기고, 상했어도 들에서 만나는 꽃들에게서는 깊은 삶이 들어있는 듯하여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들이 있어 들에 서는 것이 행복합니다.

a

메밀 ⓒ 김민수

들꽃이 없었다면 저 들판은 얼마나 헛헛했을까요?

사람의 손길을 탄 꽃들이라고 다 정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먹을거리가 되기 위해 투박한 농부들의 손길에 의해 자라나는 꽃들은 좋아합니다. 일종의 미안함을 감춰보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메밀꽃, 감자꽃, 고추꽃, 오이꽃 심지어는 벼꽃도 예쁘게 다가옵니다. 그들은 치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길이 닿았어도 그들은 들꽃들과 다르지 않은 친구라고 받아들입니다. 꽃을 피우고 지우며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는 저 꽃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요?

a

홀아비꽃대 ⓒ 김민수

꽃들은 채색의 마법사입니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먹으며 따스한 햇살로 자라나는 꽃들이지만 제각기 다른 색깔로 피어납니다. 흙 속에 저렇게 다양한 물감이 들어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늘 혹은 햇살에 들어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간혹 변이종으로 다가와 색다르게 피어나는 꽃들도 있지만 선조부터 간직했던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간직하고 피어납니다. 변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꽃들의 마음이겠지요.

a

금꿩의다리 ⓒ 김민수

이 사회는 '변하지 않는 것은 퇴보하는 것'이라고 협박을 합니다. 사실,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겠지요. 살아있는 모든 것은 운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도 변했습니다.

그러나 들꽃은 어떤가요?

매일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 머무르지 않으며, 그렇게 천천히 피어나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환한 웃음으로 다가옵니다. 그런 변화, 그것이 본질을 지킬 수 있는 변화의 속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a

산괭이눈 ⓒ 김민수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쓰레기를 만드는 존재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자기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기도 하고, 없는 말까지 지어내어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온갖 아름다운 말들로 폭력과 전쟁을 찬양하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진데 이렇게 많이 타락한 것이지요.

다른 자연들이 두 눈 똑똑히 뜨고 사람들의 무례한 삶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저 꺾이고 뽑혀나가는 것 같지만 그들의 인내심이 다하면 사람들은 그들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들의 인내심이 남아있으니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기회를 우리들에게 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습니다.

a

홀아비바람꽃 ⓒ 김민수

마음이 헛헛하고 세상살이에 지쳐 상심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좋아하는 들꽃을 만나러 가는 일조차도 심드렁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눈을 돌려보면 들판 어딘가에 피어있는 들꽃들이 손짓을 합니다.

다가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면 작은 바람에도 꽃향기를 날립니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립니다. 내 속내를 들여다보는 듯 "나도 네 마음을 알아, 나도 그랬거든. 그런데 나를 봐, 이렇게 넉넉하게 피어있잖아." 넌지시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그들이 주는 선물인 것입니다.

a

톱풀 ⓒ 김민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 사시사철 들판에 피어나는 꽃들에게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것이 단지 넘치는 말잔치가 아닌 그런 사람 하나 만나 들판을 거닐며 피어나는 꽃들과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여름 가고 가을이 오면 지난봄부터 가을을 기다리던 가을꽃들이 피어나겠지요. 그들이 가을꽃 잔치를 열면 들판을 아름답게 수놓는 그들을 만나러 갈 것입니다. 꽃들에게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사람과 함께.
#들꽃 #원예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낙동강 해평습지서 '표범장지뱀' 본 전문가 "놀랍다"
  2. 2 "도시가스 없애고 다 인덕션 쓸텐데... '산유국 꿈' 경쟁력 없다"
  3. 3 윤석열 정부 따라가려는 민주당... 왜 이러나
  4. 4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5. 5 껌 씹다 딱 걸린 피고인과 김건희의 결정적 차이, 부띠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