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BO의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새사연
서브프라임 부실이 터지기 직전까지 굴지의 세계적 기업들을 겨냥한 인수합병 시장을 장악하며 떠오르는 별로 주목을 받았던 신흥 금융자본이 바로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를 넓게 해석하면, 초기 기업 창업 시기에 주로 투자자 역할을 담당하는 벤처캐피탈, 성숙된 기업의 인수합병에 개입하는 차입매수펀드(LBO, Leveraged buyout fund) 그리고 그밖에도 부동산 펀드, 인프라 펀드 등이 있다. 이 모두를 통틀어 대략 1조 달러 규모(2006년 말 기준)라고 한다. 그 가운데 LBO가 64퍼센트(아시아는 82퍼센트)에 해당하는 7100억 달러 규모다. 금융위기 논란의 핵심이 LBO 펀드이므로 이를 중심으로 사모펀드를 바라봐도 무방하다.
알려진 것처럼,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는 자신이 조성한 몇 배, 심지어는 몇십 배에 달하는 자본을 은행을 비롯한 자본 조달처에서 차입(레버리지)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법적 규제는 거의 없다. 또한 사모펀드는 심지어 미국에서 조차 공식적인 기업법인으로 간주되지 않아 35퍼센트의 법인세도 안 내고 수익의 15퍼센트만 자본이득세(Capital Gain)로 납부해왔다. 그 마저도 차입금은 이자비용으로 공제되어 막대한 세금감면을 받고 있었다.(이로 인한 비난을 의식해 2007년 최대 사모펀드의 하나인 블랙스톤이 지난해 기업공개를 추진했다.)
사모펀드의 막대한 레버리지 덕에 실제 7000억 달러에 불과한 가장 작은 규모의 신흥 금융자본이 굴지의 제조업체들을 인수합병해내고 있다. 사모펀드가 인수할 수 있는 기업 규모의 제한은 없다.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전자도 사모펀드 몇 개가 협력하여 인수하고자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게 인수할 수 있는 것이 현대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증권시장의 2퍼센트 남짓 되는 바이아웃 펀드가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그 결과 미국 기업 인수합병 시장의 1/3을 사모펀드가 주도하는 형세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특히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면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들이 새로운 설비투자나 제품 개발에 주력하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기업을 합치고, 분해하고, 조정하여 다시 파는 행위, 즉 기업 자체를 제품으로 내놓고 거래를 하는 인수합병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은 바로 그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며 여기에서 가장 적극적인 중개자가 바로 사모펀드다.
투자 속성상 사모펀드가 인수 합병을 하는 목적은 기업을 꾸준히 보유하면서 수익을 획득하는 데 있기보다 단기적인 자본차익의 극대화에 있다. 따라서 인수 합병된 기업의 장래 발전전망이나 중, 장기적 경영방침과 조직운영은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경향이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뿐 아니라 자본시장의 전체 흐름으로 굳어져 금융자본(=주주) 전반이 기업에 대해 '주주이익을 최우선으로' 경영하기를 요구하는 것, 그리고 이를 실제 지분비중이나 이사회, 주주총회를 통해 관철시켜 내는 것을 주주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사모펀드가 중심이 된 현대 금융자본은 단지 신종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유통시키는 것 뿐 아니라 금융적 투자수익 확대를 위해 산업과 기업의 내부에까지 깊숙이 개입한다. 그 개입 양상을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로 부르기도 하는데, 금융 자본주의가 기업에 접합되면서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라는 신종 자본논리가 파생되는 것이다. 결국, 금융자본이 산업자본과 기업일반의 경영에까지 침투해서 수익확대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며 따라서 이는 당연히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가 국가적 수준에서 복지시스템을 무력화하고 민영화 절차를 밟아왔다면, 기업적 수준에서는 기업-직원-지역공동체 사이의 최소한의 균형조차 무력화하고 금융자본(주주)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관철해왔다. 따라서 주주자본주의는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기업적 표현이다. 황제적 주주(emperor shareholder), 제국주의적 주주(imperialistic shareholder)로 불리는 주주는 개미주주가 아니라 바로 거대 금융자본인 것이다. 이런 주주자본주의에게 "펀드와 투자기업의 관계는 맘에 들지 않으면 주식을 팔고 떠나는 ‘쿨’한 관계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거의 허무하게 들릴 뿐이다. 현대 금융자본주의는 절대 ‘쿨’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쿨할 생각도 없다. 특히 사모펀드는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는 기업을 뜯어고쳐 다시 팔 생각으로 해당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사모펀드라는 몸집이 가벼운(?) 금융자본이 대형 상장기업의 차입인수를 쉽게 하고, 이를 위해 엄청난 레버리지를 동원하며, 그 차입금을 결국 인수된 기업의 부채로 떠넘기는 구조, 이는 금융자본도 산업자본도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매우 위험한 작동 메커니즘이다. 저금리 기조를 배경으로 한 풍부한 유동성에 주식시장의 호황세가 가세하면서 과다한 인수비용을 부담하는 인수합병이 팽창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위험 발생에 대한 대비책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도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과 함께 불거지게 된다.
금융시장의 새 강자 국부펀드, 그들은 월가의 금융자본과 다른가?"채무 위험이 없는 대규모 자금을 보유한 국부펀드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등을 대체하면서 새로운 자금 중개자로 부상하고 있으며 최종적인 국제 자본 공급처였던 중앙은행들의 위상을 빼앗고 있다." - 글로벌 인사이트, 얀 랜돌프 이사최근 세계 금융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국부펀드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와 달리 월가 중심부에서 기획되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이면, 즉 다시금 누적되는 미국 경상수지 적자와 중국 중심의 아시아 경상수지 흑자 누적, 그리고 2002년부터 유가 상승으로 인한 중동의 오일머니 축적을 자원으로 이를 정부가 펀드화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들 국부펀드는 금융자본 중심부에서 기획된 금융자본이 아니기에 통제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 점에서 최근 OECD나 다보스포럼 등 전통 선진국들에서 국부펀드 규제와 투명성 논의가 나오고 투자활동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 세계 외환의 창고는 아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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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3배, 2.5배의 신장률을 보이던 2000년대 아시아 외환보유고와 중동의 석유판매 기금도 3배 이상 급신장하여 각각 3조 달러 이상의 규모가 되었으며 2012년에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각각 2조 달러 이상 팽창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오일 머니와 외환 보유고를 자산으로 정부가 투자기관을 설립한 것이 바로 국부펀드다. 2015년이면 세계 국부펀드의 규모가 미국 GDP인 14조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잠재력을 키워온 중국 중심의 아시아 외환보유고와 중동의 오일머니가 국부펀드라는 틀을 갖추면서 글로벌 신용경색과 유동성 부족을 일거에 해결해 버린 것이 바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씨티그룹과 메릴린치, UBS 등 초대형 은행들의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을 메워준 것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국부펀드들이 이들 은행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200억 달러 이상이다. 과거 미국 경상적자 시기에 미국 채권을 사들여서 달러의 미국 환류를 측면 지원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현재는 국부펀드를 두고 섣불리 그 성격을 예단하기 어렵다. 기존 금융자본의 입장처럼 국부펀드를 민족주의나 정치논리로 바라보거나 투명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정당하지 않다. 오히려 사모펀드나 헤지펀드가 더욱 불투명하며 운동논리 역시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번 사태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부펀드를 세계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대항마로 인식하는 것은 섣부르다. 자금은 그것이 무엇을 목적으로 투자되는가에 따라 다를 뿐 사적 자본인가, 연기금인가, 대학재단 기금인가, 아니면 국부펀드인가 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투자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본원적이다. 이는 미국 연기금이 투기자본과 완전히 동일한 운동을 하는 것을 봐도 분명하다.
▲아시아의를 중심으로 본 국부펀드의 자산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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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외환보유고와 오일머니를 쥐고 있는 국가의 성격에 의해 해당 국부펀드의 성격도 규정되는 것이다. 즉, 국부펀드가 월가의 금융자본과 다른지, 아니면 월가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투자은행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지는 순전히 그 펀드의 주인인 정부, 또는 국민에게 달려있을 뿐 국부펀드라는 명칭 자체는 어떠한 규정력도 갖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신자유주의 30년 역사 이래 최대의 금융위기라는 현재 위기의 첫 단계를 막아준 국부펀드의 출현은 "실물경제를 장악해야 금융도 장악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해 주었다는 점이다. 이들 국부펀드는 결국 중국의 제조업으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와 중동의 자원이라는 실물경제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줄곧 금융허브 전략을 떠들어대고 있는 한국의 위정자들에게 실물경제의 기초가 없는 금융허브 전략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분명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한국의 국부펀드는? |
전통 제조업 투자를 선호했던 월가의 유명한 투자 워렌 버핏은 이번 세계 금융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에 지금의 금융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투기적 경향이 시장의 본질이기에 자본주의 생리상 주기적인 불안정성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는 그 조차도 이번 금융위기의 끝점에 있었던 각종 파생상품과 헤지펀드, 사모펀드의 차입투자를 용인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굴지의 제조업을 인수 합병하여 업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고 ‘월가의 왕’으로 군림했던 사모펀드들이 이제는 그 힘을 잃고 ‘떨어지는 별’, ‘애물단지’로 전락한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 발 서브프라임 부실 와중에 어설프게 유동화 증권 매수에 뛰어들어 손해를 본 우리은행 등 한국의 은행권과 뒤늦게 국부펀드로서 메릴린치 구원투수전에 뛰어든 한국투자공사(KIC)는 도대체 어떤 투자전략의 일환으로 그 같은 투자를 결정한 것인가.
한편, 2008년 4월 미국 기업들의 실적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1위 자동차 기업인 제너럴 모터스(GM)가 3분기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는데, 그 주요 원인이 GM의 자회사인 금융회사 GMAC의 모기지 손실을 모두 메우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 한때 자동차 제조를 소홀히 하고 업계 세계 1위 자리를 도요타에게 내주면서까지 금융에 몰두한 GM이 거꾸로 금융에 발목이 잡힌 상황이 지금의 시점이다. 한국정부에게는 곳곳에서 들려오는 상황반전 신호가 잡히지 않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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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사이트 이스트플랫폼(http://epl.or.kr)에도 게재됩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연구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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