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원 소현세자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권역에 있으며 비공개다.
이정근
문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양주에 머물고 있던 김상헌은 세자의 부음을 듣고 갈등을 느꼈다. '문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이 문제였다. 안동에 은둔하고 있던 김상헌에게 청나라의 소환령이 떨어져 의주로 향할 때 대궐을 지나는 길목이었다. 하지만 김상헌은 인조와 대면을 피하고자 곧바로 의주로 향했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귀국인사를 기대했던 인조를 외면하고 덕소로 직행했다.
새파랗게 젊고 건강하던 세자가 주검이 되어 창경궁에 누워있다. 죽음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할 처지는 아니지만 인조에게 힘을 실어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팔도의 유생과 사대부들이 김상헌의 거취를 지켜보고 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썩 내키지 않은 문상길이다. 그것은 청나라를 보는 시각의 차이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한산성에서 나오기 직전, 주화와 척화라는 명분으로 최명길과 각을 세어 대립했지만 심양 감옥에서 조우했을 때 반청이라는 총론은 같고 방법론에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청나라는 추종의 대상이 아니라 복수의 대상이라는 공감대다.
성리학을 신봉하는 대다수의 사대부들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여기에서 인조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심양에서 8년간 생활 한 세자의 생각은 다르지 않을까 우려가 없지 않았다.
덕소에 내려가 있던 김상헌이 입궁하여 빈소를 찾았다. 실로 오랜만의 입궁이다. 병자년, 허둥지둥 궁을 빠져나가 남한산성으로 향한 이후 처음이다. 정치 노선은 달랐지만 소현이 마지막 가는 길에 성복하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