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초대해준 바하디르이튿날 아침 그의 집 마당에서
김준희
중년남성답게 살이 찌고 배가 나온 바하디르는 말하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애니메이션 같았다. 소고기와 감자를 볶은 안주에 보드카를 마시고나자 바하디르는 나에게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권한다. 그곳에서 2차를 하자는 것이다.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재워주겠다는 사람이 많을까. 오리프존도 같이 가기로 했다. 그래서 모두 함께 움직였다. 나는 짐을 다시 꾸려서 바하디르를 따라 나섰다.
바하디르의 집은 크고 넓다. 방 하나를 차지하고 앉자 전통빵과 포도, 사과, 소시지로 만든 안주 등이 계속 탁자에 놓인다. 아까 내가 식당에서 먹다가 남긴 맥주도 가져와서 탁자에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드카가 놓였다. 올해 43세인 바하디르는 3명의 아들이 있다. 내가 물었다.
"아들만 있고 딸은 없어요?""딸은 없어. 대신에 코브라가 있어.""코브라요?"도마뱀을 기르는 사람은 보았어도 집에서 코브라를 키운다? 바하디르는 한쪽에 서있던 부인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코브라 저기 있잖아."그제서야 깨달았다. 부인은 웃으면서 바하디르를 쳐다본다. 참 재미있는 아저씨다. 비록 말도 잘 안 통하지만 그 방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가 내가 먼저 쓰러져서 잠을 잤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침에 다시 술자리가 시작되다아침에 일어났더니 머리가 띵하다. 시간은 7시 30분. 오리프존과 다른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내 옆에는 바하디르의 막내 아들이 잠들어 있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와서 대충 얼굴을 씻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짐을 모두 꾸리고나서 방에서 양말을 신고 있는데 바하디르가 들어왔다.
"잘 잤어?"그러더니 먹는 시늉을 하며 마당을 가리킨다. 출발 전에 대충 배를 채우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밖으로 나갔더니 이게 웬일, 마당의 한쪽에는 어느새 술상이 차려져 있다. 시간은 오전 8시. 이 시간에 해장술을 마시자는 건가.
바하디르의 집으로 다른 사람들도 한 명씩 들어온고 어제 저녁에 만났던 오리프존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서로 보드카를 권하기 시작한다. 아침 8시에. 오늘은 수요일인데 이 사람들은 출근도 안하나. 아니면 이 정도 마시고 일하러 가도 아무 상관이 없는 건가.
나는 걸어가야 하니까 마시면 안 된다고 거절했지만 바하디르는 막무가내다. 여기서 하루더 자고 가라면서 계속 권한다. 걷는 것도 그렇지만 어제 마신 술도 덜깬 상태다. 이 상태로 저 술을 마시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오고 간다. 바하디르 말대로 여기서 하루 더 잘까. 그건 아니다. 빨리 사마르칸드에 가고 싶다. 그냥 한두 잔 마시고 걷다가 길가의 식당에서 낮잠 한숨 자고 나면 술이 깰 것도 같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그래 나도 마시자.
한국에서 일했다는 알리를 만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