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선과 악의 대결이 펼쳐지다!

[리뷰]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더스크 워치>

등록 2008.12.01 10:09수정 2008.12.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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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크 워치> 겉표지 ⓒ 황금가지

▲ <더스크 워치> 겉표지 ⓒ 황금가지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간의 갈등과 대립. 이것은 문화적으로 역사가 오래된 구도다. 여기서 빛은 선, 어둠은 악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악의 세력은 음흉하고 교활하며 나아가서는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선의 세력은 떳떳하고 정정당당하며 최후의 한차례 승리로 세상을 구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형태다. 하지만 선과 악의 구별이, 빛과 어둠의 차이처럼 명확하지 않다면 어떨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조차 판단할수가 없다면?

 

러시아 작가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판타지 소설 <더스크 워치>에도 빛과 어둠의 세력이 있다. 이들은 서로 갈등하지만 드러내놓고 으르렁 대지는 않는다. 이들 세력이 언제부터 빛과 어둠으로 나뉘었는지 모른다. 족히 수천년, 아마 그 이상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불만이 많지만, 오래전에 맺은 '대협약' 덕분에 서로를 견제하고 스스로 자제한다. 대협약이 무너질 경우에, 그러니까 빛이건 어둠이건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경우에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빛과 어둠

 

<더스크 워치>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현대의 러시아, 그중에서도 모스크바다. 그곳에는 인간과 '다른 존재들'이 함께 살아간다. 다른 존재들은 태고적부터 지구상에 있어왔던 빛과 어둠의 세력이다. 외모상으로는 인간과 똑같지만,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수도 있고 염력으로 물건을 이동시키기도 한다. 다른 존재들끼리는 초능력을 사용해서 전투를 벌이고, 텔레파시로 대화하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서 '경비대'를 만들어서 운용한다. 경비대의 임무는 인간과 다른 존재들을 나누어서 구분하는 것이다. 다른 존재들의 행위가 최대한 인간들에게 간섭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존재의 종류도 여러가지다. 빛의 마법사, 어둠의 주술사, 흡혈귀, 늑대인간, 마녀 등.

 

빛의 세력은 야간 경비를 담당하고 어둠의 세력은 주간 경비를 맡는다. 당연히 인간들은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알아서도 안된다. 말하자면 다른 존재들은 안팎으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대협약을 어기고 인간 사회에 개입하는 존재가 있는지 감시하면서, 자신들의 정체가 인간들에게 알려지지 않게 신경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이들의 수뇌부로 한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다른 존재 중에서 한명이 인간에게 자신들의 비밀을 발설하고, 그 인간을 다른 존재로 변신시키려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다.

 

이 편지 때문에 수뇌부는 벌집을 쑤신 꼴이 된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주간 경비대는 상급 흡혈귀 한명을, 야간 경비대는 2급 빛의 마법사 안톤 고로제츠키를 수사관으로 파견한다. 이들의 수사는 처음부터 쉽지 않다. 수많은 다른 존재들을 모두 탐문하는 것도 어렵고, 인간들과 일일히 첩촉할수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또 한가지 커다란 비밀이 관계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인간을 다른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 적힌 책 한권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돈다.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 책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수사관들은 편지의 진상과 책의 비밀을 한꺼번에 풀어낼 수 있을까?

 

현대의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3부작

 

<더스크 워치>에서는 다른 존재들을 통해서 역사의 몇몇 장면들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7단 마녀'였던 잔 다르크는 대협약을 어기고 인간들의 전쟁에 개입했기에 화형당했다. 소비에트 혁명이 실패한 이유는, 자신들의 존재가 탄로날것을 걱정한 다른 존재들이 당시 소련 민중들에게 농간을 부렸기 때문이다.

 

중세에 대대적인 마녀사냥이 있었던 것도 비슷한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지 않을까. 빛의 마법사 안톤은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활약하면서 한가지씩 깨닫는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마법에 대한 친화력'을 알게되고, 빛의 마법사와 흡혈귀가 별 차이가 없다는 점, 경비대의 임무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깨닫게 된다.

 

그렇더라도 안톤의 삶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과 다른 존재의 공통점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는 남의 힘을 빌어가고 또 누구는 글자그대로 타인의 피를 빨아먹고 살지만,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살기위해서 슬프게 발버둥치는 모습에 불과하다.

 

이 작품은 <나이트 워치> <데이 워치>를 잇는 3부작의 완결편이다. 밤, 낮을 거쳐서 이번에는 황혼이다. 황혼의 풍경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밤과 낮의 경계처럼 혹은 밤과 낮을 뒤섞은 듯 흐릿하기도 하다. <더스크 워치>의 세상도 그렇다. 선과 악도 없고 거짓과 진실도 없다. 오직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더스크 워치> 상, 하.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 이수연 옮김. 황금가지 펴냄.

2008.12.01 10:0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더스크 워치> 상, 하.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 이수연 옮김. 황금가지 펴냄.

더스크 워치 - 상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지음, 이수연 옮김,
황금가지, 2008


#더스크 워치 #판타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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