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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나무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습니다. 작고 수수하게 생긴 꽃은 5월의 신부를 닮은 듯하고, 국수나무라는 이름 때문인지 고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팝나무, 이팝나무, 국수나무는 보랫고개와 관련이 있는 이름입니다. 그래도 국수나무는 한 겨울을 보내고 청보리가 익어갈 무렵에 피어나니 아무래도 조팝나무나 이팝나무보다는 덜 슬픈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논밭에서 일을 하다 새참으로 먹는 국수 정도의 느낌이지요.
"언제 국수 먹여 줄 거야?"
결혼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요즘 결혼식이야 전문식당을 통해서 뷔페나 갈비탕으로 손님 대접을 하지만 옛날에는 잔치가 열리면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국수를 끓여내곤 했습니다.
제 결혼식 때에도 국수를 삶아내어 손님을 대접했는데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막 건져낸 국수에 고명을 얹어 김치와 함께 내어 놓았습니다. 국수로 손님을 대접하던 시절만 해도 요즘처럼 호화 결혼식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도 많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위협당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광우병 공포로 인해 쇠고기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고,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가금류의 고기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습니다. GMO(유전자 변형 조작식품) 옥수수가 농약잔류검사도 받지 않고 가공식품으로 둔갑을 하게 되었으니 매장에 먹을 것은 그득하지만 뭣 하나 마음놓고 먹을 것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때깔이 좋은 채소류는 화학비료나 농약 범벅이고 그나마 유기농채소라는 것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문턱이 너무 높습니다.
국수나무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유년 시절 보릿고개를 떠올렸습니다. 그때는 우리 집 뿐 아니라 몇몇 집을 빼고는 대부분 배고프게 살았던 시절이라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자식 새끼들 세 끼를 먹이려고 바둥거리지만 보릿고개를 넘겨야 할 시기가 되면 하얀 흰 쌀밥을 고사하고 수제비라도 거르지 않고 세 끼를 건사하면 잘 먹은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지금처럼 학교 공부에 목을 매지 않을 때였으니 언 땅이 풀리기도 전에 삽과 곡괭이를 들고 산으로 나가 칡도 캐고, 논에 들어가 미꾸라지도 잡고, 우렁이도 잡았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풀 하나라도 허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려웠어도 인간미 넘치는 삶을 살았던 것 같고, 지난 일이니 하나의 추억처럼 남았습니다.
지금은 국수를 주식으로 먹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쌀이 없어 국수로 주식을 삼고, 국수에 물려서 국수만 보아도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었습니다. 어쩌다 라면이라도 하나 생기면 물을 많이 잡아 국수를 넣어 끓였고, 꼬들꼬들 파마머리를 한 것 같은 라면발을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꽃 이름에 들어 있는 사연들은 많지만 이렇게 조팝나무, 이팝나무, 국수나무처럼 정말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이름을 붙여진 꽃들을 보면 그 여느 사연들보다도 마음 깊이 새겨집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도 무엇이든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먹을 것은 지천에 쌓였지만 어느 것 하나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네 몸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추억들까지도 다 도둑 맞는 것 같아 슬픕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5.16 17:2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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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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