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없는 세상에서 돈을 추구했던 변호사

[리뷰] 마이클 코넬리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등록 2008.11.15 16:52수정 2008.11.1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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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겉표지 ⓒ 랜덤하우스

마이클 코넬리의 2005년 작품인 이 소설은 제목처럼 변호사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마이클 할러는 링컨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형사법 전문변호사다. 링컨을 타고 다니는 것 뿐만이 아니다.

마이클은 할리우드가 내려다 보이는 백만 달러짜리 전망을 가진 언덕 위 주택에서 혼자 산다. 옷장 속에 걸려있는 양복들 중에서 가장 싼 것이 6백 달러짜리다.


미국 변호사들의 월 평균수입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라면 마이클도 꽤 잘나가는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부를 쌓기 위해서 그동안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밑바탕에는 '돈'을 추구하는 마이클 특유의 사고방식이 깔려있다.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서 '돈에 살고 돈에 죽는 속물'이라고 말한다. 수임료를 제때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부러 사건심리를 늦추기도 한다. 늦어진 기간 동안 구치소의 의뢰인은 속이 타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돈과 허영에 집착하는 변호사

마이클은 2번 결혼했지만 모두 이혼하고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다. 그는 딸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지만 자신은 아버지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강력범죄자들을 변호해서 먹고 사는 아버지, 딸이 보기에도 그다지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마이클은 개업한 지 15년이 되었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한다. 법이란 것은, 사람과 생명, 돈을 닥치는 대로 삼켜버리는 거대한 괴물이다. 그는 괴물을 다루고 질병을 고쳐주는 전문가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내고, 대가는 많을수록 좋다.

의뢰인에게 일을 맡으면 그의 수임료는 시간당 3백 달러, 재판으로 들어가면 5백 달러가 된다. 적지않은 비용을 요구하는 만큼 그의 실력 하나는 뛰어나다. 납치와 가중폭력사건을 치안방해죄로 낮추기도 하고, 코카인 판매사건의 피고를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한다. 마리화나를 재배, 가공 및 판매까지 했던 의뢰인을 무죄로 방면하게 만들 정도다.


이런 실적은 모두 그의 전술 덕분이다. 피고가 범행을 저질렀느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증거와 증인이다. 마이클의 직업은 증거를 묻어버리고 증인을 믿을 수없는 인물로 만드는 것이다. 증거와 증언 하나하나를 끄집어내서 제거하고, 교묘한 물타기를 통해서 회색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고나면 검사 측의 주장은 껍데기만 남고 만다. 볼 것도 없이 마이클의 승리다. 경찰과 검찰은 당연히 마이클을 싫어한다. 어떤 경찰은 그에게 "구더기와 피고측 변호사의 차이점은 똥벌레와 돈벌레의 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이클의 전술은 역시 변호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돈만 있다면 악마라도 변호한다", "가장 무서운 의뢰인은 무고한 사람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던, 한시대를 풍미했던 거물 변호사였다.

정의없는 세상에서 마이클은 선택은?

이렇게 돈만 밝히는 마이클에게 어느날 거물급의 의뢰인이 나타난다. 비버리힐스의 부동산회사에 근무하는 돈 많은 청년이다. 이 청년은 살인미수 및 강간미수의 혐의를 받고 있지만, 자신은 무고하다고 강력하게 항의한다. 누군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으며, 오히려 폭행당한 것은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마이클이 보기에 이 사건은 대박을 안겨줄 것 같지만 사건을 조사할수록 기이한 점들이 계속 나타난다. 이번 의뢰인은 정말로 살인미수범일까, 아니면 아버지의 말처럼 가장 무서운 의뢰인인 무고한 사람일까.

마이클이 살고 활동하는 곳은 로스엔젤레스다. 흰 셔츠와 타이를 매고 헛바람만 잔뜩 든 사람들의 도시, 재산이 날아가고 공든 탑이 무너지고 기회를 모두 놓치고 나서야 혹독한 현실을 깨닫는 어리석은 존재들의 도시다.

그곳에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아귀다툼을 벌이고, 그중에서 상당수는 생계형 범죄와 인연을 맺는다. 처음부터 아무런 기회도 제공받지 못한 수많은 낙오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다가 범죄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런 도시에서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건과 법도 모두 날림으로 지어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과 같다. 마이클은 그 안에서 자신의 의뢰인만이라도 빼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법은 정의를 추구하지 않고, 마이클도 의뢰인이 유죄냐 무죄냐를 따지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세상에는 진실이 없고 세상에는 유죄가 아닌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마이클 코넬리 지음 /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덧붙이는 글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마이클 코넬리 지음 /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마이클 코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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