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1) 정당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339] '비핵화' 조약과 '핵없애는' 조약

등록 2008.06.14 12:18수정 2008.06.1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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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비핵화조약

 

.. 태평양 팔라우 섬에서는 비핵화조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이탈리아 세베소의 농약공장 폭발 이후 화학산업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서기도 하고 ..  《페트라 켈리/이수영 옮김-희망은 있다》(달팽이,2005) 54쪽

 

 “비핵화조약을 요구(要求)하는”은 “비핵화조약을 바라는”이나 “핵무기를 없애겠다는 조약을 바라는”으로 다듬어 봅니다. “세베소의 농약공장 폭발(爆發) 이후(以後)”는 “세베소 농약공장이 터진 뒤로”로 손질합니다.

 

 ┌ 비핵화(非核化) : 핵무기가 없어짐. 또는 핵무기를 없게 함

 │

 ├ 비핵화조약을 요구하는 시위

 │→ 핵(핵시설) 없는 곳을 바라는 시위

 │→ 핵을(핵무기를) 없애자는 시위

 │→ 핵을(핵무기를) 안 쓰겠다는 조약을 바라는 시위

 └ …

 

 핵무기가 없어지거나 핵무기를 없애자고 하는 ‘비핵화’라고 합니다. 그러면, 핵무기를 만들자고 하는 일은 무엇일까 헤아려 봅니다. ‘핵화’가 될까요?

 

 ┌ 핵무기는 싫어 / 핵무기는 싫다

 ├ 핵무기를 버리자 / 핵무기를 버려라

 ├ 핵무기를 없애자 / 핵무기는 걷어치우자

 └ …

 

 “폭력 없는 세상”이나 “폭력 없는 학교”를 바라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쟁 없는 세상”을 바라는 이들도 있으며, “학벌 없는 세상”을 바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비폭력’과 ‘비전쟁’과 ‘비학벌’이 아닌, ‘폭력 없는’과 ‘전쟁 없는’과 ‘학벌 없는’을 말합니다.

 

 ┌ (무엇) + 없는

 └→ 핵없는 나라 / 핵무기없는 나라 / 폭력없는 나라 / 학벌없는 나라

 

 ‘-없는’을 뒷가지 삼아서 새 낱말을 지으면 어떻겠느냐 생각합니다. ‘비핵화조약’이라면 ‘핵없는조약’이나 ‘핵무기없는조약’, 또는 ‘핵없애는조약’이나 ‘핵무기없애는조약’으로 담아내어 가리키면 어떠할까 생각합니다.

 

 

ㄴ. 정당화하다

 

..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느낌과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종교에 의거하기도 하지  ..  《타하르 벤 젤룬/홍세화 옮김-인종차별 야만의 색깔들》(상형문자,2004) 38쪽

 

 “자신들의 느낌과 행동(行動)을”은 “자신들 느낌과 한 일을”로 손봅니다. “-하기 위(爲)해서”는 “-하려고”로 다듬어 주고, “종교에 의거(依據)하기도”는 “종교에 기대기도”로 다듬습니다.

 

 ┌ 정당화(正當化) : 정당성이 없거나 정당성에 의문이 있는 것을 무엇으로

 │    둘러대어 정당한 것으로 만듦

 │   - 정당화의 이유 / 권력 승계의 정당화 /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다 /

 │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

 │

 ├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 자기들 행동을 정당하다고 둘러대려고

 │→ 자기들이 하는 일이 옳다고 말하려고

 │→ 자기들은 옳은 일을 한다고 말하려고

 └ …

 

 제법 널리 쓰이는 ‘정당화’는, “정당하게 한다”를 뜻합니다. ‘정당’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살펴봅니다. ‘올바름’이나 ‘옳음’을 가리키는 ‘정당’입니다.

 

 보기글을 읽습니다. 자기가 한 일을 ‘정당화’한다는 일이란 어떤 모습인가를 가만히 머리로 그려 봅니다. 올바른 일을 하면서도 “내 일은 올바랐어” 하고 말할는지, 또 옳은 일을 하면서도 “내 뜻은 옳았어” 하고 말할는지 갸웃갸웃해 봅니다.

 

 ┌ 자기 잘못을 덮어씌우려고

 ├ 자기 잘못을 감싸려고

 ├ 자기 잘못에 핑계를 대려고

 └ …

 

 아무래도 ‘안 옳은 일’을 했으니, 자기가 한 일을 옳다고 말하려고, 그러니까 ‘옳은 옷’을 입히려고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옳은 일을 했기에 옳다고 말할 때도 있으나, 옳지 않은 일을 하고서도 옳은 일을 했다고 둘러대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정당화’는 바로 이때, 옳지 않은 일을 하고도 옳다며 빽빽거리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느낍니다.

 

 ┌ 정당화의 이유 → 옳다고 하는 까닭

 ├ 권력 승계의 정당화 → 권력 물려받기가 옳은 듯 꾸미기

 ├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다 → 자기 생각을 옳다고 외치다

 └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 어떤 말로도 옳다 할 수 없다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 수도 있습니다. 둘러대며 눈가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은 언제가 되든 들통이 납니다. 오래도록 눌려 있던 참은 그예 빛을 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아프도록 눌려 있고, 괴롭도록 시달리고 있는 참된 우리 말도 빛을 볼 날이 있을까요. 비틀리고 엉망이 된 말투와 낱말에 치이고 밟히고 내동댕이쳐진 우리 말도 제 모습을 되찾으며 보람을 얻을 날을 맞이할까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억누르며 들볶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 느끼거나 헤아릴 날은 앞으로 언제가 될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6.14 12:1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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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우리말 #우리 말 #화化 #외마디 한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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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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