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역사팩션 53] 대망의 임정 수립

김갑수 대하소설 <제국과 인간> 상해의 영혼들 편

등록 2008.05.01 11:07수정 2008.05.0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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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 뒤를 이은 명나라는 1405년부터 28년 동안 서양 원정을 벌여 수군 제독 정화(鄭和)가 지휘하는 막강한 해병대가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진출했다. 정화의 남양 원정군은 중화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고도 남는 군사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일곱 번이나 서양 원정에 성공하고 돌아왔다. 수십 개의 선단으로 조직된 100여척 중대형 함선에는 2만명의 정예군이 타고 있었다. 심지어는 317척의 함선과 2만8000명의 병사가 일제히 출동한 적도 있었다.

이것은 당대 세계 최강의 무적함대였다. 그들은 베트남 해안을 통과하여 호르므즈 해협과 홍해 그리고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와 케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원정을 한 것이지 정벌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황제의 하사품을 사여하고 답례 헌상물을 받아왔다. 요컨대 그들의 원정은 시혜와 과시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주변국들에게 문화를 주고 중화중심의 질서에 동참토록 하려는 외교 사신들의 행차 같은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동양은 서양에 나침반과 화약과 인쇄술을 전해 주었습니다. 나침반이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물건입니다. 나침반이 없으면 항해 중인 선장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안개나 어둠이나 폭풍은 그들을 절망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육지가 보이는 연안을 따라 항해를 했던 겁니다. 중국에는 이미 기원전에 밀짚과 나무로 묶은 지남철로 방향을 알았습니다. 지남철과 컴파스는 자장면과 스파게티의 관계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서양인들은 컴파스로 방향을 측정하면서 동양 정벌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동양에서 화약이 사용된 것은 2천 년 전 일입니다. 고려에도 그때 이미 화약이 있었습니다. 동양과 달리 서양인들은 총과 대포를 주로 만들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면 아무래도 사람 수가 적을 수밖에 없지요. 총과 대포는 해상 원정대의 약탈 무기가 되었습니다. 서양인들이 책을 동양에 대한 침략 수단으로도 사용했다는 것은 아까 말했습니다. 아마도 바이블 역시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민제호의 말대로 은의는 양날로 돌아오는 속성이 있는 것이었다. 어떤 날로 은의를 갚느냐는 당사자의 심성과 교양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다.

민제호는 결론지었다.

“제국주의 서양과 일본은 전형적으로 배반의 영혼을 가진 인간들이 현저히 많은 집단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상해임시정부

신규식은 신한혁명당과 대동단결선언 그리고 신한청년당으로 이어지는 구상을 본격적으로 구체화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임시정부의 조직 구성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었다. 그는 민제호와 민필호, 백주원과 김태수를 상해로 불렀다. 그리고 서둘러 사무소 물색을 지시했다. 그들은 3월 하순 프랑스 조계 보창로에 3층 건물을 얻어 독립임시사무소를 개설했다. 그는 여운형, 선우혁 등과 상의하여 1919년 4월 10일을 임시의정원회의 개최일로 확정했다.


오래 동안 간직해왔던 염원 하나가 마침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박찬익 서병호 등과 함께 몰려드는 독립지사들을 맞이하기에 분주했다. 특히 백주원과 김태수는 이들을 마중하고 안내하고 숙소를 마련해 주느라 쉴 틈이 없었다.

“교민 친목회를 빨리 만들어 동포들의 연락망을 만드시오.”

민필호 역시 분주하게 일했다. 특히 민필호는 새로 온 독립지사들에게 신뢰가 높았다. 그들은 신규식에게 사위를 잘 두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규식은 모든 일이 근심스럽기만 했다. 그것은 그의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독립운동의 순수성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 때문에 일이 그르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앞섰다.

신규식은 이광수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는 동경 유학생 독립선언이 있기 직전 상해로 왔다. 그것을 사전 피신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내심을 숨겨 두고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신채호에게는 다소간의 독선이 있었다. 그는 타협을 경멸했다. 그리고 그의 언행은 추상적일 때가 많았다.  여운형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선의 전통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그리고 공명심이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신규식은 이런 것들을 전혀 그런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여운형의 노력으로 이동녕, 이시영이 상해로 복귀했다. 신규식은 두 사람을 예를 갖춰 영접했다. 김동삼, 조성환도 상해에 정착했다. 국내에서 파견한 현순, 손정도도 합세했다. 상해인들은 모두 모여 진지하게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조선총독부에 맞서 망명정부를 만들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여운형만 신한청년당 조직을 제대로 갖춘 후에 하자고 주장했다.

신규식이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닥쳤다. 3월 17일 러시아에서 한족 중앙총회를 이끌던 문창범이 상해 측과 상의도 없이 대한국민회의를 구성하고 정부 수립을 선포한 것이었다. 그는 국내에 있는 손병희를 대통령으로, 미국에 있는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위촉했다.

임시정부 조직 구성에 착수하면서 시작된 신규식의 신경쇄약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하지만 그는 병을 숨기고 일을 계속했다. 정부가 만들어지기까지 그가 일에서 손을 떼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4월 10일 각계 대표가 모여 임시의정원이 구성되었다. 신규식과 민제호는 일찍부터 나가서 회의장에 오는 사람을 헤아렸다. 신규식은 1500명을, 민제호는 900명을 예상했다. 결과는 위임장을 보낸 사람까지 합쳐 천 명이 조금 안 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신규식은 민제호의 냉철한 계산력에 은밀히 놀랐다.

“어떻게 그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단 말이오?”
“예관 선생님 열정에서 삼분의 일만 줄인 겁니다.”

신규식은 자신의 현실 파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현상이나 실제보다 기대와 열정이 더 높았던 것이었다.

며칠 전 신규식은 박찬익과 민제호를 불러 말했다.
“의정원이 구성되면 나는 빠질까 하네. 정부 조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네.”
민제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박찬익은 격렬히 반대했다.
“항주쯤에 가서 요양이나 해야겠어. 더 신경을 쓰면 죽을 거라고 의사가 겁을 주더군.”

마침내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국내 8도 대표와 러시아령, 중국령, 미국령 등 3개 지역 대표가 의정원 의원 57명을 선발했다. 그리고 의정원 의장에 이동녕, 부의장에 손정도가 선출되었다.

의정원은 공식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채택했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국무원을 구성했다. 미국과 국내 인사가 지지하고, 최강국 미국의 힘이 배경으로 작용했는지 이승만이 행정수반인 국무총리에 선출되었다. 그리고 내무 안창호, 외무 김규식, 군무 이동휘, 재무 최재형, 법무 이시영, 교통 문창범 등의 내각을 구성하여 정부 수립을 세계에 선포했다.

1919년 4월 13일 오전 10시의 일이었다. <신보,申報>는 1872년 4월 30일에 상해에서 창간된 유력 신문이었다. 중국 신문 중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이 신문은 한국의 임시정부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한국인 6명이 어제 안동 순찰병들의 눈을 피해 상해에 도착했다. 그들은 이곳의 임시정부에 협조하는 요인들인데 임시정부의 총리는 이들에게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보낼 청원서 초고를 작성하게 명하였다. 이씨라는 한국인은 어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해로잠입했는데, 이 사람은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의 한국 영도자였다.

현재 상해에는 한국의 입시의정원 의장과 부의장 등이 모두 체류하고 있고 내무 사법 재무 교통총장 등도 상해에 속속 도착하고 있다. 공부총장은 이미 며칠 전에 북방을 통해 상해에 왔다고 한다. 몇 주일 전 상해 하비로 321번지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국회를 소집하였는데, 한국 8도에서 한 도에 3명씩 비밀리에 선거하여 뽑은 대표 24명 중 21명이 상해에 도착하였으며 만주와 미국, 러시아 등지의 한국인도 각각 대표 3인을 선출하여 파견했다. 이번 국회에서는 임시 헌법을 만들고 대통령을 뽑았다.

덧붙이는 글 | 제가 모친상을 당하여 지난 며칠 간 소설 연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가 모친상을 당하여 지난 며칠 간 소설 연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정화 #입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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