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에 싸인 뒤뜰, 그곳에 무엇이 있을까

[신간] 나시키 가호 <뒤뜰>

등록 2008.11.20 11:21수정 2008.11.2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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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 겉표지 ⓒ 이레

▲ <뒤뜰> 겉표지 ⓒ 이레

'뒤뜰'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떠오를까. 화려하고 깨끗한 앞뜰과는 달리 왠지 버림받고 쓸쓸한, 잘 돌보지 않는 부족함이 연상되지는 않을까.

 

나시키 가호의 판타지 소설 <뒤뜰>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에 의하면 앞뜰은 단순한 현관에 불과하고, 뒤뜰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무대이자 사람이 생활하는 근원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도 맞는 말이다. 앞뜰은 현관에 들락거릴 손님들을 위해서 가식적인 화려함으로 치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눈길이 덜 가는 뒤뜰을 보면, 그 집주인의 성향이나 생활 방식을 알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뒤뜰을 깔끔하게 정돈해두었을테고 또 어떤 사람은 앞뜰과는 반대로 쓸쓸하고 처량하게 방치해 두었을 것이다.

 

개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아가 뛰어노는 정원이 있다. 남들에게 보이려하는 앞뜰이 있을테고, 어두운 비밀과 과거를 꼭꼭 숨겨둔 뒤뜰도 있다. 저택의 정원사가 뒤뜰을 관리하듯이, 인간도 때때로 내면의 뒤뜰을 종종 들여다 보아야하지 않을까?

 

주인없는 저택의 숨겨진 공간, 뒤뜰

 

'뒤뜰'이란 제목은 글자 그대로 중의적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뒤뜰이자, 개인이 자신의 상처 뒤에 숨겨둔 또다른 자신이다. <뒤뜰>의 주인공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테루미다. 쌍동이 남동생은 6년 전에 죽었고, 작은 식당을 경영하는 부모님은 언제나 바쁘다.

 

남동생이 죽은 이후로 부모님과 한 번도 화목한 시간을 갖지 못했을 만큼 테루미는 외톨이처럼 지내고 있다. 저녁밥도 매일 혼자서 먹는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집에 자주 놀러가지만, 그것도 자신의 외로움을 근본적으로 달래주지는 못한다.

 

테루미가 사는 동네의 언덕배기에는 커다란 저택이 있다. 한때 영국인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다. 덕분에 그 집의 정원은 동네아이들에게 보물섬이나 마찬가지다. 정문은 굳게 잠겨있지만 아이들은 담을 넘어서 그곳으로 들어간다.

 

여름철에는 풍요로운 부엽토 속에서 자라나는 온갖 곤충들을 볼 수 있다. 새카만 빛을 뿌리는 투구풍뎅이, 커다란 하늘가재, 허공에서 힘차게 맴을 도는 장수잠자리와 자수정처럼 빛나는 오색나비 등.

 

이 저택에는 또 한가지 신비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돈다.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없는 뒤뜰이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그 집안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서 가꾸어온 곳으로 한 세대에 한 명씩 그 뒤뜰을 가꾸는 사람이 나온다.

 

그 뒤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안은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환상의 무대인 것은 분명하다. 테루미는 어느날, 부모님께 버림받은 심정이 되서 학교도 빼먹고 그 문제의 저택으로 향한다. 그리고 금기의 장소인 뒤뜰로 들어가게 된다.

 

환상의 공간에서 성장하는 주인공

 

판타지 소설이라면 <반지의 제왕>, <로도스 전기> 같은 작품들이 우선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전사와 마법사, 요정 엘프, 난쟁이 드워프가 함께 어우러져서 거대한 악을 물리친다는 일종의 영웅서사시다.

 

<뒤뜰>은 이와는 방향이 약간 다르다. 테루미가 물리쳐야할 구체적인 악도 없고, 테루미에게 달려드는 마물도 없다. 대신 테루미는 판타지의 무대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성장한다. 누군가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상처에 지배당하지 마라'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상처에서 당신의 정체성이 태어난다'라는 말을 한다.

 

테루미는 그 공간에서 환청을 듣고 환상을 본다. 그것은 자신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현실의 다른 면, 자신이 듣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간의 상상력이 판타지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환상의 공간이 자신의 성장을 도울수도 있을 것이다.

 

<뒤뜰>의 등장인물들은 때때로 과거를 이야기한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남들에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갑옷 뒤로 숨겨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숨겨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타인에게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에게까지 완전히 감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황폐하게 변하더라도 인간에게는 결코 버릴 수 없는 자신만의 뒤뜰이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뒤뜰> 나시키 가호 지음 / 이선희 옮김. 이레 펴냄.

2008.11.20 11:21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뒤뜰> 나시키 가호 지음 / 이선희 옮김. 이레 펴냄.

뒤뜰

나시키 가호 지음, 이선희 옮김,
이레, 2008


#뒤뜰 #판타지 소설 #나시키 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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