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천 따라 걷던 그 길이 미륵정토였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77] 도솔천에서 만난 꽃들

등록 2008.04.30 18:38수정 2008.04.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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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 선운산 자락 도솔천에 자리잡고 자라고 있는 송악, 보물로 지정되어있는 식물이다. ⓒ 김민수

▲ 송악 선운산 자락 도솔천에 자리잡고 자라고 있는 송악, 보물로 지정되어있는 식물이다. ⓒ 김민수
 
불교에서 말하는 '육계육천' 중의 제4천으로 알려진 도솔천(兜率天). 석가도 현세에 태어나기 전 도솔천에 머물며 수행했다고 전해지는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로 알려진 도솔천.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도솔천. 그래서 '도솔'이라는 이름의 암자도 많다.
 
고창 선운사, 그곳에도 도솔천이 있다. 물론 작은 개울으로 여기에서의 천은 하늘 천(天)이 아니라 내 천(川) 일 터이나 '도솔천'은 '도솔천'이다. 도솔천 근처의 암벽에는 천연기념물 제367호인 사철 푸른 '송악'이 자리하고 있다. 내겐 송악, 선운사, 도솔천이 따로따로 머리 속에 들어 있었다. 
 
지난 4월 중순, 봄이 한창 기지개를 펴고 우리에게 달려오던 봄날 나는 그곳에 서있었다. 무식하게도 도솔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울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개울가의 산자락이 너무 좋아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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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붓꽃 도솔천을 따라 걷는 산자락에서 만난 꽃 ⓒ 김민수

▲ 각시붓꽃 도솔천을 따라 걷는 산자락에서 만난 꽃 ⓒ 김민수
 
맑고 신선한 공기뿐 아니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도솔천 산자락에는 아생화가 지천이었다. 제주도에서 만난 이후 만날 수 없었던 것들도 그 곳에서 하나 둘 반갑게 인사를 하니 어찌 그 길을 마다하겠는가!
 
도솔천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포장된 길을 걷고, 나는 구불구불 도솔천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나중에 그것이 도솔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그 전에도 선운사라는 존재 때문에 그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서 미륵정토가 따로없다 생각했는데 그 작은 개울 이름이 '도솔천'이라니, 이렇게 좋을 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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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물통이 남부지방의 그늘진 습지에서 자란다. ⓒ 김민수

▲ 나도물통이 남부지방의 그늘진 습지에서 자란다. ⓒ 김민수
 
꼭 한 번쯤은 다시 보고 싶었다. 피어날 시기를 맞춰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제주도에 가서 만나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가 거기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막 피어난다.
 
'하하하, 이슬 한 방울이면 꽉 찰 것 같은 나도물통이, 나도물통이!'
 
작고 못생긴 꽃이지만 그의 이름을 알았을 때 얼마나 재미있는지 단번에 그에 대한 전설을 꾸며낼 정도로 상상력을 자극하던 그 꽃이었기에 너무 반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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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발톱 씨방이 개구리지느러미를 닮았다. ⓒ 김민수

▲ 개구리발톱 씨방이 개구리지느러미를 닮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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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색 종다리를 닮은 현호색 ⓒ 김민수

▲ 현호색 종다리를 닮은 현호색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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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복초 복수초를 뽑으면 뿌리가 함께 엉켜 뽑힌다는 연복초 ⓒ 김민수

▲ 연복초 복수초를 뽑으면 뿌리가 함께 엉켜 뽑힌다는 연복초 ⓒ 김민수
 
개구리발톱, 현호색, 연복초…. 작은 꽃들이 지천에 피어나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아무리 조심해서 걸어도 돌아보면 이내 밟힌 꽃들이 보인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실감이 난다. 나는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그들과 행복한 눈맞춤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눈맞춤을 안해도 좋으니 그냥 돌아가달라고 하는 듯하다. 당신들이 눈맞춤을 해주지 않아도, 당신들 마음대로 붙여준 이름을 불려주지 않아도 나는 나대로 피어날 터이니 사랑 타령하면서 밟지 말라고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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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고 남녘의 따스한 기운때문인지 서울의 산자고보다 꽃이 크다. ⓒ 김민수

▲ 산자고 남녘의 따스한 기운때문인지 서울의 산자고보다 꽃이 크다. ⓒ 김민수
 
허긴, 사랑한다는 사람들에게 들꽃 제법 안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들꽃들이 수난을 당했는가? 지금도 여전히 들꽃을 사랑한다는 이들의 등산화에 짓이겨지는 꽃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쁜 꽃 혼자 보기 아까워 지인에게 알려주면 그 지인의 지인, 지인의 지인이 연결되면서 결국 그 예쁜 꽃은 수난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어나는 들꽃, 자기의 때를 놓치지 않고 그 어딘가에 피어나는 꽃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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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꽃 작은 별들이 땅에 내려와 앉은 듯 하다. ⓒ 김민수

▲ 개별꽃 작은 별들이 땅에 내려와 앉은 듯 하다. ⓒ 김민수
 
별꽃, 어느 별꽃이든 보면 하늘의 별들이 땅에 내려온 듯 아늑하다. 별똥별이 되어 땅에 떨어지면서 누군가의 소원 한 가지는 들어주었음직한 꽃들이다. 어쩌면 조물주가 밤하늘 별을 바라보면서 간절한 기도를 드리던 이들의 소원을 들어준 별똥별들만 꽃이 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걸었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는 길에는 앞서 걸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는 무엇에 팔려서 보지 못했을까? 허긴 걷고 또 걸어도 늘 보지 못하는 것 투성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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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두리풀 이파리 밑에 숨어피는 족두리풀의 꽃이 귀엽다. ⓒ 김민수

▲ 족두리풀 이파리 밑에 숨어피는 족두리풀의 꽃이 귀엽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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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 고창은 복분자로 유명하다. ⓒ 김민수

▲ 복분자 고창은 복분자로 유명하다. ⓒ 김민수
 
참으로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었다. 아마 보름여 지난 오늘은 도솔천자락에 있는 연록의 나무들이 도솔천을 연록색으로 물들어 있을 것이다. 그 연록의 물감이 풀어진 도솔천에서 물고기들이 뛰면 수면 위로 작은 파문이 일고, 자글자글 돌멩이에 부딛치는 물소리가 정겨울 것이다.
 
돌아보니 그 곳이 미륵정토였다.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 매일매일 나의 일상 속에 천국이 있었고 미륵정토가 있었으나 나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다 놓아버린 순간이었으니까. 바로 그 순간, 도솔천이 아니고 도심의 골목길 혹은 빌딩숲에 서있어도 그 곳이 바로 천국이요, 미륵정토가 아니겠는가! 돌아보니 도솔천 따라 걷던 그 길이 미륵정토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30 18:3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도솔천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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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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