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262회

등록 2007.08.30 08:21수정 2007.08.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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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아직 사십이 안 되어 보이는 사내가 그것을 마주쳐 반선수의 강기를 해소시키며 다가오고 있다. 각원선사의 놀람은 극에 달했다. 이 어찌된 일인가?

“아미타불......!”


마지막 가사소매를 힘차게 떨쳐내는가 동시에 각원선사의 발이 미끄러지며 옆으로 돌았다. 정면으로 다가오는 능효봉의 알지 못할 기세를 흘려버림과 동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비무라든가 승부가 아니었다. 후배에 대해 훈계를 주고자 함도 아니었다. 시정패의 싸움과 마찬가지였다. 그저 상대를 두들겨 패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사실 거창하게 비무라든지 정정당당한 승부라든지 하는 것도 이면에는 실상 상대를 두들겨 패거나, 패서 죽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퍼펑---!

반선수의 강기에 정면으로 능효봉이 쌍장을 뻗자 굉음과 함께 폭풍이 몰아친 듯 장내에 맹렬한 용권풍이 일었다. 주위의 인물들이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꽤 멀리 있었음에도 그 기세의 여파가 옷깃을 찢을 듯 펄럭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능효봉이 각원선사의 내공에 못 미치는 듯 약간 주춤하며 반보를 물러서는 순간 각원선사의 몸이 옆으로 홱 돌려지며 오른팔을 뻗었다.


띠리링----

구슬이 부닥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는가 싶더니 각원선사의 손에 쥐어져 있던 백팔염주가 능효봉의 얼굴을 노리며 쏘아졌다. 아마 저 염주에 맞는다면 능효봉의 얼굴은 형체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허리가 활처럼 휘면서 능효봉의 몸이 뒤로 제겨졌다. 허공을 가른 염주가 다시 구슬소리를 내며 능효봉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피하는 것도 빨랐지만 그것을 예상하고 곧 바로 이어지는 공격은 더 빨랐다.

게다가 보법(步法)을 밟으며 호시탐탐 각원선사의 왼팔은 능효봉의 어디든 낚아챌 준비를 하고 있어 능효봉으로서는 잠시 멈칫하는 사이 선수를 빼앗긴 셈이었다. 능효봉의 몸이 뒤로 제겨진 상태에서 옆으로 빠르게 두어 번 뒤집어졌다.

마치 봉처럼 일직선이 된 백팔염주가 능효봉의 허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있었다. 각원선사의 노구가 나이답지 않게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능효봉을 따라잡고 있었다. 능효봉의 신형이 지면과 사선이 된 채 계속 옆으로 돌고 있었다.

스슥---츄축---!

각원선사의 신형이 비스듬히 능효봉의 옆으로 기울며 양 발이 지면에서 떠올랐다. 소림의 절기인 무상각(無上脚)이다. 허나 역시 각원선사의 무상각은 설중행이나 광나한의 그것과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예리함과 적절한 힘의 안배,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기묘한 각도에서 차올리는 각원선사의 양 발은 능효봉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더구나 아예 끝장을 보려는 듯 왼손으로 능효봉의 목덜미를 잡아채는 솜씨는 바로 금룡십이해(金龍十二解)다.

“흐음.....!”

능효봉의 입에서도 신음과도 같은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는 몸을 두 손을 땅에 짚으며 몸을 반으로 접었다가 뒤쪽으로 양 발을 내뻗었다. 각원선사의 무상각에 마주쳐가려는 의도.

띠리링.......

그 순간 각원선사의 백팔염주가 능효봉의 상체를 휘감아갔다. 결정적이었다. 능효봉은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헌데 그 순간 각원선사와 마주친 발의 탄력으로 능효봉은 갑자기 몸을 지면에 대며 바싹 엎드리며 찌익 미끄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각원선사가 퍼부은 세 가지 공격을 신기하게도 단숨에 벗어나는 것이었고, 그는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신형이 땅에 끌린 자국이 일장이나 길게 늘어져 있었다. 허나 각원선사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잠시 떠올렸지만 노회한 그로서는 아직까지 잡고 있는 주도권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쫘르르---띠리링---!

각원선사는 재차 신형을 일으키는 능효봉을 덮쳐갔다. 끝장을 보려는 듯 각원선사의 공격은 더욱 위맹하고 위험해 보였다.

“그렇군.... 아직도 소림이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군.”

능효봉의 얼굴에 약간은 경탄하는 기색과 음성 역시 그러했다. 허나 그 순간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우르릉---콰아아---

갑자기 뇌성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용의 울부짖음이 고막을 때렸다. 동시에 능효봉의 몸이 쭈욱 위로 늘어나면서 하늘로 솟구치는 듯 보였다. 거대한 천룡의 형상이 허공으로 비상하고 있었다.

“허억----!”

신음성은 자하진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저것이다. 절대무적을 자랑하던 천룡의 절기 -- 천룡인(天龍印)이 펼쳐질 때의 천룡의 모습. 그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고, 기우도 아니었다. 수십 년간 꿈에서조차 두려워했던 저것이 눈앞에 다시 펼쳐지는 것이다.

------------

“네가.... 왔구나......”

회운사태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지독한 점혈을 당해 해혈을 했어도 아직 온 모이 마비된 듯 움직이지 못했다.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고 메말라 보였다. 또한 입술은 마르다 못해 허연 입술 거죽이 벗겨져 뒤집어져 있었다.

배심혈에 진기를 주입해 막혀있는 혈도를 뚫고 기력을 회복해 주려하길 일각 여. 기력의 회복은커녕 이리 정신이 든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만약 이대로 두세 시진만 지났다면 회운사태는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게 되었을지 몰랐다.

“...............!”

이게 육파일방 중 하나라는, 그래서 언제나 무림의 정의를 수호하고 정파라 침을 튀기며 어께를 같이했던 화산의 장문인이란 자가 한 짓이란 말인가? 설중행은 분노가 치밀었다.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은 지독한 분노였다. 그의 눈에 섬뜩한 살기와 함께 핏발이 서고 있었다.

“무섭구나.... 그런 모습은.....”

회운사태의 달래는 듯한 말에 설중행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떴다.

“움직이실 수 있겠습니까?”

“아직은..... 머리도 어지럽고 몸이 무겁구나.... ”

언제나 같은 음성과 눈빛이었다. 아미의 경내를 뛰어다닐 때에도 사태는 언제나 저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소매에 감추어 두었던 과자를 줄 때에도 그랬다.

“저는.....”

상황은 적당하지 않았다. 몇 시진을 혼절했다가 깨어난 회운사태에게 묻는다는 것은 경우에 없는 일이었지만 설중행으로서는 너무나 궁금해 참을 수 없었다.

“사태와 어떠한 관계입니까? 소문처럼.... 아니면 그저 불쌍한 화부의 자식이라 저를 돌보아 주신 겁니까?”

소문처럼 차마 내가 당신의 자식이냐고 묻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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