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펀드는 월가 금융자본의 대항마인가

[글로벌 금융 위기와 한국 경제의 진로 ③]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새로운 첨병들

등록 2008.05.08 16:28수정 2008.05.0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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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우리나라의 고용증가분은 18만 명에 불과했다. 지난 3년 새 가장 적은 규모다. 1/4분기 GDP 성장률 역시 0.7퍼센트로 급락했다. 급기야 경제성장률 7%를 장담하며 당선된 이명박 정부가 4개월 만에 손을 들었다. 우리 경제가 경기하강국면에 들어섰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여러 대목에서 미국 경제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고용증가률이 마이너스 0.7퍼센트를 기록하며 실업률 5퍼센트 대에 진입하는가 하면 4분기 GDP 성장률은 0.6퍼센트로 추락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미국경제는 공식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가와 곡물가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가 하며 달러가치도 바닥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지표와 주가도 하루를 예측하기 어렵다. 경제기관들의 전망치들은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수정되기 일쑤다. 한국경제도 다르지 않다. 7%는 온데간데없고 이런 추세라면 4% 성장도 장담할 수 없다. 세계와 한국 경제가 요동치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은 최근 일어나고 있는 급격한 변동의 구체적 징후들을 금융자본주의라는 전체적 틀 속에서 분석해보려 한다.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할 대안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있어 최근의 세부 동향을 보다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종합하고 구조화해내는 작업은 대단히 의미있는 시도가 될 것이라 본다...<새사연>

현대 금융자본주의를 말해주는 주요 특징들로는 전체 산업에서 금융부문의 비약적 팽창, 은행으로부터 자본시장으로의 금융 중심 이동 그리고 파생상품이라는 신종 금융상품의 등장과 금융거래의 복잡성 등이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들도 부상한다. 한국에서 GE(제너럴 일렉트릭)의 잭 웰치가 일약 스타가 되고 그의 저서가 경영 모범서가 된 것이 하나의 사례다. 1981년 잭 웰치는 에디슨으로부터 시작된 유명한 전기회사, 즉 제조업체인 GE의 최연소 회장으로 취임한다.(GE 한국 사이트를 방문해 보면 'GE 발자취는 1887년 서울 경복궁에서 시작된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는 1등이 아닌 기업을 미련 없이 팔고 수익성 높은 기업을 적극 인수하는 등 기업을 사고파는 물건으로 뒤바꿔놓은 인물이자 전통적인 제조업체인 GE의 금융부문을 대폭 강화하는 경영전략을 펴면서 금융이 21세기 성장을 주도할 분야라고 주장한 경영자다. 바로 금융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기업 경영에 적용해 실재화한 인물이며 최근까지 한국 경영자들이 떠받들고 추앙하던 인물이다.


잭 웰치가 회장이 되던 1981년, 블룸버그통신이라는 세계 최초의 금융 뉴스 분석 서비스 모델로 기업을 창업한 마이클 블룸버그 역시 금융자본주의의 신화와 함께 성장한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약 100개 지역 1200명의 특파원을 포함해 약 8000명의 직원이 90개 국 이상에 금융 분석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전문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하여 월가를 넘어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대 금융자본주의에서 떠오르는 신진 스타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가 금융자본주의로 변신한 이후 단지 잭 웰치나 블룸버그와 같은 스타만을 배출했을까. 그렇지 않다. 더욱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스타들도 출현한다. 이 이슈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① 누가 무게중심이 옮겨진 자본시장의 주요 플레이어인가. 그리고 신종 금융상품은 누가 나서서 거래하는가 ② 금융자본은 기존의 산업자본이나 기업 내부에 관여하지 않고 오직 실물산업과 무관한 금융시장 자체만을 거래하는가, 아니면 실물산업과 기업 내부에 적극 개입하는가 하는 질문들이 그것이다.

1990년대 금융자본주의가 전면화한 이후, 특히 2000년 이후 놀라운 속도의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 금융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신진 주자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익히 알려진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이고, 서브프라임 부실이 세계화되던 지난해 말부터 주목을 받아온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펀드다. 말하자면 신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신흥 금융자본(new power brokers)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양적으로 이들 신흥 금융자본이 얼마만한 규모로 성장해 왔는지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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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와 헤지펀드 등이 기존 연기금이나 뮤추얼펀드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새사연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집계방식에 따르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그리고 중동 오일머니와 아시아 외환보유고를 합하면 약 8조 4000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이는 오랜 역사를 가진 뮤추얼 펀드의 40퍼센트에 달하는 규모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의 성장세인데, 이들은 각각 2000~2006년에 3배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했다. 뮤추얼 펀드가 8퍼센트 성장을 할 때 이들 신흥자본은 평균 20퍼센트의 신장률을 보인 것이다.

더 주목해야할 지점은 매킨지가 예상한 향후 2012년까지의 추가적인 성장규모다.  앞으로의 성장률을 보수적으로 예측한다 해도 2012년에 신흥 금융자본의 규모가 2006년 말의 2배 규모에 달하는 15조 2000억 달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보수적 예측보다도 훨씬 더 높은 성장을 구가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이번 금융위기의 여파로 심각한 위축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변동 폭이 매우 클 것은 분명하며 그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물론 8조 원 규모의 신흥자본은 아직 전 세계 금융자산 167조 원의 5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한다고 말할 수 있고, 새로운 금융혁신과 새로운 금융지형, 나아가 경제지형을 바꾸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모펀드, 헤지펀드, 국부펀드
*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 : 통상 대표적인 공모펀드인 뮤추얼 펀드와 대비되는데, 사전적으로만 해석하면 100인 미만 (혹은 50인 미만)의 개인이나 기관이 자금을 조성하여 운영하는 펀드라고 할 수 있다. 헤지펀드 역시 자금 모집방식으로 보면 사모펀드다. 사적으로 모집한 소수의 투자자들로 구성된 펀드이기 때문에 법적인 규제나 제한, 법적인 공시 의무 등이 거의 없다. 다양한 곳에 투자되지만 사모펀드의 절반 이상이 차입매수(buyout)에 투자되는 것을 보더라도 사모펀드의 대부분은 적극적 경영 개입과 인수 합병, 그리고 되팔기를 통한 차익실현이 목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변양호씨가 조성한 장보고펀드와 장하성씨가 관여한 장하성펀드로 잘 알려졌다. 론스타 펀드, 칼라일 펀드, 소버린 펀드 등이 모두 외국계 사모펀드다.

* 헤지펀드(Hedge Fund): 주식, 채권을 포함하여 주로는 통화 및 선물, 옵션, 스왑 등의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를 통해 고수익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펀드다.

*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외환 보유액, 석유와 같은 국영 자원의 판대 수익, 세금 등 국가가 보유한 자금으로 조성한 펀드를 국부펀드라고 한다.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지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로 축적된 외환보유고와 고유가로 벌어들인 중동의 오일달러 규모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면서 국부펀드의 위상이 갑자기 높아졌다. 국부펀드는 금융투자와 같은 자산운용을 통해 고수익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그밖에 미래의 연금재원 확보, 천연자원 고갈에 대비해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 확보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투자활동을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2005년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하여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해외에 투자했다.

파생상품과 함께 성장한 헤지펀드

1992년 '영국 파운드화 투매'로 영국 중앙은행을 손들게 하고 보름 만에 10억 달러의 수익을 챙겨 세상을 놀라게 했던 헤지펀드는 1990년까지만 해도 390억 달러에 불과한 작은 규모였다. 그러나 10년 새 4900억 달러(2000년)로 커지더니 2006년 말 기준으로 1조 5000억 달러까지 고속 성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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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의 자산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 새사연


그러나 헤지펀드가 운영하는 차입 레버리지까지 감안하면 그들이 실제 금융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총투자규모는 6조 달러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아가 2012년에는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약 3조 5000억 달러로 성장할 것이고 레버리지 투자를 포함하면 전 세계 연기금의 1/3에 해당하는 12조 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헤지펀드는 증권시장과 채권시장, 선물시장과 현물시장, 각 국가의 외환시장을 넘나들면서 국경을 초월한 각종 첨단 파생상품을 거래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왔고, 그 와중에 첨단 금융기법, 거래전략, 전자거래시스템, 위험관리 시스템 개발 등을 주도하며 고수익을 창출해왔다. 그 결과 2007년 헤지펀드 매니저 상위 25명의 평균 수입액은 3억 6000만 달러(미국가정 평균소득 6만 5000달러, 헤지펀드 수입 1위는 폴슨 앤 컴퍼니 대표 존 폴슨으로 37억 달러)라는 놀라운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이는 2002년에 비해 18배나 상승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주주자본주의 기업 CEO가 받는 스톡옵션을 능가하는 엄청난 규모로서 신자유주를 역동하게 하는 일등 공신이 누구인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현대의 첨단 금융자본주의가 유지, 확산될 수 있게 한 장본인이 헤지펀드였던 만큼 미국 발 서브프라임 부실 확산의 중심에 헤지펀드가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특히 뒤에서 자세히 설명할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 파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도 바로 베어스턴스가 투자했던 헤지펀드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채권 부실로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사실 헤지펀드는 차입(Leverage)을 매개로 투자은행이나 상업은행, 심지어 중동의 오일머니와도 서로 얽혀 엄청난 자금을 운용하며 금융시장의 큰 손으로서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일반 상업은행 → 투자은행 →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로 이어지는 금융자본의 사슬구조가 존재하며 그 최종적인 후원자로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금융위기, 특히 2008년 3월 14일 베어스턴스 파산 위기에서 매우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 자금 연쇄사슬 가운데 사모펀드와 함께, 헤지펀드가 과감하게 전방에 나서서 행동대원 역할을 했던 것이고 상업은행이나 투자은행들은 든든한 물주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사모펀드와 헤지펀드가 주동이 되어 일으킨 금융위기를 일차적으로 수습하는 데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펀드가 앞장서게 된다.

물론 헤지펀드 역시 이번 세계 금융위기 조장의 주범이면서 그 피해범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2008년 1/4분기 헤지펀드 규모는 1조 8800억 달러까지 늘어났지만 예년에 비해 성장률은 현저히 둔화되었고 헤지펀드로의 자금유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1/4분기 헤지펀드의 평균 수익률도 마이너스 3퍼센트로 20여 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기업 인수합병을 본업으로 하는 사모펀드

한미은행을 인수한 칼라일 펀드, SK 경영권을 위협했던 소버린,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되판 론스타 펀드까지 투기자본으로 알려진 사모펀드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상상 이상의 영향력을 갖는다. 2007년 텍사스 최대 전력업체인 TXU는 450억 달러에 미국 최대 사모펀드인 콜버그 크라비츠 로버츠(KKR)에 차입인수 되었다. 그밖에도 바슈롬(워버그 핀커스, 45억 달러), 퍼스트데이터(KKR, 290억 달러), 얼라이언스부츠(KKR, 205억 달러), 얼라이언스데이터(블랙스톤, 64억 달러)등이 2007년 상반기에 인수합병된 몇 가지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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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BO의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 새사연


서브프라임 부실이 터지기 직전까지 굴지의 세계적 기업들을 겨냥한 인수합병 시장을 장악하며 떠오르는 별로 주목을 받았던 신흥 금융자본이 바로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를 넓게 해석하면, 초기 기업 창업 시기에 주로 투자자 역할을 담당하는 벤처캐피탈, 성숙된 기업의 인수합병에 개입하는 차입매수펀드(LBO, Leveraged buyout fund) 그리고 그밖에도 부동산 펀드, 인프라 펀드 등이 있다. 이 모두를 통틀어 대략 1조 달러 규모(2006년 말 기준)라고 한다. 그 가운데 LBO가 64퍼센트(아시아는 82퍼센트)에 해당하는 7100억 달러 규모다. 금융위기 논란의 핵심이 LBO 펀드이므로 이를 중심으로 사모펀드를 바라봐도 무방하다.

알려진 것처럼,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는 자신이 조성한 몇 배, 심지어는 몇십 배에 달하는 자본을 은행을 비롯한 자본 조달처에서 차입(레버리지)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법적 규제는 거의 없다. 또한 사모펀드는 심지어 미국에서 조차 공식적인 기업법인으로 간주되지 않아 35퍼센트의 법인세도 안 내고 수익의 15퍼센트만 자본이득세(Capital Gain)로 납부해왔다. 그 마저도 차입금은 이자비용으로 공제되어 막대한 세금감면을 받고 있었다.(이로 인한 비난을 의식해 2007년 최대 사모펀드의 하나인 블랙스톤이 지난해 기업공개를 추진했다.)

사모펀드의 막대한 레버리지 덕에 실제 7000억 달러에 불과한 가장 작은 규모의 신흥 금융자본이 굴지의 제조업체들을 인수합병해내고 있다. 사모펀드가 인수할 수 있는 기업 규모의 제한은 없다.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전자도 사모펀드 몇 개가 협력하여 인수하고자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게 인수할 수 있는 것이 현대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증권시장의 2퍼센트 남짓 되는 바이아웃 펀드가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그 결과 미국 기업 인수합병 시장의 1/3을 사모펀드가 주도하는 형세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특히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심화되면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들이 새로운 설비투자나 제품 개발에 주력하기 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기업을 합치고, 분해하고, 조정하여 다시 파는 행위, 즉 기업 자체를 제품으로 내놓고 거래를 하는 인수합병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은 바로 그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며 여기에서 가장 적극적인 중개자가 바로 사모펀드다.

투자 속성상 사모펀드가 인수 합병을 하는 목적은 기업을 꾸준히 보유하면서 수익을 획득하는 데 있기보다 단기적인 자본차익의 극대화에 있다. 따라서 인수 합병된 기업의 장래 발전전망이나 중, 장기적 경영방침과 조직운영은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경향이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뿐 아니라 자본시장의 전체 흐름으로 굳어져 금융자본(=주주) 전반이 기업에 대해 '주주이익을 최우선으로' 경영하기를 요구하는 것, 그리고 이를 실제 지분비중이나 이사회, 주주총회를 통해 관철시켜 내는 것을 주주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사모펀드가 중심이 된 현대 금융자본은 단지 신종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유통시키는 것 뿐 아니라 금융적 투자수익 확대를 위해 산업과 기업의 내부에까지 깊숙이 개입한다. 그 개입 양상을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로 부르기도 하는데, 금융 자본주의가 기업에 접합되면서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라는 신종 자본논리가 파생되는 것이다. 결국, 금융자본이 산업자본과 기업일반의 경영에까지 침투해서 수익확대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며 따라서 이는 당연히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가 국가적 수준에서 복지시스템을 무력화하고 민영화 절차를 밟아왔다면, 기업적 수준에서는 기업-직원-지역공동체 사이의 최소한의 균형조차 무력화하고 금융자본(주주)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관철해왔다. 따라서 주주자본주의는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기업적 표현이다. 황제적 주주(emperor shareholder), 제국주의적 주주(imperialistic shareholder)로 불리는 주주는 개미주주가 아니라 바로 거대 금융자본인 것이다. 이런 주주자본주의에게 "펀드와 투자기업의 관계는 맘에 들지 않으면 주식을 팔고 떠나는 ‘쿨’한 관계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거의 허무하게 들릴 뿐이다. 현대 금융자본주의는 절대 ‘쿨’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쿨할 생각도 없다. 특히 사모펀드는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는 기업을 뜯어고쳐 다시 팔 생각으로 해당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사모펀드라는 몸집이 가벼운(?) 금융자본이 대형 상장기업의 차입인수를 쉽게 하고, 이를 위해 엄청난 레버리지를 동원하며, 그 차입금을 결국 인수된 기업의 부채로 떠넘기는 구조, 이는 금융자본도 산업자본도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매우 위험한 작동 메커니즘이다. 저금리 기조를 배경으로 한 풍부한 유동성에 주식시장의 호황세가 가세하면서 과다한 인수비용을 부담하는 인수합병이 팽창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위험 발생에 대한 대비책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도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과 함께 불거지게 된다.

금융시장의 새 강자 국부펀드, 그들은 월가의 금융자본과 다른가?

"채무 위험이 없는 대규모 자금을 보유한 국부펀드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등을 대체하면서 새로운 자금 중개자로 부상하고 있으며 최종적인 국제 자본 공급처였던 중앙은행들의 위상을 빼앗고 있다." - 글로벌 인사이트, 얀 랜돌프 이사

최근 세계 금융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국부펀드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와 달리 월가 중심부에서 기획되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이면, 즉 다시금 누적되는 미국 경상수지 적자와 중국 중심의 아시아 경상수지 흑자 누적, 그리고 2002년부터 유가 상승으로 인한 중동의 오일머니 축적을 자원으로 이를 정부가 펀드화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들 국부펀드는 금융자본 중심부에서 기획된 금융자본이 아니기에 통제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 점에서 최근 OECD나 다보스포럼 등 전통 선진국들에서 국부펀드 규제와 투명성 논의가 나오고 투자활동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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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외환의 창고는 아시아다. ⓒ 새사연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3배, 2.5배의 신장률을 보이던 2000년대 아시아 외환보유고와 중동의 석유판매 기금도 3배 이상 급신장하여 각각 3조 달러 이상의 규모가 되었으며 2012년에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각각 2조 달러 이상 팽창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오일 머니와 외환 보유고를 자산으로 정부가 투자기관을 설립한 것이 바로 국부펀드다. 2015년이면 세계 국부펀드의 규모가 미국 GDP인 14조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잠재력을 키워온 중국 중심의 아시아 외환보유고와 중동의 오일머니가 국부펀드라는 틀을 갖추면서 글로벌 신용경색과 유동성 부족을 일거에 해결해 버린 것이 바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씨티그룹과 메릴린치, UBS 등 초대형 은행들의 서브프라임 대출 부실을 메워준 것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국부펀드들이 이들 은행에 투자한 금액은 무려 200억 달러 이상이다. 과거 미국 경상적자 시기에 미국 채권을 사들여서 달러의 미국 환류를 측면 지원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공격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현재는 국부펀드를 두고 섣불리 그 성격을 예단하기 어렵다. 기존 금융자본의 입장처럼 국부펀드를 민족주의나 정치논리로 바라보거나 투명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정당하지 않다. 오히려 사모펀드나 헤지펀드가 더욱 불투명하며 운동논리 역시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번 사태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부펀드를 세계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대항마로 인식하는 것은 섣부르다. 자금은 그것이 무엇을 목적으로 투자되는가에 따라 다를 뿐 사적 자본인가, 연기금인가, 대학재단 기금인가, 아니면 국부펀드인가 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투자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본원적이다. 이는 미국 연기금이 투기자본과 완전히 동일한 운동을 하는 것을 봐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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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를 중심으로 본 국부펀드의 자산규모 ⓒ 새사연


결국 외환보유고와 오일머니를 쥐고 있는 국가의 성격에 의해 해당 국부펀드의 성격도 규정되는 것이다. 즉, 국부펀드가 월가의 금융자본과 다른지, 아니면 월가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투자은행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지는 순전히 그 펀드의 주인인 정부, 또는 국민에게 달려있을 뿐 국부펀드라는 명칭 자체는 어떠한 규정력도 갖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신자유주의 30년 역사 이래 최대의 금융위기라는 현재 위기의 첫 단계를 막아준 국부펀드의 출현은 "실물경제를 장악해야 금융도 장악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해 주었다는 점이다. 이들 국부펀드는 결국 중국의 제조업으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와 중동의 자원이라는 실물경제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줄곧 금융허브 전략을 떠들어대고 있는 한국의 위정자들에게 실물경제의 기초가 없는 금융허브 전략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분명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한국의 국부펀드는?
전통 제조업 투자를 선호했던 월가의 유명한 투자 워렌 버핏은 이번 세계 금융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에 지금의 금융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투기적 경향이 시장의 본질이기에 자본주의 생리상 주기적인 불안정성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는 그 조차도 이번 금융위기의 끝점에 있었던 각종 파생상품과 헤지펀드, 사모펀드의 차입투자를 용인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굴지의 제조업을 인수 합병하여 업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고 ‘월가의 왕’으로 군림했던 사모펀드들이 이제는 그 힘을 잃고 ‘떨어지는 별’, ‘애물단지’로 전락한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 발 서브프라임 부실 와중에 어설프게 유동화 증권 매수에 뛰어들어 손해를 본 우리은행 등 한국의 은행권과 뒤늦게 국부펀드로서 메릴린치 구원투수전에 뛰어든 한국투자공사(KIC)는 도대체 어떤 투자전략의 일환으로 그 같은 투자를 결정한 것인가.

한편, 2008년 4월 미국 기업들의 실적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1위 자동차 기업인 제너럴 모터스(GM)가 3분기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는데, 그 주요 원인이 GM의 자회사인 금융회사 GMAC의 모기지 손실을 모두 메우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 한때 자동차 제조를 소홀히 하고 업계 세계 1위 자리를 도요타에게 내주면서까지 금융에 몰두한 GM이 거꾸로 금융에 발목이 잡힌 상황이 지금의 시점이다. 한국정부에게는 곳곳에서 들려오는 상황반전 신호가 잡히지 않고 있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사이트 이스트플랫폼(http://epl.or.kr)에도 게재됩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연구센터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사이트 이스트플랫폼(http://epl.or.kr)에도 게재됩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연구센터장입니다.
#신자유주의 #금융자본 #국부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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