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도시 사마르칸드하즈렛 히르즈 모스크
김준희
사마르칸드에서 타쉬켄트까지는 약 350km 정도다. 지금처럼 걷는다면 10일만에 주파가 가능한 거리다. 사마르칸드를 지났으니 이제 내 도보여행도 2/3 가량을 완수한 셈, 이제부터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발목이라도 부러지지 않는 이상 쉬는 날은 없다.
타쉬켄트에 도착할 때까지 2개의 큰 도시, 지작과 굴리스탄이 남아있다. 이 도시들은 역사도시도 아니고 볼만한 유적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하루이틀 머물만큼 큰 도시도 아니다. 사마르칸드를 떠나면 역사도시와도 멀어진다. 그러니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걷기만 되는 것이다.
아침식사를 빵으로 때우고 오전 8시에 출발했다. 역시 사마르칸드 시내를 벗어나는데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사마르칸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라서 그만큼 복잡하다. 지도를 보며 현지인들에게 수차례 길을 물어본 후에야 지작으로 가는 큰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사마르칸드를 벗어나서 조용한 길을 혼자 걷자니 왠지 시원섭섭하다. 한적한 길위에 혼자 서있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지만, 사마르칸드에 대한 미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듯 하다. 그것이 나의 생각을 자꾸 사마르칸드로 이끌고 있다. 몸은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머릿속은 푸른 돔과 울루그벡의 석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티무르 제국의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내가 가장 끌리는 인물이 울루그벡이다. 그건 아마도 울루그벡이 정복자가 아니라, 훌륭한 통치자이자 과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비운의 인물이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봐도 울루그벡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인물이다. 종교가 우선시되던 시절에 과학에 빠져있었던 것이 그의 문제였다. 아니 어쩌면 시대와 종교의 문제였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는 자신의 아들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사마르칸드를 통치하던 도중 55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세계사를 통털어서 이런 인물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울루그벡은 자신이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죽기 전에 깨달았을까. 어쩌면 그 사실을 모른 채 죽는 것이 보다 마음 편했을지 모른다. 그가 죽고나자 그렇게 공을 들여서 만들었던 천문대도 모두 파괴되었다. 사마르칸드에 남아있는 천문대의 터는 그 파괴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울루그벡이 죽으면서 그가 이루어놓은 업적도 모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아들에게 암살당한 통치자 울루그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