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 오르고 또 오르니 하늘 아래 뫼로구나

[도보여행] 수색역에서 봉산 넘어 약수터 지나 구파발 역까지 걷기

등록 2008.07.23 14:25수정 2008.07.2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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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오르막길을 다 올라 한숨 돌리고 앞을 봅니다. 또 오르막길입니다. 숨을 헐떡이면서 오르고 나니, 다시 오르막길이 눈앞을 가로막습니다. 올라본 사람만이 압니다. 오르막길 오르기가 얼마나 숨이 차는지···.

22일, 수색역에서 숲이 우거진 봉산 길을 걸었습니다. 봉산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서오릉 가는 길을 지나 거북산에 올랐지요. 거북산도 봉산 못지않게 오르막길이 길었습니다. 거북이 등은 완만한 곡선인데 어찌해서 거북산은 오르막길만 이어져 있는 것일까요?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계속해서 이어진 오르막길을 보며 혹시 저 길의 끝에 하늘로 통하는 문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하지만 오르막길 끝에는 '통천문(하늘로 통하는 문)'이 아니라 내리막길이 있었지요.

태풍 갈매기가 지나간 끝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엄청나게 후텁지근했습니다. 습도가 높으면 그렇다지요? 불쾌지수도 덩달아 높아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저절로 치밀어 오를 것 같은 날, 도보여행은 기분전환이 되어 주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르막길을 올라 잠시 서 있노라면 숲에서 나무 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답니다. 문득 소나무 향이 흘러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지요. 바로 앞에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더군요. 자연 향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수색역에서 시작된 이 날의 도보여행도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함께 걸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인도행' 회원들, 참 잘 걷습니다. 잘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걷습니다. 이런 동행들과 함께 걷는 길, 즐거울 수밖에 없겠지요?

후텁지근한 날에는 산길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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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숲길 ⓒ 유혜준


수색역 5번 출구로 나와 직진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한참을 걸어가면 수색교가 나오고 오르막길이 있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보면 늘 겨울이 걱정됩니다. 눈이 내리면 미끄러워 저 길을 어찌 올라가고 내려가나, 싶어서지요.

오르막길을 오르니 좁은 숲길이 나옵니다. 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속의 흙길입니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서울의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숲은, 산은 우리의 삶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눈앞에 숲이 우거진 오솔길이 펼쳐지니 걷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흙길의 부드러움을 한껏 느낍니다. 사람들은 흙길을 걸어야 건강해진다지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인간이니, 흙이 보통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나무로 받침을 만든 흙 계단이 펼쳐집니다. 계단 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조금씩 숨이 가빠지고 땀이 뚝뚝 떨어집니다. 이 날, 참으로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물론 물도 많이 마셨지요. 물이 마시는 족족 그대로 땀이 되어 흐르는 것 같았지요. 목에 두른 손수건을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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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쉼터 ⓒ 유혜준


봉산 길에는 쉼터가 9개 있습니다. 6각형 혹은 4각형 모양의 '현대식 정자'인데 쉬어가기에 아주 좋습니다. 둘러앉아 점심을 먹기에도 적당하지요. 각 정자마다 다른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용미아정, 덕산정 등. 숲길을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 곳이 지역주민들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가라'는 표지판이 여러 곳에 붙어 있습니다. 그 설명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됩니다. 오르막길이 힘이 들면 잠시 쉬어 숨을 고르면 되지요. 참 좋다, 걷다 보면 저절로 나오는 말입니다. 자연의 빛이 좋고, 자연의 바람이 좋고, 자연의 공기가 좋고, 자연의 향기가 좋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곳곳에 운동기구가 놓여 있고, 사람들이 기구를 이용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딱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것은 고압선 철탑들. 필요하니 곳곳에 세웠겠지만 인공물이 자아내는 섬뜩한 느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산이라 고압선을 지중화 할 수도 없으니, 언제까지라도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봉산 길에는 9개의 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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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릉천 혹은 서암천 약수터 ⓒ 유혜준


오르막길 끝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니 음식점 '잎새'가 나옵니다(혹시 이 길을 걸으실 때 이정표 삼으시면 됩니다). 여기에서 길을 따라 나오면 서오릉 가는 길과 만납니다. 이 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거북산으로 향합니다.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약수터에는 오릉천(鷔陵泉)이라고 쓰인 액자가 붙어 있는데 옆에는 '서암천' 이용 안내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약수터의 이름이 두 개인가 봅니다.

약수터 물은 시원하지만 큰 비가 내린 뒤라 약간 찜찜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갈증이 나는데 안 마실 수 없지요. 벌컥벌컥, 흘린 땀을 보충이라도 하듯 마십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약수터 물이 나오는 곳 옆에서 쏟아지는 물을 받아놓은 양동이를 번쩍 들어 머리 위에 들이붓습니다. 우와, 시원하겠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보고만 있어도 더위가 순식간에 가시는 것 같습니다.

몇 사람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적십니다. 시원한 물은 발의 피로를 풀어주지요.

더위를 식힌 뒤에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왼쪽에 철조망이 쳐져 있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오르막길이 나옵니다. 또 올라가야 하나 봅니다. 이 날, 정말 많이 올라갔습니다. 오르고 또 오르니, 끝이 있더라.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가만히 서서 바람을 맞이합니다. 그대로 오래도록 서 있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지요.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이정표가 나옵니다. 앵봉약수터 가는 길로 접어듭니다. 그 길을 따라 이십여 분을 걸으니 헬기장 표식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완만한 내리막길입니다. 내리막길은 미끄러지기 쉬우므로 조심해서 내려가야겠지요.

삼십 분쯤 걸으니 네모난 표지석이 있습니다. '지적삼각점 인식표'입니다. 이곳은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온 것이지요. 처음부터 길에 경계표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편의에 따라 보이지 않는 금을 긋고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때로는 보이는 금을 긋기도 하지만···.

한 여름의 더위를 도보여행으로 이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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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이 이어진 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유혜준


오르막길을 오른 만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내리막길만 계속해서 펼쳐져 있습니다. 내려가고 또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길은 가속도가 붙어 더 빠르게 걸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단,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것,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자칫 하면 사고를 당할 수가 있으니까요.

포장된 도로와 만나니 비로소 산길 도보여행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물론 도보여행은 구파발역에 도착하면서 끝났습니다. 이날 걸은 거리는 얼추 15km쯤 됩니다. 오르막 산길을 많이 걸은 덕분에 종아리가 묵지근합니다.

10시 반에 출발한 도보여행이 끝난 것은 오후 4시 30분경. 후텁지근한 더위를 느끼며 걸을 만큼 걸은 것이지요. 숨을 헐떡이고 땀을 흠뻑 흘려 온 몸에서 땀 냄새가 풀풀 나지만 기분은 엄청나게 좋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흘리는 땀은 불쾌감만 안겨주지만 걸으면서 흘리는 땀은 상쾌함을 안겨주거든요.

이 느낌은 말이나 글로 전할 수 없습니다. 직접 느껴봐야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의 더위, 도보여행으로 이겨 보시기 바랍니다.
#도보여행 #수색역 #봉산 #거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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