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최후의 날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서평] 로버트 해리스 <폼페이>

등록 2008.07.18 08:27수정 2008.07.1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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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겉표지 ⓒ 랜덤하우스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들을 흔히 히스토리 팩션(Fact+Fiction)으로 분류한다. 실존했던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축으로해서 그 주변에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형식을 말한다.

그의 첫번째 작품인 <당신들의 조국>을 시작으로, 1995년 작품 <이니그마>, 1998년 작품 <아크엔젤> 모두 그런 작품들이다.


수준 이상의 팩션을 만들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지나간 시대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다. 수십 년 전 또는 수백 년 전에 사라진 인물을 소설로 불러내려면,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묘사하려면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거기에 풍부한 상상력과 탄탄한 구성이 뒷받침되면 수준높은 한 편의 팩션이 완성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로버트 해리스가 2003년에 발표한 <폼페이>는 분명 완성도 높은 팩션이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잿더미에 잠긴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와 주변지역을 무대로 한다. 화산이 분화하기 전 서기 62년에도 거대한 지진이 한차례 폼페이를 덮친 적이 있었다.

79년 당시에는 지진의 피해를 대부분 복구한 상태였다. 그리고 당시에 아무도 베수비오 화산이 분화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화산을 사화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베수비오 화산은 기원전 1세기에 스파르타쿠스 난이 일어났을 때 노예반란군이 숨어들어간 장소이기도 하다.

팩션답게 <폼페이>에는 많은 실존인물들이 등장한다. 미세눔의 해군제독이자 저술가인 플리니우스, 그의 조카인 소(小) 플리니우스, 플리니우스의 동료인 폼포니아누스, 페디우스 카스쿠스 및 그의 아내 렉티나 등. 이중에서 소 플리니우스는 분화 현장을 지켜보고 당시 상황을 역사학자 타키투스에게 두 통의 편지로 전달했던 생생한 현장 리포터였다.


소설로 복원한 2천 년 전 로마의 인물들

로버트 해리스는 <폼페이>에서 이 인물들을 모두 소설로 복원한다. 플리니우스는 점점 살이쪄서 걷기도 힘들지만 여전히 함대 제독의 위엄을 갖고 있다. 소 플리니우스는 삼촌의 부탁을 받고 망설인다. 폼포니아누스는 겁을 먹고 주저하며, 렉티나는 위기상황에서도 강한 의지를 갖고 헤쳐나가려 한다.


<폼페이>의 시작은 화산 분화 2일 전인 서기 79년 8월 22일이다. 주인공인 수도기사 아틸리우스는 수도교 관리를 명 받고 미세눔으로 내려온다. 미세눔은 나폴리 만을 사이에 두고 베수비오 산과 마주보고 있는 도시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미세눔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와 직면한다.

수도교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양어장의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하고, 석 달째 계속된 가뭄 때문에 도시는 점점 말라간다. 우물은 먼지 구덩이로 변하고 강바닥은 농부들이 가축을 끌고 가는 길로 변했다. 한때 엄청난 물을 보유하고 있던 저수지의 수위도 계속 떨어져간다. 아틸리우스는 새로운 수원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아틸리우스가 미세눔에 내려온 것은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다. 이곳의 수도교 관리담당이었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춘 것이다. 미세눔의 수도교는 제국전체에서 보았을 때 매우 중요한 시설이라서 하루도 관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아틸리우스가 부랴부랴 내려왔지만 그에게는 난해한 일들이 연달아 터진다.

이 지방의 제독과 유지는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수도교 관리국의 직원들까지 그를 비웃는다. 게다가 수도를 통해서 흘러오는 물에 유황의 기운이 섞여있는가 하면, 이 지역의 갑부는 노골적으로 그를 자기편으로 포섭하려고 한다. 이런 일들도 힘든 판국에 아틸리우스는 사라진 전임자의 행방도 쫓아야 하는 처지다.

아틸리우스와 주변의 갈등은 점점 심해져가고, 그 마찰의 수위가 올라가듯이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시간도 점점 임박해져 간다. 사람들의 갈등이 폭발하듯이 베수비오 화산이 분화하면, 그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아남고 어떤 사람들이 잿더미에 파묻히게 될까?

나폴리 만의 해안을 덮친 화산재

베수비오 화산이 분화한 결과, 대략 5천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우선 진동이 시작되고 돌덩어리들이 그야말로 비오듯 하늘에서 쏟아졌다. 사람들은 베개나 방석으로 머리를 가린 채 낙하 범위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전쟁처럼 길을 헤치고 나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직격탄 역할을 한 것은 돌멩이나 용암이 아니라 화산재였다. 화산재가 낮게 깔리면서 사람들은 질식하고, 화산재가 섞인 비가 내리면서 결국은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이 결과 폼페이를 비롯해서 나폴리 만 동부 해안의 도시가 잿더미에 갇히게 된다. 이들이 다시 빛을 보게된 것은 1800여 년이 지나 19세기에 발굴이 시작되면서 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실존 인물을 복원한 것처럼 당시의 풍경과 시대 상황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지중해 무역의 혜택을 누리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천혜의 항구도시 폼페이, 해방노예의 신분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아서 이제는 냉혹한 갑부가 된 인물, 재앙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사리사욕에만 매달려 있던 기득권자들, 부정한 방법으로 한 밑천 챙기려는 타락한 관리들.

이들은 거대한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베수비오 화산을 보면서 그것이 자신들에게 닥친 천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폼페이>를 읽다보면 분화구에서 터져나오는 돌덩어리와 화산재, 그 아래에서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떠오른다. 뛰어난 구성도 구성이지만, 그보다는 역사적인 재난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덧붙이는 글 | <폼페이>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덧붙이는 글 <폼페이>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히스토리 팩션 #폼페이 #로버트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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