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오름 탐사의 맛, 분화구엔 가을이 넘실

[제주의 오름기행 51]사슴을 닮은 큰사슴이오름

등록 2009.02.04 14:16수정 2009.02.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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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분화구 분화구엔 억새가

분화구 분화구엔 억새가 ⓒ 김강임


“꽤  덩치가 큰 사슴이네요!”

기축년 2월 첫 휴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정석비행장 주차장에서 바라본 기생화산을 보고 내가 던진 말이었다.


“사슴이 아니라, 코끼리 덩치만한데...”

함께 한 오름동우회 언니의 코멘트였다. 그러고 보니 넓게 펼쳐진 들녘 한가운데 코끼리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a 큰사슴이오름 오름가는길

큰사슴이오름 오름가는길 ⓒ 김강임


겨울 오름, 그 탐사의 맛

2월 1일 아침 10시, 겨울의 아침 기온 치고는 제법 따뜻했다. 큰사슴오름으로 향하는 길은 누렇게 바랜 억새가 나풀거렸다. 시멘트로 포장된 300m 정도의 길 끝에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사각사각 소리 나는 스코리아 길을 걷는 재미를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오름기행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느낌이다. 등산로 주변에는 크고 작은 소나무와 삼나무 숲이 바람을 막아주었다. 때문에 참으로 아늑했다.

오름길라잡이 오 선생님은 정상으로 통하는 지름길이 있음에도 일부러 험한 길을 택했다. 오르미들에게 오름 탐사의 맛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a 둥지 새들의둥지

둥지 새들의둥지 ⓒ 김강임


겨울나무에 걸터앉은 빈 둥지

정석비행장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걸었을까. 큰사슴이오름 북쪽으로 오르는 좁은 산길은 겨울 잡초가 무성했다. 잡초와 어우러진 겨울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그 가지 위에 걸터앉은 새집의 발견은 오르미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마른 이파리 하나하나를 주워 모아 보금자리를 만든 새들의 노고가 빈둥지 안을 지켰다. 새집의 발견, 길을 걷던 오르미들은 새둥지 앞에 모여 들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떠난  둥지는 텅 비어 있었다. 아마 둥지에 주인이 찾아올 무렵이면 마른가지에도 새잎이 무성할 것이다.

a 겨울나무 겨울나무 가지에는 열매인듯 꽃인듯 대롱대로 달렸습니다

겨울나무 겨울나무 가지에는 열매인듯 꽃인듯 대롱대로 달렸습니다 ⓒ 김강임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

좁은 길로 이어지는 산길은 탐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청미래덩쿨 가시는 몸을 할퀴고, 찔레꽃 넝쿨은 바짓가랑이를 잡아 뜯었다. 지름길을 남겨두고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는 우리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걷었을까? 사람들이 자주 걷지 않은 길이라 다소  험난하고 힘들었지만, 가시밭길을 헤쳐 나갈 때 기분은 알싸함 그 자체다.

a 노루분비물 노루분비물

노루분비물 노루분비물 ⓒ 김강임


a 낙엽길 등산로는 낙엽길

낙엽길 등산로는 낙엽길 ⓒ 김강임


노루분비물, 그리고 낙엽을 밟으며

“노루가 다녀갔군요.”

앞서가던 오르미는 마른 잡초 위 검은 분비물 알아본다. 정루알 보다 조금 큰 알갱이를 하고 있는 분비물이 노루분비물이라 한다. 올겨울 한파에 먹을 것이 없어 기행화산 중턱까지 내려왔을 배고픈 노루를 상상해 보았다.

20분쯤 걸었을까. 스코리아 위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겨울 속에서 맛보는 가을을 정취랄까. 낙엽을 밟고 걷는 재미 또한 괜찮았다.

a 하산 하산

하산 하산 ⓒ 김강임


원형분화구엔 가을이 넘실

표고 474.5m, 비고 125m 큰사슴이오름 진수는 분화구가 아닌가 싶었다. 해송과 억새, 찔레와 쥐똥나무들이 서식하고 있는 큰사슴이오름 정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분화구가 나타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깊이 55m 분화구 속을 들어갔을 때, 우리는 가을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아주 조그만 학교 운동장 같기도 하고, 소형 무대 같기도 한 원형화구 안은 누렇게 짓무른 억새가 만발했다. 한마디로 가을이었다. 한겨울 말없이 피어 있었을 억새의 무리는 그렇게 큰사슴이 오름 한가운데 피어 있었다.

가을 분위기에 무르익다보니 분하구의 능선이 궁금해졌다. 분화구 한가운데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 나무뿌리를 딛기도 하고,  죽은 나무 가지를 잡기도 하고, 숨을 헉헉대며 오른 곳은 큰사슴이 오름 능선.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능선에서는 분화구의 모습을 조망할 수 없음이다.

a 능선의 진달래 능선에는  진달래가 봄을 틔웁니다

능선의 진달래 능선에는 진달래가 봄을 틔웁니다 ⓒ 김강임


a 정상 정상에서 본 풍경

정상 정상에서 본 풍경 ⓒ 김강임


능선 걷다보니...봄이 기다려져

하지만 능선 오른쪽에 펼쳐진 구름 덮인 한라산, 그리고 광활하게 펼쳐진 제동목장, 정석비행장에 대기하고 있는 비행기를 보니 하늘위에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또 하나의 보너스가 있다면 봄을 기다리는 진달래와 철쭉의 몸짓, 능선을 에워싸고 있는 진달래의 군락이다. 그렇다보니 봄이 기다려 질 수밖에.

능선을 걷다보니 온몸에 열이 발생했다. 능선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15분정도 소요됐을까. 하산은 동쪽으로 내려앉은 기슭을 선택했다.  오름 아래에는 봄의 행진이 펼쳐졌다. 목장 주변에 파랗게 자라나는  목초. 아직 세상은 겨울인데 큰사슴이오름에서 본 들판은 벌써 파란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이 큰사슴이오름에 교차하고 있었다. 
a 대록산 대록산

대록산 대록산 ⓒ 김강임


큰사슴이오름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정석비행장 주변에 있으며,표고 474.5m, 비고 125m, 둘레 2,794m, 저경 961m로 정석비행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등산로는 가파르고 화구 정상에 숲이 어우러져 있으며, 지형과 지세가 사슴과 비슷하다고 해서 큰사슴이오름, 대록산이라 부른다.  북으로 터진 말굽형화구와 원형분화구의 화산체로 해송과 삼나무 숲을 이루며 진달래 찔레 등이 서식한다. -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정보 중에서-

덧붙이는 글 | 2월 1일에 다녀온 큰사슴이오름 기행입니다.
이 기사는 제주의소리 <김강임의 오름기행>에도 연재 됩니다.


덧붙이는 글 2월 1일에 다녀온 큰사슴이오름 기행입니다.
이 기사는 제주의소리 <김강임의 오름기행>에도 연재 됩니다.
#큰사슴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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