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차 가방 싸다가 볼일 다 봤네!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27] 자전거 타러 갔다가 올 적 갈 적 버스만 6시간

등록 2007.12.22 17:44수정 2008.01.3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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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상리면 고항리 가는길 산업곤충연구소 가는 길에 큰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앞을 지나가는 할아버지 뒷모습, 퍽 정겹지요? ⓒ 손현희



이른 새벽 5시(16일), 지난밤부터 아침에 못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는데, 시끄럽게 소리치는 알람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었지요. 첫 버스를 놓치면 두 시간이나 뒤에 오는 버스를 타야하거든요.


부지런히 아침밥을 먹고 짐을 챙겼어요. 짐이라고 해봐야 우리한테는 자전거가 가장 큰 짐이랍니다. 경북 예천 산업곤충연구소에 들렀다가 '폐교 이야기' 인터뷰를 하고는 예천에서 이름난 볼거리들을 한두 곳 둘러보고 올 작정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갔던 게지요.

가까스로 첫차에 타고 요즘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시골로 다니는 버스가 그리 많지 않아요. 저마다 자기 차로 다니는 사람이 많으니 그리 탓할 일도 아니지만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가려면 여간 힘  드는 게 아니에요. 첫차가 새벽 6시 52분, 그 다음 차가 8시 48분, 첫차를 타면 적어도 두 시간쯤이면 예천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었어요. 아! 그러나 이건 그저 우리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나 서둘러서 새벽밥을 먹고 차 시간을 30분이나 앞두고 시외버스터미널에 닿았는데, 자전거를 가방에 싸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어요. 벌써 대여섯 번이나 자전거를 싸봤는데도 이건 어떻게 된 일인지, 쌀 때마다 헷갈리고 시간이 많이 걸려요. 더구나 가방 천이 너무나 얇아서 더욱 힘들었어요. 어두컴컴한 밖에서 끙끙거리며 자전거 두 대를 다 싸놓고 나니, 애고 어느새 버스 떠날 시간이 2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서둘러 표를 끊고 버스 밑에 싣고는 변소에 다녀올 틈도 없이 올라탔답니다.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 큰 한숨 한 번 몰아쉬고는 이제 느긋하게 바깥 풍경을 구경하면서 가면 되겠지요? 김천에 닿으니 날이 차츰 밝아지고, 둥근 해가 떠오르는 게 보였어요.

"어쨌거나 오늘은 날이 좋아서 참 다행이다."
"그러게. 자전거 타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네."



낯선 곳에 가는 설렘도 좋지만, 시골풍경을 벗 삼아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더욱 설렜답니다. 지난날 학교 다닐 때, 날마다 지나다니던 김천 시외버스터미널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어요. 터미널 둘레에는 커다란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그동안 많이 발전했구나! 하고 느낄 만큼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터미널만큼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어요.

"시외버스를 타는 사람이 그다지 없으니까 그렇지."
"요즘은 너나할 것 없이 차가 다 있으니, 버스 탈 일이 있겠냐? 그러니 버스도 돈이 되어야 차도 늘리고 터미널도 새로 고치고 할 텐데 손님도 이렇게 없으니 안 바뀔 수밖에…."


버스는 김천을 거쳐 아천, 두원, 청리까지 가는 옛 찻길로 들어서고 있어요. 청리에는 고모님 댁이 있어서 내가 어렸을 적에 참 많이 다녔던 길이에요. 이 길도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거의 달라진 게 없었어요. 하다못해 그 옛날 단발머리 가시내가 차창 밖으로 내다보던 그 풍경마저도 그대로였어요. 드문드문 옛길 곁으로 곧은 새 길을 공사하는 풍경만 빼고는…. 거의 25년 만에 보는 고향풍경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졌답니다.

한참동안 바깥 풍경에 빠져 시간이 얼마만큼 지났는지도 몰랐는데, 상주, 점촌까지 오는 사이에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어요.

"아니, 그런데 예천까지 도대체 얼마나 걸리는 거야? 아직도 멀었는가?"
"그러게 말이야. 아직도 한참 더 남았을 듯한데…."


"승용차로는 구미에서 빠르면 한 시간 안에도 간다고 하더구먼."
"시골길을 둘러 둘러서 가니까 그런가보다. 그리고 아까 점촌부터는 아무데서나 다 섰다가 가네. 이거 무슨 시내버스 같다. 하하하."
"에고 우리 이러다가 곤충연구소만 보고 오는 거 아냐?"


한적한 시골길로 버스타고 간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 안고 왔는데, 시간이 자꾸 흘러가니 차츰 지루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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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 '예천사과' 예천에서 나는 사과가 아주 맛있대요. '예천사과'를 키우는 '애플밸리'를 알리는 조형물, 자기 고장을 알리는 일도 참 살뜰하게 하는구나 싶었답니다. ⓒ 손현희


사회책 겉그림에서 본 산촌마을 풍경

끝내 예천에 닿아서 보니, 꼬박 3시간이나 걸렸어요. 남편은 그새 배가 고프다고 하고, 곤충연구소까지는 읍내에서도 한 30km쯤 더 가야한다 하니, 먼저 밥부터 먹기로 했어요. 터미널 앞 허름한 밥집에 들어가서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김치찌개를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남편은 밥 두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어요.

밥집 할머니와 구미에서 왔다는 이야기하며, 곤충연구소에 간다는 이야기, 또 올해 치러낸 곤충바이오엑스포 이야기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가늠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빠듯했어요. 이러다가는 다른 곳에는 한 곳도 못 가볼 듯했지요. 어쩔 수 없이 또 11시15분에 연구소가 있는 고항리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타기로 합니다.

고항리까지 가는 버스에는 가는 내내 남편과 나, 또 다른 손님 넷만 있을 뿐이었어요. 텅텅 빈 버스 덕분에 자리 잡느라고 애쓸 일도 없었고, 자전거를 두 대씩이나 그대로 들고 탔지요. 산업곤충연구소가 있는 길도 여느 시골풍경과 다름없어요. 드문드문 낮은 지붕을 이고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저마다 산 밑에 오목하게 자리 잡고 있었어요. 어릴 때 사회책 겉그림에서 보았던 산촌마을과 같은 풍경이 퍽 정겨웠지요.

927번 국도로 들어서는 길에는 이 지역에서 이름난 '예천사과'를 알리는 조형물이 서 있었는데 작은 시골이지만 자기 고장을 알리는 일도 잘 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또 가는 길 내내 '이정표'가 많아서 처음 오는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꼼꼼하게 마음 쓴 흔적이 보여 참 좋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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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 밑에 자리 잡은 시골마을 마치 어릴 적에 배우던 사회책 겉그림에서 봤던 산촌마을 풍경과도 같았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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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항리 가는 길 시골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옛 집 모양 그대로 남아 있는 풍경이 정겹게 느껴졌답니다. ⓒ 손현희


이윽고 버스가 고항리에 닿자 우리를 내려놓더니 그대로 돌아서 오던 길로 다시 가더군요. 그러고 보니, 곤충연구소는 바로 산 밑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이제 다시 새벽에 구미에서 떠날 때 쌓던 자전거를 꺼내서 새로 끼워 맞춰 타고 올라갑니다.

산 밑이라 그런지 바람도 불고 날씨가 매우 차가웠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여기는 골짜기라서 읍내와는 적어도 4~5도쯤은 온도 차이가 난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놀랐던 건, 산자락에 하얀 눈이 쌓여있고, 어느 집 마당 한쪽에 수북하게 치워 쌓아둔 게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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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에서는 못 본 '눈' 어머나! 여기에서 눈 구경을 하는군요. 하얀 눈을 보고 마냥 즐거워했지요. ⓒ 손현희


"아! 이거 구미에서는 구경도 못하는 눈을 다 보네"하면서 잠깐 동안 어린아이처럼 눈 구경을 하기도 했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분들이 우리를 먼저 알아보고 밖으로 나왔어요. 자전거를 타고 갈 거라고 미리 알려두었던 터라 금방 알아보시더군요. 반갑게 맞아주는 분들을 보니, 잠깐이라도 마음 편하게 인터뷰하고 갈 수 있을 듯해서 무척 고마웠지요.

산업곤충연구소 시설운영담당이신 오규섭씨와 또 다른 식구들이 안내해주는 데로 다니면서 '폐교'였던 고항분교에다가 곤충연구소를 차리게 된 이야기도 듣고, '2007곤충바이오엑스포'를 열게 된 이야기와 또 예천군청에서 자기 고장을 더욱 잘사는 마을로 만들려고 애 쓰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즐겁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답니다.

시골사람 정이 느껴지는 살가움 때문에 아무 어려움 없이 많은 얘기를 들었어요. 하나하나 짚어주며 일러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지역 사람들은 참 좋은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구나 싶어 무척 흐뭇했답니다.

인터뷰를 잘 마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정서곤충(애완곤충)'인 장수풍뎅이를 애벌레 한 쌍과 번데기에서 벗어나 어른벌레가 된 것까지 세 통을 가지고 가서 길러보라면서 선물해주셨어요. 취재하러 와서 그저 가져갈 수 없다고 했더니, 한사코 넣어주시는 바람에 고맙게 여기며 인사를 한 뒤에 받아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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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였던 고항분교 자리에 곤충연구소가 이 연구소에서 십 년 남짓 이 지역을 살리는 곤충 연구가 이어져왔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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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속 곤충과 함께 골짜기를 그대로 살려서 곤충을 풀어놓았다고 해요. 겨울이라서 조금은 썰렁하기도 했지만, 여름철에는 아이들한테 매우 사랑받는 곳이라고 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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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안내해 주셨던 산업곤충연구소 오규섭씨 세 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면서 머무는 동안 꼼꼼하고 자세하게, 그리고 매우 살갑게 안내해주신 것 무척 고마워요. ⓒ 손현희


"오늘은 잔차 가방 싸다가 볼일 다 봤네!"

"그런데 이제 어쩌지? 벌써 3신데 여기서 읍내까지 가려면 또 한참 걸릴 텐데…."
"오늘은 어쩔 수 없다. 늦어도 5시15분차는 타야하니까 우리 다음으로 미루자. 잘 하면 다음 주에 또 올 수 있잖아."


"하는 수 없지. 그럽시다. 그래도 오늘 여기 와서 좋은 구경하고 또 좋은 사람들 만나서 멋진 글감도 얻었으니까 오늘은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룹시다. 그나저나 우리 사장님이 이번에 인심 한 번 써주면 좋겠구만."


연구소 식구들 배웅을 받으면서 이제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자전거를 탑니다. 내리막길인데다가 차가 그다지 없는 시골길이라 더욱 신이 났어요. 어차피 오늘은 마음먹은 대로 못할 테니까, 이제부터 예천 읍내까지는 느긋하게 즐기면서 갈 작정이에요. 산골마을 정겨운 풍경을 사진도 찍어가면서 '룰루랄라' 맘껏 즐기면서 자전거를 탔답니다.

"에고, 버스에다가 잔차 싣고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30km밖에 못 탔네."
"할 수 없지. 그래도 오늘 재밌었잖아."
"그럼, 재밌기는 했지."


우리가 좋아하는 시골풍경을 한껏 즐기며 또다시 예천 터미널에 닿았어요. 이제 구미로 가려면 자전거를 다시 풀어서 가방에 싸야 해요.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 하는 일인데도 또 힘이 들어요. 되도록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단단하게 묶어야 해요. 이젠 웬만하면 눈 감고도 할 수 있어야 하는 데도 할 때마다 애를 먹어요.

"아이고 죽겠네. 이거 진짜 좀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가방을 새로 사든지 해야지 원!"
"그럽시다. 하루 이틀 다니고 말 것도 아닌데, 돈 좀 더 써서라도 제대로 준비해야지 안 되겠네. 그나저나 오늘은 잔차도 못타고 잔차 가방 싸다가 볼일 다 보네."


또다시 끙끙거리면서 자전거를 싸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어요. 아까 우리가 처음에 예천에 닿았을 때부터 우리를 눈여겨보던 마을사람들이었어요. 차림새도 이상하고 낯선 사람 둘이서 버스에다가 커다란 짐을 싣고 오더니, 어디론가 갔다가 또다시 와서 가방을 싸는 게 신기했던 가 봐요.

'어디서 왔냐?', '이 자전거가 얼마짜리냐?', '내가 아는 아무개는 이천만 원짜리 자전거라 카더라…'하면서 이것저것 물었어요. 구미에서만 해도 산악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이 꽤 있어서 그다지 낯선 풍경이 아닌데, 시골에서는 아직 그리 흔한 일이 아니지 싶어요. 하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자전거를 쌀 때에는 늘 겪는 일이기도 해요. 어쨌거나 시골사람들 눈길을 온몸에 받으면서 예천을 떠나왔답니다.

사장님! 꼭 쉬게 해주세요!

사실은 이번 성탄절에 잘하면 사흘 동안 쉴 수 있을 듯도 해서 벌써부터 '예천'을 점찍어두고 여기저기 볼거리들을 알아보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터에 '폐교기사' 덕분에 한주 먼저 앞서 다녀오게 된 거였어요.

내가 다니는 일터에서 사장님이 12월 첫머리부터 약속한 게 하나 있었지요. 22일까지 영업사원한테 맡겨진 목표 95%를 모두 이루면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 내리 쉬겠다고 말이에요. 우리는 이때만을 기다리면서 미리 예천 갈 계획을 세워두었는데, 날이 갈수록 걱정이 앞섰어요.

처음엔 잘 할 듯하더니 갈수록 목표를 이루기는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러자 다시 85%까지 낮추었는데도 모두 매우 힘겨워하더라고요. 이젠 우리 사장님 넉넉한 마음씨 하나만 믿고 있답니다. 조금 못 미치더라도 꼭 쉬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사람 맘씨 좋고, 물 맑은 예천 이야기가 몇 꼭지 더 나오겠지요?

"사장님! 이번에 꼭 쉬게 해주셔야 해요.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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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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