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만 재워 주세요!", "돈 있어? 달러 있어?"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기 32] 도보여행 32일(사마르칸드 -> 19라지스)

등록 2009.02.13 10:07수정 2009.02.1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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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하즈렛 히르즈 모스크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하즈렛 히르즈 모스크 ⓒ 김준희


사마르칸드에서 타쉬켄트까지는 약 350km 정도다. 지금처럼 걷는다면 10일만에 주파가 가능한 거리다. 사마르칸드를 지났으니 이제 내 도보여행도 2/3 가량을 완수한 셈, 이제부터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발목이라도 부러지지 않는 이상 쉬는 날은 없다.

타쉬켄트에 도착할 때까지 2개의 큰 도시, 지작과 굴리스탄이 남아있다. 이 도시들은 역사도시도 아니고 볼만한 유적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하루이틀 머물만큼 큰 도시도 아니다. 사마르칸드를 떠나면 역사도시와도 멀어진다. 그러니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걷기만 되는 것이다.


아침식사를 빵으로 때우고 오전 8시에 출발했다. 역시 사마르칸드 시내를 벗어나는데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사마르칸드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라서 그만큼 복잡하다. 지도를 보며 현지인들에게 수차례 길을 물어본 후에야 지작으로 가는 큰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사마르칸드를 벗어나서 조용한 길을 혼자 걷자니 왠지 시원섭섭하다. 한적한 길위에 혼자 서있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지만, 사마르칸드에 대한 미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듯 하다. 그것이 나의 생각을 자꾸 사마르칸드로 이끌고 있다. 몸은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머릿속은 푸른 돔과 울루그벡의 석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티무르 제국의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내가 가장 끌리는 인물이 울루그벡이다. 그건 아마도 울루그벡이 정복자가 아니라, 훌륭한 통치자이자 과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비운의 인물이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봐도 울루그벡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인물이다. 종교가 우선시되던 시절에 과학에 빠져있었던 것이 그의 문제였다. 아니 어쩌면 시대와 종교의 문제였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는 자신의 아들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사마르칸드를 통치하던 도중 55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세계사를 통털어서 이런 인물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울루그벡은 자신이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죽기 전에 깨달았을까. 어쩌면 그 사실을 모른 채 죽는 것이 보다 마음 편했을지 모른다. 그가 죽고나자 그렇게 공을 들여서 만들었던 천문대도 모두 파괴되었다. 사마르칸드에 남아있는 천문대의 터는 그 파괴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울루그벡이 죽으면서 그가 이루어놓은 업적도 모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아들에게 암살당한 통치자 울루그벡

a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울루그벡 천문대 박물관, 울루그벡의 동상

역사도시 사마르칸드 울루그벡 천문대 박물관, 울루그벡의 동상 ⓒ 김준희


a 가로수가 늘어선 포장도로 도로 가운데에 중앙분리대가 보인다.

가로수가 늘어선 포장도로 도로 가운데에 중앙분리대가 보인다. ⓒ 김준희


재능있는 사람이 죽으면 한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굴러갔을까 하는 생각.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그런 식의 상상도 역사를 재미있게 바라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 가정은 중앙아시아의 인물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8세기 중반 서역에서 가장 끗발있는 인물이었던 고선지 장군이 탈라스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티무르가 죽지않고 중국에 쳐들어가서 명나라의 영락제와 대결했다면? 그리고 울루그벡이 암살당하지 않고 천수를 누리면서 사마르칸드를 다스렸다면?

첫번째와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가 않다. 세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라면 글쎄, 아마도 나는 부하라와 사마르칸드에서 푸른 돔을 가진 멋진 건축물들을 더욱 많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한번 생각해본다.

도로 양옆으로는 가로수가 늘어선 포장도로가 계속 펼쳐진다. 도로 한가운데에는 중앙분리대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도처럼 그냥 중앙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로 만든 중앙분리대가 주욱 놓여져 있다. 가끔씩은 유턴하는 차들, 또는 마을에서 도로로 진입하거나 마을로 들어가는 차들을 위해서 중앙분리대가 몇십 미터가량 끊어진 곳도 나온다.

문제는 이렇게 끊어진 곳이 흔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종종 역주행하는 차들을 볼 수 있다. 후진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그대로 도로 위에서 역주행을 한다. 나는 도보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 도로의 왼쪽을 차지한 채 걷고 있다. 달려오는 차를 마주보면서 걷는 것이다.

그런데 중앙분리대가 있는 도로를 그렇게 걷다보면 난데없이 내 바로 뒤에서 경적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었다. 왼쪽 차선인데 내 뒤에서 자동차가 다가오다니? 그런 차들이 모두 역주행하는 차들이다.

맞은편 차선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중앙분리대 때문에 그럴 수가 없으니까, 분리대가 끊어진 장소가 나올 때까지 역주행을 하며 달리는 것이다. 그런 차들은 대부분 커다란 트럭들이다.

큰 트럭이 도로를 역주행하며 마주오는 차들을 피해서 달리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트럭이 내 뒤에서 다가오며 커다랗게 경적을 울리는 것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포장도로에서 역주행하는 차량들

a 도로변의 목화밭 현지인들이 일하고 있다.

도로변의 목화밭 현지인들이 일하고 있다. ⓒ 김준희


하루종일 부지런히 걸어서 5시경에 작은 식당에 들렀다. 식당 주인은 이제 문닫고 집에 가는 길이라서 손님을 받을 수 없단다. 나는 다시 길을 걷지만, 도로변에는 오직 가로수 뿐이다. 이제 한시간 30분 뒤면 해가 진다. 그때까지 잘 곳을 못 찾으면 낭패다. 아무리 야영장비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도로변에서의 야영은 꺼려진다.

설상가상으로 웬 바람이 이렇게 불어오는지.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면서 걸어간다. 해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니까, 서쪽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혹시 비가 쏟아지는 것은 아닐까.

내 발걸음은 더욱 급해진다. 하지만 전방에는 아무것도 없다. 쭉 뻗은 포장도로와 가로수 뿐. 식당이나 아니면 주유소 건물 하나만 있더라도 좋을텐데. 아무튼 걷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다. 시간은 계속 흘러서 6시. 이제 해질때까지 30분이 남았다.

나는 일단 멈춰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작정 걷는 것보다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앞쪽으로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앞이 아니라 양옆을 생각해도 될 것이다. 도로 왼편 나무들 사이로 황무지 멀리 마을 하나가 보인다. 저기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다. 가는 길도 없는데다가 가는 도중에 해가 지면 시쳇말로 빼도 박도 못한다.

도로 오른편은 그래도 조금 사정이 낫다. 오른쪽 나무들 너머로도 마을이 하나 보인다.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약 500미터 정도? 해지기 전에 저 마을로 들어가자. 나는 짐을 모두 풀어서 배낭을 메고 핸드카는 손에 들고 가로수를 뚫고 들어갔다. 황무지 저쪽으로 여러채의 집이 늘어서있다. 거리는 멀지않은데 울퉁불퉁한 황무지라서 걷기가 힘들다.

어쩌면 나는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을로 갔는데 저기에도 잘 곳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면 된다. 야영을 하더라도 마을에서 하는 것이 좀더 안전할 것이다. 마을에는 아무 불빛도 없다. 어슬렁거리는 소 몇마리 뿐. 좀더 걷자 앞에 어린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황무지를 지나서 걸어오고 있는 이 외국인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해질녂에 도착한 작은 마을

a 저녁 늦게 도착한 마을 이 집에서 하룻밤을 잔다

저녁 늦게 도착한 마을 이 집에서 하룻밤을 잔다 ⓒ 김준희


마침내 도착한 마을, 나를 보더니 몇명의 남성들이 모여든다. 그중에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도 있다. 나는 러시아어 회화책과 손짓발짓을 동원해가며 이 마을에서 잘 곳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되묻는다.

"돈 있어? 달러 있어?"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돈 얘기를 꺼내는거 보니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달러는 없고 우즈벡 돈 있어요!"

이렇게 대답하자 자기들끼리 무슨 얘기를 주고받더니 할아버지가 나를 보면서 바로 옆에 있는 집을 가리킨다. 그곳이 이 할아버지가 사는 집인 모양이다. 그곳으로 들어가서 배낭을 내려놓고 평상에 걸터앉으니 긴장이 확 풀린다. 대도시에서야 호텔에 들어가면 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그런 시설이 없으니 매일 저녁마다 잠잘 곳을 찾는 것이 일이다.

걸어오면서 마을에 아무 불빛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전이라서 불이 안들어 온단다. 할아버지는 나를 방 안쪽으로 이끌었다. 할아버지가 상석에 앉고 나를 옆에 앉힌다. 해가 지는가 싶더니 금방 어두워졌다. 이 집의 손자들이 양초를 가져오고 거기에 불을 붙여서 방 바닥에 놓는다.

그렇게 촛불속에서 녹차를 마셨다. 이 할아버지는 무척 재미있는 분이다.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더니 거기 담겨있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흥겨운 음악이 나오자 앉은채로 두 팔을 흔들면서 춤추는 시늉을 하며 날 쳐다본다. 손자들이 그 모습을 보더니 재미있어 하면서 웃는다.

그래서 나도 앉아서 두팔을 위로 올리고 춤추듯이 양옆으로 움직였다. 마치 촛불이 흔들리는 것처럼. 손자들은 나를 보면서 숨넘어갈듯이 웃는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웃기긴 하다. 할아버지는 음악을 멈추더니 이번에는 자기가 직접 노래를 부른다. 어두운 방안을 가득 채우는 노랫소리.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꽤 듣기 좋은 노래다. 노래가 끝나자 할아버지는 날 가리키면서 한국 노래를 해보라고 권한다. 춤이라면 난감하지만 노래는 그렇지 않다. 무슨 노래를 할까. 오늘 하루종일 걸으면서 길위에서 즐거웠던 것을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노래가 떠오른다.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오. 온갖 새들의 노래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할아버지와 아이들은 웃으면서도 박수를 친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 작은 마을에 들어와서 다시 깨닫는다. 이 마을은 '19라지스'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노랫소리와 함께 밤이 저문다.

a 19라지스 마을 나를 재워준 할아버지와 그 손자

19라지스 마을 나를 재워준 할아버지와 그 손자 ⓒ 김준희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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