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조금씩 발돋움을 하고 있는지, 요즈음 들어서 ‘다름’을 말하는 사람들을 부쩍 자주 봅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말하면서 더 널리 껴안는 마음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다름’은 늘 ‘눌리거나 짓밟히거나 빼앗기거나 들볶이는’ 쪽에서 말하지, 누르거나 짓밟거나 빼앗거나 들볶는 쪽에서 말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재개발만 해도, 정작 ‘재개발이 되어 떠나야 하는 주민들 생각’을 찬찬히 듣고 묻고 알아 가면서 하는 재개발이란 없습니다. 보증금 100만 원에 달삯 10만 원을 내고 살아가는 수수한 식구들이 깃들어 있는 조그마한 골목집 사람들이, ‘재개발이 끝난 뒤에도 이만한 돈으로 깃들 만한 집을 새로 지어 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한 평에 1천만 원도 아닌 2천만 원이나 3천만 원이나 하는 아파트만 새로 지으려고 하면서 ‘주택보급’을 이야기합니다. 서민들은 엄두를 낼 수 없는 비싼 아파트를 지으면서 ‘주거환경 개선’을 외칩니다. 이런 모습도 ‘다름’일까요?
.. 마리가 깜짝 놀라며 말했어요. “내가 엄마야!” “아냐, 오늘은 나야. 나도 엄마가 하고 싶단 말이야!” 마리는 얼굴이 새빨개져 씩씩거리며 말했어요. “넌 엄마 못 해! 손가락 없는 엄마가 어딨어!” 옆에 있던 유키랑 나오코도, “맞아!” “말도 안 돼!” 하고 말했어요 .. (10∼12쪽)
이제 열흘 동안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린 딸아이 기저귀를 갈고 똥오줌을 빨아내어 털어 널면서, 또 아직 덜 마른 기저귀를 부지런히 다림질을 하며 말리는 새벽 두어 시에 홀로 생각합니다. 병원(산부인과)에서는 이 어린 목숨붙이한테 ‘40 + 8 검사’를 해 준다고 하더군요. 나라에서 뒷배하여 1만 원만 내면 해 주는 검사가 여덟 가지이고, 8만 원을 더 내면 병원에서 마흔 가지 검사를 더 해 준다고.
그래서 병원 간호사한테 물어 봅니다. 나라에서 해 준다는 여덟 가지 검사가 무엇인지, 또 병원에서 한다는 마흔 가지 검사가 무엇인지.
간호사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저처럼 물어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네? 여덟 가지가 황달하고 혈액형하고 또 뭐 해서 여덟 가지예요.” “그러니까 그 여덟 가지 검사가 무언데요?”
옆에서 다른 간호사가 알파벳으로 휘갈겨진 서류를 한 장 내보이면서, “영어로 적혀서 못 알아보겠지만, 이렇게 여덟 가지 검사예요.” 하고 앵돌아진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알아볼 수 없게 적은 검사 항목’을 보여주어서 어쩌겠다고. 알 수 없는 검사를 왜 받아야 하는데?
간호사는 이런저런 말로 대충 얼버무린 다음, “아기한테 장애 검사를 하는 ……” 하면서 말을 잇습니다. 한참 듣다가, “저희는 그런 장애 검사는 안 받겠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병원에서 생각하는 ‘장애’란 무엇인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아이한테 장애가 있으면 그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이고, 장애가 없으면 없는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아이 혈액형이 A형이면 어떻고, O형이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다 알게 될 혈액형 아니겠습니까. 굳이 벌써부터 알아야 할 까닭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혈액형 모르고 살아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텐데. 아기한테 정작 베풀어 줄 일은 ‘장애가 있는 아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버이가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보듬어 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직 이어갈 수 없는 이 가녀린 목숨을 사랑해 주기일 텐데.
.. “학교에 들어가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손가락이 생겨?” 삿짱은 엄마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어요. 엄마는 두 손으로 삿짱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어요. “삿짱, 네 손은 말이야, 학교에 들어가도 지금이랑 똑같아. 언제까지나 똑같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삿짱. 너에게는 소중하고 소중한 손이란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딸의 예쁘고 예쁜 손이야…….” 삿짱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어요. “싫어, 싫어, 이딴 손 싫어!” 엄마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 (24쪽)
기저귀를 하루에 마흔 장 남짓 빱니다. 아기가 사흘을 지낸 때에는 스무 장쯤 빨았는데, 나날이 빨랫거리가 늘어납니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쯤부터는 쉰 장까지도 빨아야지 싶습니다. 왜 ‘방수천’이나 ‘방수담요’를 쓰는지 알 만합니다. 젊은 어머니들이 왜 ‘1회용 기저귀’를 쓰는지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 목숨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어버이한테 내맡기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은데, 그 짧은 시간이나마 어버이로서 똥기저귀를 빨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노릇, 아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제 몸이 느낍니다. 아이가 살아갈 이 삶터가 1회용 기저귀 때문에 더 더러워지고 있는데, ‘어버이로서 조금 고단하다고’ 하면서 돈 몇 푼으로 1회용 기저귀를 사서 쓰면, 어버이한테도 나쁘고 아이한테는 더 나쁠 일이라고 느낍니다.
옆지기가 스물네 시간 아파하면서 나온 목숨인 딸아이인 한편, 저도 옆에서 똑같은 시간을 함께 아파하면서 옆지기를 주무르고 돌보면서 낳은 딸아이입니다. ‘여느 사람 말’은 아니라 할 터이나, 아기가 ‘으’ 하고 외마디소리를 나지막히 내뱉을 때, ‘끄’ 하고 외마디소리를 낮게 내뱉을 때, 지금 ‘내(딸아이)가 오줌을 지렸으니, 아버지는 얼른 기저귀 갈아 주셔요’ 하는 이야기건넴이라고 알아차립니다. 장모님이나 다른 분들은 이 소리를 못 알아채지만, 저는 마음으로 느낍니다. 설핏 잠이 들어서 쓰러져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기저귀에 손을 대 보고는 촉촉함이나 물컹함을 느끼고는 서둘러 갈고 새 기저귀를 깝니다. 가슴에 살며시 제 손을 대고 다시 잠들도록 기다린 뒤, 젖은 기저귀를 들고 뒷간에 가서 신나게 빨아 목초액에 담가 놓습니다. 손이며 몸이며 아기 똥오줌 냄새가 짙게 배었는데, 이 냄새가 ‘세상에 찌든’ 제 몸을 부드럽게 감싸 줍니다.
비빔질을 하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살짝살짝 베어서 다친 손가락이 쓰라립니다. 1센티미터쯤 살짝 찢긴 살점이지만, 물이 닿으면 쓰립니다. 그래도 꾹 참고 빨래를 합니다. 빨래를 하면서 아이를 생각합니다. 기저귀를 갈 때, 기저귀를 갈고 나서 아이와 눈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건넵니다. “벼리(딸아이 이름)야, 아버지가 이번에는 기저귀를 좀 늦게 갈아 주었구나. 꿉꿉한데 얼른 갈아 주었어야 했는데. 엉덩이에 묻은 오줌도 닦고 발에 묻은 오줌도 닦고, 조금만 기다려 주셔요.”
.. 불쑥 삿짱이 말했어요. “아빠, 나도 엄마 될 수 있어?” 아빠는 깜짝 놀라, 삿짱을 바라보았어요. “나, 손가락 없어도 엄마 될 수 있어?” .. (33쪽)
옆지기 어머님이나 아버님은, 저보고 아기 기저귀를 뭣하러 다리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말없이 웃습니다. 너무도 마땅한 이야기라서, 굳이 대답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냥 웃을 뿐입니다. 어른인 저도, 빨아서 말리기만 한 천기저귀하고, 빨아서 말린 뒤 다림질을 한 천기저귀하고 느낌이 사뭇 다른데요. 어른 살갗이 아닌 아기 살갗은 더 날카롭게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처럼 어린 아기한테는 잠을 좇으면서 더 뽀송뽀송하고 부드럽게 기저귀를 마련해서 대어 주는 일이, 어버이로서 할 몫이 아니랴 싶습니다. 말을 못하는 아기가 아니라,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아기인데, 이 아기 말을 제대로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 어머니로서, 또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제 몫을 못하는 셈이 아니랴 싶습니다.
손가락이 다쳐서 아프면서도 아픔을 꾹 참고 기저귀를 빠는 새벽나절, 마음으로 딸아이한테 이야기를 건넵니다. ‘벼리 아버지가 조막손일 수 있는데, 아버지가 조막손이라 해도 벼리한테는 똑같은 아버지일 테지요?’
(2) 아쉬움 몇 가지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을 읽습니다. 금세 읽고 덮은 다음, 두어 번 다시 읽어 봅니다. 일본에서는 1985년에 나온 작품입니다. 스물세 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한국땅에서 나옵니다. 한국에서 옮겨 낼 만한 값과 무게가 있으니 예쁘장하게 꾸며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한국에도 장애를 안고 있는 어린이가 몹시 많을 텐데, 왜 한국땅에서는 ‘한국땅 장애 어린이’ 삶과 생각을 담은 이야기책은 보기가 어려울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마법의 조막손》(일본책 이름은 ‘삿짱은 조막손’)은 틀림없이 훌륭하게 엮은 책이기 때문에 한국뿐 아니라 중국이나 대만이나 필리핀에서 옮겨내어도 좋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어이하여 한국사람들은 이만한 이야기책이나 그림책을 한국 삶과 삶터와 사람에 맞추어서 스스로 빚어내지 못할까 싶습니다. 우리 땅에도 장애 때문에 눈물 흘리는 아이가 많고 어버이가 많은데, 왜 우리 스스로는 이런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담아내지 못할까 싶습니다. 한국땅에서 ‘그림 작가’라고 내세우는 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글 작가’라고 뽐내는 분이 두셋이 아닙니다. 그러하오나, 어이된 셈인지 장애 어린이 이야기는 눈 씻고 찾아보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어렵게 한 권 세상에 나와도 ‘참 안 팔립’니다. 《마법의 조막손》 또한, 훌륭한 이야기와 줄거리와 짜임새와 그림결로 애틋한 사랑과 믿음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거의 사랑받지 못하고 몇 해가 지난 뒤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동화작가라는 분들이 눈길을 두면서 쓰는 글감을 보면, 그림책작가라는 분들이 마음을 기울이면서 그리는 그림감을 보면, 어째 우리 나라는 제자리걸음으로 우려먹는 일을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놀랍습니다.
아파하는 사람들 이야기, ‘다르게 사는’ 이야기는 어인 일인지 제대로 다루어지는 일도 없지만, 겉핥기로나마 다뤄지는 일조차 드문지 궁금합니다.
우리 딸아이는 ‘집에서 낳기’를 하려다가 뜻을 못 이루고 말았지만, 왜 아이를 ‘병원에서 낳아야’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집에서 아이 낳는’ 일은 미친 짓(?)처럼 바라볼까요.
.. 드디어 엄마가 아기를 낳았어요. 삿짱도 아빠 따라 병원에 갔어요. 아기는 요람 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어요 .. (30쪽)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에서도 ‘병원에서 아기 낳기’가 나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다르다면, 일본에서는 아기 엄마 곁에 요람을 놓고 둘이 함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 줍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신생아실’이라는 이름으로 아기들을 어머니하고 떨어뜨려 놓고 분유를 먹여서 ‘아기 때부터 엄마젖을 못 먹게’ 만들어 버리는 데다가, 1회용 기저귀로 꽁꽁 싸매어 놓습니다. 더구나 아기 머리 위로 형광등이 바로 따갑게 내리쏘고 있는걸요.
.. 삿짱은 씩씩대며 서 있었어요.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갔어요. “엄마, 왜 내 손은 다른 애들이랑 달라? 왜 다른 애들처럼 손가락이 없는 거야? 왜 그래?” .. (18쪽)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다르게 살아갈 뿐입니다. 다르게 살든 똑같이 살든 모두 소중한 목숨붙이입니다. 대통령 뽑을 때 이명박 씨한테 표를 주었든 권영길 씨한테 표를 주었든, 모든 사람은 똑같이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했건 대학원까지 나왔건, 두 사람은 ‘나뉘어진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뿐 아니라, 인기 연예인과 비인기 연예인이 다른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팔 하나가 있든 팔 하나가 없든 똑같은 사람입니다. 벌이가 한 달에 오십만 원도 되기 어려운 살림이든, 한 달에 오억 원을 버는 살림이든, 모두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남 아이가 소중하고, 내 목숨이 사랑스러운 만큼 남 목숨이 사랑스럽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들은 남을 생각하기에 앞서, 나 스스로를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는 아닐까 싶어요. 나 스스로를 제대로 알면서 사랑하지 못하니까, 내 둘레에 있는 남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푸대접을 하거나 깔보지 않느냐 싶어요.
그림책 《마법의 조막손》은 ‘책에 쪽수가 없는’ 이상한 편집을 하고, 쪽수가 많지 않은 그림책치고 책값이 너무 비싸며, 책이름을 너무 뭉뚱그리셔 붙인 대목이 아쉽습니다(일본에서 처음 나올 때에는 수수하게 “삿짱은 조막손”이라고 했지 ‘마법’ 같은 말은 넣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우리 스스로 이만한 이야기조차 빚어내지 못하니 눈물까지 날 판입니다만, 모자라나마 이 그림책 하나로 우리가 자꾸만 잃거나 내버리고 있는 ‘다름이 아름다운 까닭’과 ‘다름이 사랑스러운 삶’을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으니, 이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삿짱’이라는 아이는 조막손이어도 삿짱이고, 조막손이 아니어도 삿짱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8.25 16:28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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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조막손
선천성사지장애아부모회 지음, 고향옥 옮김, 노베 아키코 외 그림,
우리교육,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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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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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마음과 ‘다름’을 헤아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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