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죽음, 병사일까? 독살일까?

[역사소설 소현세자 마지막회] 흙으로 돌아간 왕세자

등록 2008.11.18 10:32수정 2008.11.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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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원 소현세자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권역에 있으며 비공개다. ⓒ 이정근


문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양주에 머물고 있던 김상헌은 세자의 부음을 듣고 갈등을 느꼈다. '문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이 문제였다. 안동에 은둔하고 있던 김상헌에게 청나라의 소환령이 떨어져 의주로 향할 때 대궐을 지나는 길목이었다. 하지만 김상헌은 인조와 대면을 피하고자 곧바로 의주로 향했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귀국인사를 기대했던 인조를 외면하고 덕소로 직행했다.


새파랗게 젊고 건강하던 세자가 주검이 되어 창경궁에 누워있다. 죽음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할 처지는 아니지만 인조에게 힘을 실어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팔도의 유생과 사대부들이 김상헌의 거취를 지켜보고 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썩 내키지 않은 문상길이다. 그것은 청나라를 보는 시각의 차이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한산성에서 나오기 직전, 주화와 척화라는 명분으로 최명길과 각을 세어 대립했지만 심양 감옥에서 조우했을 때 반청이라는 총론은 같고 방법론에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청나라는 추종의 대상이 아니라 복수의 대상이라는 공감대다.

성리학을 신봉하는 대다수의 사대부들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여기에서 인조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심양에서 8년간 생활 한 세자의 생각은 다르지 않을까 우려가 없지 않았다.  

덕소에 내려가 있던 김상헌이 입궁하여 빈소를 찾았다. 실로 오랜만의 입궁이다. 병자년, 허둥지둥 궁을 빠져나가 남한산성으로 향한 이후 처음이다. 정치 노선은 달랐지만 소현이 마지막 가는 길에 성복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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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원종으로 추증된 인조의 아버지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 경기도 김포에 있다. ⓒ 이정근


풍수 지관들과 함께 건원릉·광릉·희릉·효릉을 둘러보고 돌아온 관상감 제조 김육과 예조참의 이덕수가 희릉과 효릉 두 능 사이에 묘를 쓰기에 합당한 곳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는 예장도감 제조 김자점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다.


"외방에 있는 술관들도 불러 모아 현장을 간심한 뒤에 의논해서 결정하도록 하라."

당대 최고의 풍수는 장진한이었다. 그는 인조의 생모 계운궁을 김포로 천장하여 인조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관상감에서 장진한에게 자문을 구했다.

"희릉과 효릉 사이는 수파가 염려 됩니다."

물(水)이 있어 길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어디가 좋겠소?"
"영릉의 홍제동에 쓸 만한 등성이가 있습니다."
"그곳은 지난번 상사 때에도 길이 멀어서 쓰지 않았던 곳 아니오?"
"다음으로 좋은 곳은 양주에 있습니다. 큰 여울을 끼고 남쪽으로 향한 산의 감계룡(坎癸龍)이 썩 좋습니다."

장진한의 말을 들은 관상감이 인조에게 보고했다.

"여러 술관들이 모두 희릉과 효릉의 안을 가합하게 여기는데 장진한만이 수파(水破)가 불길하다고 합니다."

그날 밤, 김자점이 장진한을 은밀히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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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원 지관들의 예언처럼 수파를 맞았을까? 능상으로 오르는 신도가 함몰되어 있다. 심양을 바라보며 누워 있으라는 뜻일까? 왕실 묘역으로는 드물게 북향이며 불 타버린 정자각 터에 주춧돌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이정근


흉지를 찾는 사람은 상상도 못했다

"지관은 뭐하는 사람이오?"
"지상(地相)을 살피는 사람입니다."
"땅에는 길지가 있고 흉지가 있다 들었소. 그렇소?"

김자점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렇습니다. 대감!"
"그렇다면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면 됐지 왜 그리 말이 많소?"

장진한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아찔했다. 풍수생활 40여 년, 당대의 부귀영화와 자손만대의 기복을 원하는 길지를 찾는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흉지를 찾는 사람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궁에 들어간 장진한은 희릉과 효릉 사이의 구릉은 불길하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효릉 안의 신원(新原)이 가합하다고 번복했다. 마침내 자리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 장진한은 궁에서 나와 그간의 사정을 발설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세자빈이 영릉 홍제동을 쓰자고 청했지만 인조는 윤허하지 않고 대노했다.

"장진한을 잡아다 국문해서 처치하라."

장진한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땅의 지세를 살핀다는 사람이 자신이 들어갈 땅의 형세마저 살피지 못한 결과이다.

봉림대군이 돌아왔다. 왕심(王心)을 쫓던 관료들의 눈초리가 봉림에게 쏠렸다. 국본(國本)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줄을 잘 서면 입신출세길이 열린다. 그걸 놓칠 리 없는 대소신료들이 봉림에게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예민한 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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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문당 소현세자 빈소 이후 숭문전은 헐리고 경종 때 숭문당으로 지어졌으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순조 30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편액은 영조의 어필이다. ⓒ 이정근


마침내 발인이다. 숭문전에 안치되어 있던 세자의 재궁은 빈양문을 나와 명정문 남동쪽에서 소여(小轝)에 올랐다. 입직한 여러 관원들은 재배하고 곡하며 하직했다. 장졸들은 각기 입직 장소에서 발인하는 쪽을 바라보며 곡했다.

선인문을 나온 재궁은 대여(大轝)에 옮겨 실은 다음 운종가를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종친부·익위사·시강원의 관속 및 각사의 당상과 낭관 한 사람씩 배종했다. 세자의 장례행렬치고는 썰렁했다. 노제소(路祭所)에 기다리고 있던 재추(宰樞)와 백관 및 유생들은 길가에 차례대로 늘어서 있다가 재궁을 맞아 재배하고 곡하며 하직하였다.

종루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통교를 건넌 재궁행렬은 숭례문을 통과하여 무악재 고개를 넘어 고양에 도착했다. 장사에 동원된 승군(僧軍) 1420명, 연군(煙軍) 9백 명의 부역으로 소현은 안장되었다. 심양을 바라보며 누워 있으라는 뜻이었을까? 왕실 묘역으로는 드물게 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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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회원 세자빈 강씨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죽음과 함께 폐서인이 되었으나 숙종 44년 무고함이 밝혀져 민회빈으로 신원되었다. 경기도 광명시에 있다. ⓒ 이정근


어미는 사사되고, 아들은 유배되고...

소현이 죽은 이듬해, 세자빈 강씨는 음식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로 폐출되어 사사되었고 소현의 세 아들은 제주로 유배되었다. 이 때 석철 12세, 석린 8세, 석견 4세였다. 유배 생활하던 석철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인조는 다음과 같이 하교했다.

"석철의 일에 대해서 매우 놀랍고 슬프게 여긴다. 중관(中官)을 보내 그의 관구(棺柩)를 호송해 와 그의 아비 묘 곁에다 장사지내게 하라."

이 일을 당시 사관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석철이 역강(逆姜)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성상의 손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의 지친으로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제주도로 귀양 보내어 결국은 죽게 하였으니 그 유골을 아버지의 묘 곁에다 장사지낸들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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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군묘 왼쪽이 효종 10년 경선군으로 추증된 석철, 오른쪽이 석린이다. 서삼릉 권역에 있으며 묘역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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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소현세자 사후, 세자빈 강씨의 외롭고 처절한 투쟁은 별도의 꼭지로 만나 뵙기를 약속드리며 지금까지 줄거리는 '책/보/세'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오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소현세자 사후, 세자빈 강씨의 외롭고 처절한 투쟁은 별도의 꼭지로 만나 뵙기를 약속드리며 지금까지 줄거리는 '책/보/세'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오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소현세자 #소경원 #영회원 #장릉 #민회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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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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