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제국 5000만 파운드의 보물은 어디로 사라졌나

[리뷰] 보리스 아쿠닌 <리바이어던 살인>

등록 2009.01.10 14:10수정 2009.01.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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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 살인> 겉표지 ⓒ 황금가지

칭기즈칸과 티무르는 약 200년의 시간차이를 두고 중앙아시아 일대를 제패했다. 그리고 칭기즈칸과 티무르의 후손인 바부르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과 인도의 델리를 점령하면서 무굴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다. 힌두교도가 대부분인 지역에 이슬람 왕국이 성립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지역을 평화롭게 통치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무굴의 군주들은 계속해서 재산을 늘려갔고, 세계의 어떤 군주와 비교해도 뒤질것 없는 부를 쌓기에 이르렀다.


그중에서 브라흐마푸르 가문은 특이한 방법으로 재산을 관리했다. 거의 300년 동안 이 가문의 군주들은 보석에만 집착한 것이다. 그렇게 모은 보석의 양은 엄청나다. 80캐럿짜리 완벽한 보석을 512개나 수집했다.

이 보석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19세기 중반 인도에서 세포이 폭동이 일어났을때, 브라흐마푸르 군주는 아프가니스탄으로 탈출하려고 했지만 갠지스 강가에서 체포되고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 당시 영국의 화폐를 기준으로 5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보석의 행방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는 소문만 전설처럼 떠돌뿐.

무굴 제국의 보물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러시아 작가 보리스 아쿠닌의 소설 <리바이어던 살인>은 다소 황당해보이는 이 보물을 소재로 한다. 작품의 시작은 1878년의 프랑스다. 세포이 폭동이 일어나고 30년 가량이 지난 시점이다. 파리의 한 저택에서 무려 10구의 살해당한 시신이 발견된다. 이 집은 괴팍한 성향의 수집가이자 인도학자가 살던 곳이다.

그 학자와 경호원, 하녀까지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살해당한다. 수집품 중에서는 황금 시바 상과 오래된 스카프가 한장 사라졌을 뿐이다. 며칠 뒤에 시바 상은 강바닥에서 발견되지만 스카프의 행방은 묘연하다. 범인은 무슨 생각으로 값비싼 황금 상을 버리고 낡은 스카프만 챙겨갔을까.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파리 경찰청의 고슈 경감이 나선다. 경감은 현장의 단서를 근거로 범인이 거대한 호화여객선 리바이어던 호에 승선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 배는 영국을 출발해서 포트사이드, 아덴, 봄베이를 거쳐서 캘커타로 향할 예정이다.

천 명의 승객과 1만 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고, 총 길이는 180미터에 폭은 24미터에 달한다. 단순한 배가 아니라 온갖 부랑자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하나의 도시다.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을 현대판으로 구축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커다란 배에서 범인을 잡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을 것이다. 고슈 경감도 그 사실을 안다. 이 사건을 해결하면 명예로운 은퇴가 가능하겠지만, 만일 그러지 못한다면 캘커타에 도착하는대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야자수에 목을 매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배에 주인공 에라스트 판도린도 뒤늦게 승선한다. 러시아의 젊은 외교관인 그는 새로운 임지인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 이 배에 오른다. 판도린은 특유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분석력으로 경감의 추리를 돕는다. 경감은 여러명의 용의자를 한곳으로 모으고 그들을 심문하면서 조금씩 사건의 진상으로 다가간다.

흥미로운 에라스트 판도린 시리즈

<리바이어던 살인>은 '에라스트 판도린 시리즈'의 한 편이다. 판도린이 등장하는 첫번째 작품인 <아자젤의 음모>와 비교할때, <리바이어던 살인>은 판도린이 주인공이라는 것만 빼고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아니 <리바이어던 살인>에서는 판도린이 주인공인지 조차 혼란스럽다. 판도린의 혜안으로 사건이 풀려가지만, 그는 작품속에서 조용한 관찰자에 머무른다. 이야기는 고슈 경감과 그가 지목한 몇 명의 용의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때로는 1인칭으로 때로는 3인칭으로, 평범한 서술형을 사용하다가 서간체를 도입하기도 한다.

작품의 분위기도 그렇다. <아자젤의 음모>가 제목처럼 특정 집단이 꾸며내는 사악한 음모를 소재로 하는 반면, <리바이어던 살인>은 역시 제목처럼 고전적인 기이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죽음의 신 하데스의 왕국이 펼쳐진 것처럼 살해당한 10구의 시신, 넓은 공간이지만 폐쇄된 장소인 배 위에서 벌어지는 추리와 추적. 작가 보리스 아쿠닌은 고전 추리소설의 한가지 형식을 색다르게 치장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거기다가 작중인물을 통해서 장황하게 펼쳐지는 인도 무굴제국의 보물에 관한 전설도 흥미롭기만 하다. 엄청난 보물이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다면 그곳은 바로 리바이어던 호가 향하는 장소 아닐까.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판도린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초록빛을 내뿜는 인도양의 드넓은 바다를 바라본다.

봄베이 항구의 뜨거운 태양을 만끽하고 폭풍우치는 밤에 이빨을 드러내는 번개와 직면하기도 한다. <아자젤의 음모>에서 순진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판도린은 <리바이어던 살인>에서는 언제나 침착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을 따라서 여행하듯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판도린의 삶이 흥미롭고 부럽다. 판도린 시리즈를 계속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리바이어던 살인> 보리스 아쿠닌 지음 / 이형숙 옮김. 황금가지 펴냄.


덧붙이는 글 <리바이어던 살인> 보리스 아쿠닌 지음 / 이형숙 옮김. 황금가지 펴냄.

리바이어던 살인

보리스 아쿠닌 지음, 이형숙 옮김,
황금가지, 2008


#리바이어던 살인 #추리소설 #보리스 아쿠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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