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에 갇혀 우리 말투를 잃어 버리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 388] '지키는 것', '될 거야', '움트는 것' 다듬기

등록 2008.07.30 10:54수정 2008.07.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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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밭을 지키는 것을

 

.. 옛 어른들은 콩을 심을 때, 세 알을 심어서 새가 한 알 먹고, 벌레가 한 알 먹고, 한 알이 싹을 터서 사람이 먹고자 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밭에 콩을 심어 놓고 새들이 먹을세라 밭을 지키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 <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이태수, 고인돌, 2008) 46쪽

 

‘종종(種種)’은 ‘가끔’이나 ‘때때로’나 ‘드문드문’으로 고쳐 줍니다.

 

 ┌ 밭을 지키는 것을

 │

 │→ 밭을 지키는 모습을

 │→ 밭을 지키는 사람을

 └ …

 

보기글을 보면, 예전에는 밭에 콩을 심고 ‘지키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둘째 글월 앞머리는 ‘요즘은 밭에 콩을 심어 놓고’로 엽니다. 이렇게 연 앞머리라 한다면, 뒤쪽에 ‘종종 볼 수 있습니다’는 덜 수 있습니다. “요즘은 밭에 콩을 심어 놓고 새들이 먹을세라 밭을 지킵니다”처럼.

 

좀더 올바르게, 한결 알맞춤하게, 더욱 살갑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다면 더없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조금씩 마음을 기울여 주면, 차츰차츰 익혀 나가면, 가만히 돌아보고 되짚으면서 추슬러 주면, 누구나 아름답고 훌륭하게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사랑하지 않으니 아름답게 말을 못 할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글을 믿고 가꾸지 않으니 훌륭하게 글을 못 쓸 뿐입니다.

 

ㄴ. 초롱이 신랑이 될 거야

 

.. “나는 커서, 초롱이 신랑이 될 거야.” 금강이가 말하면, “나는 커서, 금강이 신부가 될 거야.” 초롱이도 말합니다 … “전쟁보고 가시 울타리를 치우라고 할래요. 그리고 멀리 가 버리라고 할래요!” .. <시냇물 저쪽>(엘즈비에타/홍성혜 옮김, 마루벌, 1995) 4, 16쪽

 

아이들 말투를 흉내내는 어른들은 곧잘 “할 거야”, “먹을 거야”, “버릴 거야”처럼 말하곤 합니다. 꼭 아이들 말투 흉내가 아니더라도, 어른들은 “-ㄹ 거야” 하고 말합니다.

 

 ┌ 신랑이 될 거야 → 신랑이 될래

 └ 신부가 될 거야 → 신부가 될래

 

‘것’이든 ‘거’든,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얼마든지 넣을 수 있습니다. 넣고 싶으니 넣고, 이 말을 넣는 말투가 좋아 넣습니다.

 

 ┌ 치우라고 할래요 (o)

 ├ 치우라고 할 거야 (x)

 │

 ├ 가 버리라고 할래요 (o)

 └ 가 버리라고 할 거야 (x)

 

그런데, 우리들은 ‘것’과 ‘거’를 한 번 두 번 쓰는 동안, 우리 말투를 잊거나 잃지는 않나 모르겠습니다.

 

 ┌ 신랑이 될 테야

 ├ 신랑이 될 생각이야

 ├ 신랑이 되려고 해

 ├ 신랑이 되어야지

 └ …

 

그림씨도 많고 움직씨도 많은 한국말은 씨끝도 많아, 느낌이 자디잘게 달라질 때마다 살짝살짝 말끝을 바꾸어서 나타냅니다. 뭉뚱그려 말할 때도 있을 터이나, 곳에 알맞고 때에 걸맞게 자기 말씨를 드러냅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이제는 우리 생각이 자디잘게 나누어지지 않으니, 우리 말씨도 구태여 자디잘게 나타내지 않아도 되는지 모릅니다. 대충 말하고 대충 사는 우리들로 달라지고 있으니, 말도 대충 하고 글도 대충 쓰는 흐름으로 바뀌어 가는지 모릅니다. 때에 맞추고 곳을 살피던 말씨는, 오늘날에는 아무런 쓸모도 값도 뜻도 없는지 모릅니다.

 

ㄷ. 움트는 것을 보는 것이야말로

 

.. 2,30년 간 기른 화초에서 새싹이 움트는 것을 보는 것이야말로 설레는 일이다 ..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타샤 튜더/공경희 옮김, 윌북, 2006) 34쪽

 

‘2,30년(年) 간(間)’은 ‘서른 해 가까이’나 ‘스물∼서른 해 동안‘으로 다듬고, ‘화초(花草)’는 ‘꽃’으로 다듬습니다.

 

 ┌ 새싹이 움트는 것을 보는 것이야말로

 │

 │→ 새싹이 움트는 모습을 보는 일이야말로

 │→ 새싹이 움트는 모습을 볼 때야말로

 └ …

 

‘것’이 두 차례 나옵니다. 뒤에 나오는 ‘것’을 ‘일’로 다듬고 보니, 보기글 맨끝에 “설레는 일이다”라는 말이 보입니다. 여러모로 얄궂다고 느껴지는 보기글입니다. 통째로 고쳐쓰겠습니다. “서른 해 가까이 기른 꽃에서 새싹이 움트는 모습을 보는 일이야말로 가슴 설렌다.” 또는 “스물∼서른 해 동안 기른 꽃에서 새싹이 움틀 때야말로 가슴이 설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7.30 10:54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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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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