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착 진행되는 축출 작업과 세자의 결심

[태종 이방원 179] 패하기로 작심한 양녕

등록 2007.10.19 15:00수정 2007.10.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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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문당 임금이 신하를 접견하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며 때로는 세자를 가르치기도 했다. 편액은 영조 어필이며 창경궁에 있다. ⓒ 이정근



세자가 두문불출 출입을 하지 않으니 오뉴월 삼복더위에도 세자전에는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빈객이 세자에게 서연을 간청했으나 양녕은 응하지 않았다.


“서연을 사양하시니 저하(邸下)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만약 편찮으시다면 서연을 억지로 열 수는 없습니다. 청컨대, 잠시 나와서 저희들을 접견하소서.”

“빈객들을 볼 수 있다면 어찌 강(講)을 듣지 않겠는가?”

양녕은 세자전의 입 윤덕인을 내보내어 변명했다.

부왕을 몰라서 실수한 거다, 알면 보인다

“병을 가지고 사양하시니 저희들은 저하가 신(信)을 잃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헌납(獻納) 권맹손이 세자의 유병은 구실이라고 반박했다.


“신(信)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리 아래에 이미 흐르는 물(橋下水流)은 어찌 설명하겠는가?”

교하수류(橋下水流). 미생(尾生)이라는 총각이 다리 아래에서 여자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리던 중 큰물을 만나 피하지 않다가 죽었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한 말이다. 다리 아래에 물이 흐르니 이를 피하지 않고 미생(尾生)처럼 우직하게 신(信)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양녕은 물의 흐름을 감지하고 있었다.


‘계곡에 얼음이 얼었다고 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을 뿐 물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방심하다가 얼음이 깨져 익사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이무가 그렇고 네 분의 외숙이 그렇다. 숙번 역시 그렇다. 부왕을 몰라서 실수한 거다. 알면 보이듯이 아버지를 알면 보인다.’

“헌납의 청은 오로지 서연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이 조금이라도 나았다면 병을 이기고 나와서 빈객을 맞이하는 정도에 그치라는 것뿐이니 잠깐이라도 나오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빈객(賓客) 탁신이 간청했다

“빈객(賓客)의 말이 옳다. 내가 서연에 나가지 아니함은 병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태조가 창업하시고 금상 전하께서 일찍이 온갖 어려움을 겪으시어 금일의 태평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위로는 명나라에서 정성으로 대접하고 아래로는 왜놈(倭奴)들이 조선의 덕을 사모하여 스스로 복속(服屬)하니 진실로 천 년에 얻기가 어려운 때입니다. 이와 같은 태평한 나라가 저하에게 이르기를 바라는데 저하는 어찌하여 전하의 마음을 몸 받지 아니합니까?”

착착 진행되는 세자 축출 작업

탁신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명나라에서 어여삐 봐주고 일본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태평성대에 왜 굴러온 임금 자리를 차냐는 것이다. 세자가 서연을 거부하고 있는 사이, 개성 경덕궁에서는 수순대로 사태가 진전되고 있었다. 세자이사(世子貳師) 유창, 좌빈객(左賓客) 김여지, 우빈객(右賓客) 변계량이 태종을 알현했다.

“김한로는 세자의 장인인데 불의로 이끌었으니 세자로 하여금 절연(絶緣)하여 어버이로 삼지 않게 하소서.”

“경들이 세자로 하여금 절연하여 어버이로 삼지 않게 하기를 청하니 그 의논이 진실로 합당하다. 세자로 하여금 김한로와 절연하여 어버이로 삼지 않게 하여서 미혹하고 오도하는 근원을 끊어 버리면 종사에 다행이겠다.”

“비록 지친이라도 큰 죄를 지으면 절연하여 어버이로 삼지 않는 것이 예(例)인데 하물며 외척 장인(舅)이겠습니까?”
변계량이 정중하게 찬성했다.

“경의 말이 옳다. 나도 마땅히 경들의 말대로 이를 처리하겠다.”
빈객에 이어 형조와 대간에서 교장(交章)하여 상언했다.

“저부(儲副)는 나라의 근본이므로 사악한데 들이지 않게 하여야 마땅합니다. 김한로는 알고서도 아첨을 일삼아 세자에게 누를 끼쳤으니 이것은 종사(宗社)에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너그러운 은전을 베풀어 직첩만을 거두고 가까운 땅에 그대로 머물러 두시니 유감입니다. 전하는 의금부의 조율(照律)한 것에 의하여 그 죄를 바로잡으소서.”

세자를 망치게 한 김한로를 나주에 이배하라

“세자는 국군(國君)의 저부(儲副)이므로 기르고 가르치기를 소홀히 할 수 없다. 김한로가 세자의 장인으로서 경계하지 않고 간휼한 흉계로 여색을 바쳐 저부를 그르치고 종사에 죄를 지었다. 육조와 대간에서 합사하여 법대로 처치하고자 하였으나 나는 차마 죄 주지 못하여 외방에 내쳤다. 이제는 경들의 의견을 따르겠다. 김한로 부자를 나주에 옮겨 안치하라.”

죽산에서 유배생활 하던 김한로와 과천에 있던 그의 아들 김경재를 나주로 이배시키라 명한 태종은 박지생을 통하여 양녕에게 유시(諭示)했다.

“김한로가 말하기를 ‘신의 죄는 열 번 죽어야 한다’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김한로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사부와 빈객이 김한로와 절연(絶緣)하여 어버이로 삼지 않기를 청하였기 때문에 절연하여 나주로 부처하였다. 만약 다시 그의 죄를 사하자는 청함이 있으면 그의 죽음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삼복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개성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송악산을 휘감고 있던 냉기류가 경덕궁을 지나며 삭풍이 되었다. 임진강을 건너고 삼각산을 넘으며 칼바람이 되어 양녕의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양녕이 서연에 응하지 않은 세자전의 동정은 시시각각 개성에 있는 태종에게 보고되었다. 시환(侍宦)을 물리친 태종이 영의정 유정현과 좌의정 박은을 불러들여 밀담을 나누었다. 이레 후에는 박은과 우의정 한상경 그리고 청성부원군 정탁과 옥천부원군 유창에게 약주를 내려 주었다. 임금의 하사품이다. 입이 귀에 걸리는 광영 뒤에 책무가 주어졌다.
#김한로 #김경재 #국군 #저부 #교하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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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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