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21) 감동적 2

― ‘감동적이냐?’, ‘훨씬 감동적임을’ 다듬기

등록 2008.10.24 11:02수정 2008.10.24 11:02
0
원고료로 응원

ㄱ. 감동적이냐?

 

.. 야, 왜? 감동적이냐? 그럼 이거 니가 사라 .. <순정만화 (2)>(강풀, 문학세계사, 2004) 237쪽

 

누구한테나 귀나 입에 익었다고 하는 말이 있어요. 이런 말은 웬만해서는 고칠 수 없다고 느끼며, 때때로 고치지 않아도 좋다고 느껴요. 그러나 퍽 많은 사람들 귀와 입에 익었다고 해도 고쳐 주면 좋을 말, 다듬어서 좀더 낫게 쓰면 괜찮을 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익숙해지지 못했을 뿐이며, 덜 익숙하지만, 차근차근 익숙해지면서 살갑게 받아들일 말이 넉넉히 있다고 봅니다.

 

우리 스스로 자기 삶에서 잘못되거나 아쉽거나 모자라는 대목을 선선히 고치려 한다면, 우리가 하는 말 가운데 잘못되거나 아쉽거나 모자라는 대목 또한 선선히 고칩니다. 사람들 삶이 이렇습니다. 자기 삶에서 잘못된 대목이 있음에도 고칠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즐거운 길을 일러 주고 손잡고 함께 가자고 하는 사람을 손사래치거나 멀리하는 삶이라면, 이분들은 자기가 하는 말에서 잘못된 대목 또한 고치려 들지 않습니다. 고칠 꿈이 없습니다.

 

자기 삶부터 진보나 개혁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 말을 진보나 개혁에 따라 추스를 수 없습니다. 자기 말씨 하나부터 옳고 바르게 가다듬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 생각을 옳고 바르게 북돋우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을 옳고 바르게 북돋우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 일과 놀이를, 자기 이웃과 동무를 아름다이 여미거나 껴안지 못합니다. 말 한 마디에서 모두가 비롯하고, 모든 일이 말 한 마디로 모입니다. 말 다듬기 하나를 만만하게 보거나 대수롭게 여기는 사람 삶에서는 진보도 개혁도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어설픈 진보, 껍데기 개혁만 겉돌 뿐입니다.

 

 ┌ 감동적이냐?

 │

 │→ 감동했냐?

 │→ 좋냐? / 괜찮냐?

 │→ 마음에 드냐? / 마음에 꽂혔냐? / 마음이 움직였냐?

 └ …

 

오늘날은 ‘감동적’이라는 말이 아주 흔히 쓰입니다. 이 말을 안 쓰면 우리 마음이나 느낌을 나타낼 수 없다고 할 만큼 귀나 입에 익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딱 서른 해 앞서에는 어떠했을까요. 쉰 해 앞서는? 백 해나 이백 해쯤 앞서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릴 적에는? 초등학교(또는 국민학교) 다닐 적에는? 대여섯 살 나이에는? 너댓 살 나이에는? 그때에는 어떠했나요. 그때도 ‘감동적’이라는 말로 우리 마음이나 느낌을 나타냈나요.

 

제 어릴 적을 되새겨보면, ‘감동적’은 안 쓰인 말입니다. ‘-적’이 붙은 다른 말도 쓴 일이 그다지 없다고 느낍니다. 나이가 들수록, 학년이 높아질수록 이런 말이 책(교과서나 동화책 따위)에 나와 한두 마디 익숙해지고 썼는지 모르나, 나이가 적을수록, 학년이 낮을수록, 이런 말은 들을 일도 듣는 일도 쓸 일도 없었다고 느낍니다. “감동했구나?”나 “감동 먹었구나?”처럼 말하거나 듣기는 했어도 “감동적이었구나?”처럼 말하거나 들은 적이 없다고 떠오릅니다. “가슴이 벅찼습니다.”나 “가슴이 뭉클했습니다.”나 “가슴이 찡했습니다.”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나 “가슴이 저렸습니다.”처럼 말하거나 듣기는 했어도, “감동적이었습니다.”처럼 말하거나 들은 일은 거의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자말을 써도 ‘감동’ 한 마디를 쓸 뿐이었습니다. ‘감동’이라는 말도 ‘벅차다-뭉클하다-찡하다-저리다-저미다’ 같은 말에 밀려서 그리 쓰일 일이 없기도 했습니다. 아니, ‘좋다’와 ‘괜찮다’ 한 마디로 넉넉했습니다.

 

ㄴ. 훨씬 감동적임을

 

.. 많은 문장으로 짜집기하여 엮어내는 소설보다 한 장의 그림이 주는 전달력이 훨씬 감동적임을 절감했고 ..  <그림 속 나의 인생>(김원일, 열림원, 2000) 140쪽

 

‘문장(文章)’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글월’이나 ‘글’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한 장의 그림이 주는 전달력(傳達)”은 “그림 한 장이 건네는 힘”이나 “그림 한 장이 나누어 주는 힘”으로 고쳐 봅니다. ‘절감(切感)했고’는 ‘깨달았고’나 ‘뼛속 길이 느꼈고’로 다듬습니다.

 

 ┌ 훨씬 감동적임을

 │

 │→ 훨씬 마음을 움직임을

 │→ 훨씬 마음을 건드림을

 │→ 훨씬 뭉클함을

 │→ 훨씬 마음에 와닿음을

 │→ 훨씬 마음 깊이 파고듦을

 └ …

 

‘감동’이라는 말을 늘 듣고 있습니다만, 사람들이 ‘감동’을 말할 때 마음으로 어떻게 느꼈다고 하는지는 제대로 못 나타내지 않나 싶습니다.

 

‘감동’이란 “마음이 움직임”입니다. “마음이 울렁거림”이나 “마음이 뜀”입니다. “가슴이 벅참”이나 “가슴이 뜀”입니다.

 

 ┌ 그림 한 장이 훨씬 사람들 마음 깊이 파고듦을 느꼈고

 ├ 그림 한 장이 훨씬 우리 마음을 벅차게 함을 깨달았고

 ├ 그림 한 장이 훨씬 더 마음을 찡하게 해 줌을 깨달았고

 ├ 그림 한 장이 훨씬 더 깊고 살갑게 이야기를 한다고 느꼈고

 └ …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떠나, ‘감동’이라는 낱말을 쓰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감동’이라고 하면서 우리 느낌이나 마음이나 생각을 얼마나 찬찬히 풀어놓고 있는지, 우리 느낌이나 마음이나 생각을 이웃한테 어떻게 들려주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10.24 11:0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적 #적的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4. 4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5. 5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