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37) 꿈꾸던 드림카

[우리 말에 마음쓰기 397] 영어 뇌까린다고 멋진 말이 아니다

등록 2008.08.08 10:55수정 2008.08.0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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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사리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대학 때부터 꿈꾸던 드림카 엘란을 샀다 ..  《하종강-길에서 만난 사람들》(후마니타스,2007) 113쪽

 

예닐곱 해쯤 앞서 <한겨레>에서 '초등학생 대상 영어 일기쓰기 첨삭지도'를 한 주에 한 번씩 '교육마당 특별지면'에서 꾸준하게 실은 적 있습니다. 잠깐 그쳤다가 다시 이어졌는데, 요즈음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서 이런 '초등학생 대상 영어 일기쓰기 첨삭지도'를 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한겨레>였기 때문에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서도 이런 짓을 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신문은 신문 구실을 해야지, 신문이 장삿속에 눈을 돌리면서 영어 장사를 한다는 일은 옳지 않으니까요. 더욱이 세상에 영어나라 미친바람이 불 때에는 언론매체라는 큰 짐을 짊어진 마음가짐을 단단히 추스르며 사람들한테 얼차리라는 따끔한 소리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 드림카(dream car) : 새로운 메커니즘이나 디자인을 갖춘 차를 미리 시작

 │  (試作)해서 일반에 공개하여 반응을 조사하기 위한 시작차(experimental car)

 │

 ├ 대학 때부터 꿈꾸던 드림카

 │→ 대학 때부터 꿈꾸던 차

 │→ 대학 때부터 갖고 싶었던 차

 └ …

 

가끔가끔 국민학교 적 동무를 만나고 고등학교 적 동무를 만납니다. 동무들이 만나는 다른 동무도 만나고, 책마을 사람을 만납니다. 책마을 사람이 사귀는 또다른 동무를 만나고, 한 동네 사람을 만납니다. 인천에서 산업도로 무효화를 외치는 함께 외쳐 주는 시민모임 분들을 만나고, 지역에서 사회운동과 미술운동과 문화운동을 하는 분들도 곧잘 만납니다. 제 일터인 도서관을 찾아오는 선생님도 만나고, 선생님을 따라 찾아온 중고등학교 아이들도 만납니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을 부대끼면서, 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톡톡 내뱉는 한두 마디 영어 낱말을 듣습니다. 아무래도 배웠기 때문에 쓰겠지요. 제도권 학교를 다니면 중학교 때부터, 요즈음은 초등학교 나이부터 배우는 영어니까요. 텔레비전을 보고 영화를 보면 흔히 익숙해지는 영어이기도 합니다. 연속극뿐 아니라 익살극에서도, 또 연예인들이 수다를 떠는 풀그림에서도 영어는 아주 흔하게 튀어나오는 말입니다. 아니, 우리 삶이 되어버린 말이라고도 하겠습니다.

 

 ┌ 사랑해

 └ 알라뷰

 

사람들이 가장 자주 쓰면서 가장 더럽힌다는 말 '사랑'인데, 이 '사랑'은 차츰 밀려나고 '러브'가 끼어든다고 느낍니다. 저는 책과 얽힌 일로 먹고사니 늘 책을 끼고 지내는데, 저처럼 '책'만 이야기하는 사람은 요즘 세상에서는 참말 구닥다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 둘레에서는 모두들 '북'만 읊거든요.

 

'책 만드는 사람'이 아닌 '북에디터'라고 '북디자이너'라고 '북셀러'라고 말합니다. 신문에서 책을 이야기하는 자리는 '책소개-책마당-책이야기'가 아니라 'book'이거나 'book talk'이거나 'book section'입니다. 부산 보수동에서는 해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 잔치'를 열지만, 서울 홍익대 앞에서는 해마다 'wow book festival'을 엽니다.

 

 ┌ 꿈

 └ 드림

 

여러 해 앞서부터, 야구 국가대표를 뽑을 때마다 '드림팀'을 들먹입니다. 이 바람은 농구로도, 배구로도 이어졌습니다. 미국 프로운동선수들이 올림픽 무대에 설 때 '드림팀'이라는 말을 쓴 뒤로 우리들도 이 말을 따라하고 있습니다만, 미국사람한테는 'dream + team'일 터이나, 우리한테는 '꿈 + 선수'입니다.

 

미국사람들은 자기들한테 흔하고 손쉬운 말 '드림'과 '팀'으로 새 낱말을 빚어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한국사람은 우리들한테 흔하고 손쉬운 말을 엮어서 새 낱말을 빚어내지 못합니다. 또는 새 낱말을 빚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라 밖에서, 아니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냥저냥 쓰고 있는 말을 '새로운 말'이랍시고, '새 유행'이랍시고 끌어들입니다. 때로는 일본사람이 영어로 끄적거린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흉내내기도 하고요.

 

 ┌ 꿈

 ├ 夢 / dream

 └ 몽 / 드림

 

우리 말은 '꿈' 한 가지입니다. '夢'이나 'dream'을 한글로 '몽'과 '드림'처럼 적었다고 해서 우리 말이 될 수 없습니다. 꿈꾸던 자동차이니 '꿈꾸던 차'나 '꿈차'이지, '드림카'가 아닙니다. 꿈꾸는 사람이니 '꿈꾸는 이'나 '꿈사람'이나 '꿈꾼이'지, '드리머'가 아닙니다.

 

바깥말을 바깥말로 느끼지 않고 우리 말인 듯 잘못 느끼면서 쓰고 있으니, "꿈꾸는 드림카"라는 겹말을, 참 어이없는 겹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야 맙니다. 이런 겹말을 쓰면서, 제딴에는 멋진 말을 썼다고, 어깨를 우쭐거릴 만한 괜찮은 말을 썼다고, 씨익 웃으면서 좋아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눈둘 데가 없고 마음 둘 데가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8.08 10:55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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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우리말 #우리 말 #중복표현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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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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