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님을 기다리다 꽃이 되었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36] 백일홍

등록 2007.07.31 08:34수정 2007.07.3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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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은 곤충들에게 인기가 많은 꽃이다. ⓒ 김민수

백일홍(百日紅)은 '떠나간 님을 그리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일'은 아주 오랫동안 피어있는 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도 여름부터 가을까지 백일 이상 피어있습니다.

백일홍의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대의 끝에 많은 꽃들이 뭉쳐 붙어서 머리 형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꽃을 두상화라고 하지요. 그 작은 꽃들이 피고지면 또 다른 꽃들이 피어나 늦가을까지 넉넉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름은 곤충들이 많은 계절입니다. 야생화는 아니지만 시골집 담장이나 화단에 백일홍이 피어있으면 나비를 비롯한 여러가지 곤충들이 백일홍 주변을 떠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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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곤충들이 떠날 줄 모르고 있다. ⓒ 김민수

백일홍 꽃봉오리가 처음 피어날 적에는 마치 뱀대가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피어나면 시집갈 때 신부가 쓰던 족두리모양이 나오지요. 먼저 화사한 꽃잎이 나온 뒤에 속내에 솜털이 송송한 작은 꽃들을 피운답니다.

백일홍은 이런 전설을 가지고 있답니다.

옛날 어느 어촌마을에 갑자기 이무기가 나타나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에서는 이무기를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처녀를 제물로 바치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사가 나타나 이무기를 물리치고 이무기에게 바쳐진 처녀를 구합니다. 처녀는 이미 죽었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며 그 장사에게 시집가기를 청헙니다.

그 장사는 용왕의 아들이었고, 장사는 이무기의 다른 짝을 물리친 후 돌아와 결혼은 하겠다고 합니다. 백일 후에는 꼭 돌아오겠다며 돌아오는 날 이무기를 죽인 증거로 흰 돛을 달고 오겠다고 합니다. 백일을 기도하며 기다리던 처녀는 백일 째 되는 날 꽃단장을 하고 들어오는 배가 잘 보이는 절벽 위에서 장사를 기다렸지요.

그런데 붉은 돛을 단 배가 나타났고 처녀는 장사가 죽었다 생각하고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무기의 피가 튀어 돛이 붉게 물든 줄 모르던 장사는 처녀의 죽음을 알고는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그 처녀의 무덤에서는 족도리 같은 모습의 꽃이 피어났고 한번 피면 백일 동안 시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꽃을 백일홍이라고 불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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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요렇게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 김민수

백일홍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꽃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피어나는 꽃의 마음도 그렇지만 풍성한 꽃으로 인해 손님들이 많은 꽃이기도 합니다. 찾아오는 손님마다 마다하지 않고 넉넉하게 채워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겠지요.

작은 꽃들마다 꿀을 가득채우고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 그래서인지 한번 날아온 곤충들은 떠날 줄 모릅니다. 그런 마음을 가졌기에 꽃을 만든 신이 그에게 장수하는 선물을 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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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모이고 모여 가을이 되기까지 계속 피어난다. ⓒ 김민수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강원도 물골의 시골집 마당에는 백일홍과 참나리가 한창이었습니다. 화사한 꽃들만으로도 행복한데 꽃만큼이나 많은 나비들이 쉴새없이 날아와 백일홍과 참꽃을 오갔습니다. 잔치가 벌어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처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사가 나비가 되어 백일홍에게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서는 백일홍이 피어도 그렇게 피어난들 그들을 찾아올 나비도 곤충이 적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꽃들은 외로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로움을 자기를 예쁘다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로 위로받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꽃들을 만나면 "안녕!" 하고 인사를 해보세요. 마음으로만 하지 말고 입술을 열어 여러분의 귀에 들릴 정도로 "안녕!" 하고 인사해 보세요. 꽃들이 반가워 춤추는 소리가 들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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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은 붉은 꽃만 있는 것이 아니다. ⓒ 김민수

백일홍의 속내는 작은 솜털이 성성한 노랑꽃이지만 다양한 색깔들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백일홍이 피어있는 화단은 단조롭지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색으로 피어나지만 그들의 속내는 다르지 않습니다.

꽃들은 정직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모습을 그대로 피워내고, 비바람에 꽃잎이 찢겨도 화사하게 피어날 때와 다르지 않은 정성으로 피어납니다. 때론 줄기가 꺾이고 뿌리가 뽑혀도 말라 죽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들꽃입니다.

아파할지언정 절망하지 않습니다. 아주 조금의 희망만 남아있어도 절망하지 않는 것들 그들이요, 절망할 수밖에 없을 때에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 그들입니다.

한 번 피어나면 백일 동안 시들지 않고 꽃을 피우는 백일홍, 무슨 일이든 백일홍의 마음을 가지고 백일 동안 정성을 들이면 이루지 못 할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백일홍 #님 #기다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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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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