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상리면 고항리 가는길산업곤충연구소 가는 길에 큰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앞을 지나가는 할아버지 뒷모습, 퍽 정겹지요?
손현희
이른 새벽 5시(16일), 지난밤부터 아침에 못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는데, 시끄럽게 소리치는 알람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었지요. 첫 버스를 놓치면 두 시간이나 뒤에 오는 버스를 타야하거든요.
부지런히 아침밥을 먹고 짐을 챙겼어요. 짐이라고 해봐야 우리한테는 자전거가 가장 큰 짐이랍니다. 경북 예천 산업곤충연구소에 들렀다가 '폐교 이야기' 인터뷰를 하고는 예천에서 이름난 볼거리들을 한두 곳 둘러보고 올 작정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갔던 게지요.
가까스로 첫차에 타고 요즘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시골로 다니는 버스가 그리 많지 않아요. 저마다 자기 차로 다니는 사람이 많으니 그리 탓할 일도 아니지만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가려면 여간 힘 드는 게 아니에요. 첫차가 새벽 6시 52분, 그 다음 차가 8시 48분, 첫차를 타면 적어도 두 시간쯤이면 예천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었어요. 아! 그러나 이건 그저 우리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나 서둘러서 새벽밥을 먹고 차 시간을 30분이나 앞두고 시외버스터미널에 닿았는데, 자전거를 가방에 싸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어요. 벌써 대여섯 번이나 자전거를 싸봤는데도 이건 어떻게 된 일인지, 쌀 때마다 헷갈리고 시간이 많이 걸려요. 더구나 가방 천이 너무나 얇아서 더욱 힘들었어요. 어두컴컴한 밖에서 끙끙거리며 자전거 두 대를 다 싸놓고 나니, 애고 어느새 버스 떠날 시간이 2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서둘러 표를 끊고 버스 밑에 싣고는 변소에 다녀올 틈도 없이 올라탔답니다.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 큰 한숨 한 번 몰아쉬고는 이제 느긋하게 바깥 풍경을 구경하면서 가면 되겠지요? 김천에 닿으니 날이 차츰 밝아지고, 둥근 해가 떠오르는 게 보였어요.
"어쨌거나 오늘은 날이 좋아서 참 다행이다."
"그러게. 자전거 타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네." 낯선 곳에 가는 설렘도 좋지만, 시골풍경을 벗 삼아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더욱 설렜답니다. 지난날 학교 다닐 때, 날마다 지나다니던 김천 시외버스터미널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어요. 터미널 둘레에는 커다란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그동안 많이 발전했구나! 하고 느낄 만큼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터미널만큼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어요.
"시외버스를 타는 사람이 그다지 없으니까 그렇지."
"요즘은 너나할 것 없이 차가 다 있으니, 버스 탈 일이 있겠냐? 그러니 버스도 돈이 되어야 차도 늘리고 터미널도 새로 고치고 할 텐데 손님도 이렇게 없으니 안 바뀔 수밖에…."
버스는 김천을 거쳐 아천, 두원, 청리까지 가는 옛 찻길로 들어서고 있어요. 청리에는 고모님 댁이 있어서 내가 어렸을 적에 참 많이 다녔던 길이에요. 이 길도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거의 달라진 게 없었어요. 하다못해 그 옛날 단발머리 가시내가 차창 밖으로 내다보던 그 풍경마저도 그대로였어요. 드문드문 옛길 곁으로 곧은 새 길을 공사하는 풍경만 빼고는…. 거의 25년 만에 보는 고향풍경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졌답니다.
한참동안 바깥 풍경에 빠져 시간이 얼마만큼 지났는지도 몰랐는데, 상주, 점촌까지 오는 사이에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어요.
"아니, 그런데 예천까지 도대체 얼마나 걸리는 거야? 아직도 멀었는가?"
"그러게 말이야. 아직도 한참 더 남았을 듯한데…."
"승용차로는 구미에서 빠르면 한 시간 안에도 간다고 하더구먼."
"시골길을 둘러 둘러서 가니까 그런가보다. 그리고 아까 점촌부터는 아무데서나 다 섰다가 가네. 이거 무슨 시내버스 같다. 하하하."
"에고 우리 이러다가 곤충연구소만 보고 오는 거 아냐?"한적한 시골길로 버스타고 간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 안고 왔는데, 시간이 자꾸 흘러가니 차츰 지루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