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한자말 털기 (61) 굉장

[우리 말에 마음쓰기 540] ‘굉장히 비싸지요?’와 ‘대단히 비싸지요?’

등록 2009.02.03 14:51수정 2009.02.0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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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는 1년 동안 내는 돈만 해도 5백만 원이 넘는답니다. 굉장히 비싸지요? 그래서 공부를 못하거나 돈이 없는 친구는 대학에 가고 싶어도 못 들어갑니다 ..  《강수돌-지구를 구하는 경제책》(봄나무,2005) 25쪽

 

 2005년에 나온 책에는 ‘대학교 한 해 등록금이 5백만 원’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때 뒤로 세 해밖에 지나지 않은 2008년에는 한 해에 천만 원에 이르는 대학교 등록금이 되었습니다. 올 2009년에는 천만 원도 훌쩍 넘어설 테며, 앞으로 해가 가면 갈수록 등록금은 더 높아질 테고, 언젠가는 한 해에 1억 원이라는 돈이 들어갈 날을 맞이하리라 봅니다.

 

 참으로 크나큰 돈입니다. 그지없이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이렇게까지 돈을 쏟아붓고 꼭 대학교에서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하느냐 싶기도 합니다. 대학교 아닌 데에서 아이를 가르칠 수는 없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대학교를 보내지 않고 세상을 배우고 앎을 익히며 슬기를 닦을 수 없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 굉장(宏壯)

 │  (1) 아주 크고 훌륭하다

 │   - 잔치가 굉장하다 / 새로 지은 집이 굉장하다 / 집이 굉장히 좋은데

 │  (2) 보통 이상으로 대단하다

 │   - 굉장한 능력 / 고함 소리가 굉장하다 / 비바람이 굉장하다 /

 │     이 일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 굉장히 빠른 속도

 │

 ├ 굉장히 비싸지요?

 │→ 대단히 비싸지요?

 │→ 무척 비싸지요?

 │→ 몹시 비싸지요?

 │→ 너무 비싸지요?

 │→ 지나치게 비싸지요?

 └ …

 

 나날이 더 많은 아이들이 대학교까지 가고, 더 긴 시간을 교재를 붙들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그러나 나날이 더 많은 아이들이 책하고 담을 쌓습니다. 배우는 시간은 늘어나고 길어지지만, 스스로 배움을 갈고닦거나 다지는 시간은 줄어들고 적어집니다.

 

 너른 세상을 더 널리 껴안는다거나, 깊은 세상을 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요즈음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들만 이러한가 하면 아닙니다. 어른들부터 더 널리 세상을 껴안지 못합니다. 어른들이야말로 더 깊이 세상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책 거들떠볼 겨를이 없다고 하지만, 어른들 가운데 책 들출 짬을 넉넉히 내는 이가 아주 드뭅니다.

 

 말 한 마디 알뜰히 추스르는 데에도 마음을 못 쓰는 어른들인 터라, 올바르거나 알맞춤하게 말하고 글쓰는 일은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만, 어른 스스로 아이 앞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아이들 또한 말 한 마디 살포시 가다듬거나 매만질 줄 모릅니다. 어른들이 엉터리로 말하니 아이들도 엉터리로 말하고, 어른들이 아무렇게나 말하니 아이들도 아무렇게나 말하며, 어른들이 갖은 욕지꺼리를 늘어놓으니 아이들도 갖가지 욕지꺼리가 일찌감치 입에 달라붙습니다.

 

 ┌ 잔치가 굉장하다 → 잔치가 대단하다

 ├ 새로 지은 집이 굉장하다 → 새로 지은 집이 훌륭하다

 └ 집이 굉장히 좋은데 → 집이 무척 좋은데

 

 말을 가꾸는 삶이 없고, 삶을 가꾸는 말이 없습니다. 생각을 가꾸는 삶이 보이지 않고, 삶을 가꾸는 생각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넋을 가꾸는 삶을 만나기 어려우며, 삶을 가꾸는 넋을 어깨동무하기 힘듭니다.

 

 돈을 일구는 삶만 보입니다. 이름값을 닦아세우는 삶만 보입니다. 무리지은 힘, 그러니까 권력을 올려붙이려는 삶만 보입니다.

 

 차분히 뒤돌아보는 삶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곰삭이는 삶도 보이지 않습니다. 넉넉히 함께하는 삶마저 보이지 않습니다.

 

 ┌ 굉장한 능력 → 대단한 솜씨

 ├ 고함 소리가 굉장하다 → 외치는 소리가 아주 크다

 ├ 비바람이 굉장하다 → 비바람이 사납게 몰아친다

 ├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 크나큰 용기가 있어야 한다

 └ 굉장히 빠른 → 아주 빠른

 

 삶다운 삶이 아닌 자리에 말다운 말이 깃들 수 없습니다. 삶다운 삶으로 북돋우지 못하는 자리에 글다운 글이 펼쳐질 수 없습니다. 삶다운 삶을 고맙게 받아들이며 아름다움을 스스로 찾지 않는 자리에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말이 엉망으로 나동그라지는 세상이요 글이 엉망진창으로 무너지는 세상인데, 우리 삶부터 차곡차곡 곧추세우면서 돌보지 않으면 말이고 글이고 뒤죽박죽인 채 어지러울 뿐입니다. 어떤 밥을 어떻게 마련해서 먹는지 돌아보듯, 어떤 물을 어떻게 얻어서 마시는지 깨닫듯, 어떤 말을 어떻게 배워서 어디에서 누구하고 쓰는지를 살필 수 있는 마음밭이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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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3 14:51ⓒ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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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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