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들이 모인 섬에 어떤 음모가 있을까

[서평] 데니스 루헤인 <살인자들의 섬>

등록 2008.07.26 11:49수정 2008.07.2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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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살인자들의 섬> 겉표지

<살인자들의 섬> 겉표지 ⓒ 황금가지

살인자들의 섬. 글자 그대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을 모아놓은 섬이다. 마치 악명 높은 미국의 알카트라즈 섬, 영화 <빠삐용>의 무대였던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Guiana) 주변의 '악마의 섬' 같은 곳이다.

이런 섬은 그 자체가 감옥의 역할을 한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데다가 주위의 파도가 워낙 험해서 배를 타지 않으면 이 섬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섬 주변에는 커다란 상어가 출몰하기도 한다. 탈옥을 위해서 맨몸으로 용감하게 바다에 뛰어들더라도 얼마 못가서 상어밥이 될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미국작가 데니스 루헤인(Dennis Lehane)의 2003년 작품 <살인자들의 섬>의 배경도 그런 곳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 섬에는 강력범죄를 저지른 정신이상자들이 모여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섬은 범죄자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수감시설이자, 정신이상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묘사하는 이 섬의 분위기도 우울하기만 하다. 보스턴 항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고 주위에는 파도가 거세다. 밤이 되면 쥐가 들끓는다. 병원은 전쟁 때 군대막사였던 곳을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 여름에는 언제 강력한 허리케인이 몰려올지 모른다. 이 정도면 정신이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기에 적당한 장소이다.

폐쇄된 섬에서 사라진 한 명의 환자

물론 이런 시설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알카트라즈 교도소가 예산과 죄수들의 인권문제로 폐쇄된 것처럼, 이런 감옥은 모두 구시대의 유물이다. 그래서인지 <살인자들의 섬>의 시간적 배경은 1954년의 늦여름이다. 2차대전과 한국전쟁의 영향이 아직도 미국에 남아있고, 전쟁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들도 종종 거리에서 눈에 띈다.


이 섬으로 두 명의 연방보안관이 파견된다. 이 병동에서 없어진 환자 한 명의 행방을 수사하기 위해서다. 그 환자는 밤 10시에 소등을 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간수가 이것을 확인한 후에 밖에서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고 12시에 순찰하면서 그 방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방 밖의 자물쇠도 그대로이고, 방 내부에도 아무 이상이 없다. 평소 환자들에게 지급되는 슬리퍼 2켤레도 제자리에 있다. 글자 그대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환자는 이상한 글자가 쓰여진 수수께끼의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복잡기괴한 밀실사건을 재현하기라도 한 것처럼.


파견나온 두 명의 보안관은 나름대로 수사에 착수하지만,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힌다. 슬리퍼를 남겨두었으니 맨발로 달아났을텐데, 병동 밖을 수색해도 환자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담당 의사들은 환자들의 기록 공개를 꺼린다. 교도소장도 보안관들을 피하려는 눈치다.

보안관들은 섬을 둘러보면서도 의문에 잠긴다. 족히 200명은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지만, 환자의 수는 고작 50여명이다. 의사와 직원을 합한 수는 그 두 배가 넘는다. 한 보안관은 이런 시설은 연방정부의 땅을 낭비하는 거라면서 투덜거린다.

직원들도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하다. 혹시 어떤 음모 때문에 환자를 몰래 빼돌리고 모두 시치미를 떼고 있을 거라는 의심도 생겨날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두 명의 보안관은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신질환의 근본적 치유를 원하는 의사들

이 섬의 의사들은 정신질환을 다루는 의사들이다. 과거에는 이런 환자들을 거의 괴물 취급했었다. 그들을 고문하고 구타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정신병을 몰아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을 치료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도 몇가지 방법이 있다.

고전적인 학파는 정신외과적 방법을 선호한다. 전두엽 절제술 같은 충격요법과 수술이 동반되는 치료법이다. 새로운 학파는 정신약리학에 빠져있다. 수술 대신에 약물을 투입해서 환자의 정신상태를 이완시키고 긴장을 풀어서 얌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방법이 성공한다면 더 이상 정신질환자들을 좀비 취급하면서 철창에 가두거나 구속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살인자들의 섬>에 등장하는 한 박사는 좀더 진보적인 방법을 선호한다. 그는 대화 치료법을 신봉한다. 환자를 치료할 때 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그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 그 환자가 마음을 열고 현실을 직시하게 될 거라는 얘기다. 급진적이면서도 대단히 낙관적인 방법이다. 이런 방법을 적절한 대상에게 알맞게 사용한다면, 반쯤 나가버린 환자의 정신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데니스 루헤인은 전작인 <미스틱 리버>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스틱 리버>의 등장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잊으려고 했다면, <살인자들의 섬>에서는 자신의 현재를 온통 환상으로 재창조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정신적인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유효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주하거나, 타인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낸다면 더 이상 주변에서 그냥 보아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의사들의 선택도 몇가지 되지 못한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수술을 하거나 아니면 약물을 투입하거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 그저 대상을 조용하고 얌전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하긴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의 정신을 제대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당사자의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를 구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살인자들의 섬 | 데니스 루헤인 지음 |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펴냄.


덧붙이는 글 살인자들의 섬 | 데니스 루헤인 지음 |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펴냄.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황금가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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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반전이 기다린다

#추리소설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정신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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