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33) 앞날의 전망

[우리 말에 마음쓰기 362] ‘살며 생활을 영위’한다니?

등록 2008.07.05 13:12수정 2008.07.0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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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앞날의 전망

 

.. 앞날의 전망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  《박병태-벗이여, 흙바람 부는 이곳에》(청사,1982) 80쪽

 

 앞을 보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숨을 쉬는 곳은 바로 이 자리, 이때입니다. 앞으로는 어찌 될는지 모르겠다고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힘껏 살아가고 볼 일이라고 느낍니다. 앞으로는 지금과 달리 잘 될 수 있고, 지금보다도 못 될 수 있습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요. 지금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텐데, 다가올 날을 걱정하느라 지금 이곳에서 애쓰지 않거나 힘쓰지 않는다면, 앞날은커녕 바로 지금부터도 힘들기만 할 뿐이지 싶습니다.

 

 ┌ 전망(展望)

 │  (1) 넓고 먼 곳을 멀리 바라봄. 또는 멀리 내다보이는 경치

 │   - 탁 트인 전망 / 전망이 나쁘다 / 좀 더 좋은 전망을 얻기 위해

 │  (2) 앞날을 헤아려 내다봄. 또는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

 │   - 도시 교통 문제의 현황과 전망 / 전망이 밝은 사업 / 전망이 어둡다

 │

 ├ 앞날의 전망이

 │→ 앞날이

 │→ 다가올 앞날이

 │→ 앞날이 어떠할지

 │→ 앞날이 어찌 될지

 └ …

 

 지금 제 살림살이는 한 치 앞을 제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하는 일도 썩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자꾸 끄달리거나 매여 버리면, 오늘 하루도 그저 손을 놓고 하늘바라기만 해야 할 판입니다. 그저 어제와 같이, 그제와 같이, 오늘 하루도 말없이 받아들이면서 제 걸음걸이대로 걸어갈 때가 가장 낫다고 느낍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되는 데까지만, 힘 닿는 데까지만이라도 움직여야지요. 여기에서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으면, 낼 수 있는 대로 좋습니다. 지치거나 고달파 힘을 더 못 내겠다면 잠깐 쉬면 됩니다. 오래 쉴 수도 있겠지요. 우리 삶은 어느 목표점에 남보다 빨리 닿는 데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목표점에 닿든 안 닿든, 자기가 뜻하는 곳까지 걸어가며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기거든요.

 

 ┌ 현황과 전망 → 오늘과 내일

 ├ 전망이 밝은 사업 → 앞으로 잘될 일 / 앞날이 밝은 일

 └ 전망이 어둡다 → 앞날이 어둡다

 

 우리가 쓰는 말이 티 한 점 없이 옹글 수 있고, 때때로 찌끄레기 낱말이나 말투가 깃들어 얄궂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인다면 찌끄레기는 넉넉히 걸러낼 수 있을 텐데, 미처 걸러내지 못할 수 있어요. 미처 못 느끼고 그냥 써 버릴 수 있고요. 어느 쪽이 되든, 지금 우리들로서는 우리들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 느낌과 마음에 맞게 펼쳐낼 수 있으면 가장 좋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씩 추스르고 가다듬고 보듬으면 된다고 느껴요. 한꺼번에 백 걸음이나 만 걸음을 껑충 뛰어넘을 생각을 하지 말고, 한 번에 한 걸음을, 또는 한 번에 반 걸음을, 또는 두어 번에 한 걸음을 차근차근 걸어가면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품는 생각도, 주고받는 말도.

 

 

ㄴ. 살며 생활을 영위

 

..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는 거기에 살며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실로 살기 힘들며 또한 문화적으로도 전혀 매력이 없다는 점이 ..  《우자와 히로후미/김준호 옮김-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소화,1996) 86쪽

 

 “사람들에게 있어”는 ‘사람들한테’로 고치고, ‘실(實)로’는 ‘참으로’로 고치며, “문화적(-的)으로도 전(全)혀 매력(魅力)이 없다”는 “마음을 끌 만한 문화시설이 없다”로 고쳐 줍니다. ‘점(點)’은 ‘대목’으로 다듬습니다.

 

 ┌ 거기에 살며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

 │→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 거기에서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한테

 │→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한테

 │→ 거기에 있는 사람들한테

 └ …

 

 ‘영위(營爲)’는 ‘꾸린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생활을 영위하는”이라면 “생활을 꾸린다”는 소리가 됩니다. ‘생활(生活)’은 ‘삶’을 한자로 옮긴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생활을 영위하는”이란 “삶을 꾸리는”이라는 소리가 됩니다.

 

 ┌ 살며

 └ 생활을 영위하는

 

 “삶을 꾸리는” 일이란 무엇인가 헤아려 봅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사는’ 일이 “삶을 꾸리는” 일이 아니냐 싶습니다.

 

 ┌ 살다

 ├ 살아가다

 ├ 살림을 꾸리다

 └ 삶을 꾸리다

 

 곰곰이 따지면, ‘살다’와 ‘살아가다’와 ‘살림을 꾸리다’와 ‘삶을 꾸리다’는 모두 같은 소리입니다. ‘삶’과 ‘꾸리다’를 한자로 옮겨적는 “생활을 영위하다”도 같은 소리입니다.

 

 그런데 보기글을 보면 “살며 생활을 영위하는”처럼 나옵니다. 번역을 하다가 잘못 옮겼을까요. 아니면, 처음에는 ‘살며’라고만 하려다가 ‘생활을 영위하는’으로 고치려고 했는데 책에 잘못 찍혀 나왔을까요. 또는, “살며, 그리고 생활을 영위하는”처럼 적으려던 마음이었을까요.

 

 한 마디 또는 두 마디쯤으로 단출하게 이야기하며 지나갈 수 있는 자리에 군더더기를 집어넣으면서 늘어지게 할 까닭은 따로 없다고 봅니다. 알맞춤하게 꾸밈말을 넣는다면 반갑지만, 알맞지 않고 걸맞지 않고 들어맞지 않는 말을 자꾸자꾸 끼워넣으면 말뜻과 말투와 말흐름은 어지러워지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05 13:12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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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우리말 #우리 말 #중복표현 #겹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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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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