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여인의 시신을 훼손했을까

[리뷰] 낸시 피커드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등록 2009.02.25 11:19수정 2009.02.2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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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겉표지 ⓒ 영림카디널

▲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겉표지 ⓒ 영림카디널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여러가지 힘든 일이 따르게 마련이다.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친구나 친척이 죽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이 자신의 집 근처에서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다면 어떨까.

 

이럴 경우 정신적 충격은 둘째치고, 사법적으로도 무척 피곤한 절차를 밟게 될 것이 분명하다. '모른다'라고 잡아떼도 수사관들은 쉽게 넘어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살해당한 시신이 특정 장소에 놓여진데에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난감한 상황을 비교적 덜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시신의 신원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이야 과학수사의 기법이 많이 발달해서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여러가지 수단이 있지만, 약 20년 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당시라면 시체의 얼굴을 뭉개고 지문을 제거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신원불명의 변사체'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시체가 발견된 장소가 많은 경찰력을 동원할 수 있는 대도시가 아니라, 몇명의 보안관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면 더욱 그렇다. 예산과 인력의 부족을 핑계로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수많은 미해결사건의 하나로 분류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마을의 사람들은 몇년이 지나고 나면 사건 자체를 잊게 될 것이다.

 

쌓인 눈 속에서 발견되는 여인의 시신

 

낸시 피커드의 2006년 작품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런 식으로 범죄를 무마하려 한다. 작품의 무대는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시골 마을 스몰 플레인스다. 1987년 1월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한 농장의 근처에서 벌거벗은채 얼어붙은 여인의 시신이 발견된다. 강간의 흔적이 있고 범인은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 시신을 눈밭에 버린 것처럼 보인다.

 

마을에서 보안관을 겸하고 있던 농장주인은 이 시신을 오래된 친구인 의사의 병원으로 가져간다. 그러자 의사는 시신의 머리를 비닐봉지로 감싸고나서 야구방망이로 수차례 내려쳐서 얼굴을 망가뜨린다. 마을사람 누구도 이 여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 다음부터 사건의 처리는 일사천리다.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보안관은 신원불명을 이유로 사건수사를 마무리하고, 마을 사람들은 돈을 걷어서 시신의 장례를 치르고 공동묘지에 무덤을 만들어서 묻는다.

 

하지만 사건이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당시 병원에는 이 마을의 고등학생 미치가 숨어서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치는 그 의사의 딸과 몰래 데이트를 하던 도중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미치는 집으로 돌아와서 마을의 판사인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아버지는 미치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날 미치를 먼 곳으로 보낸다. 스몰 플레인스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공부를 계속하게 만든다. 사실상 유일한 목격자인 미치를 마을에서 추방시킨 것이다.

 

마을의 실제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안관, 의사, 판사 세 명이 함께 입을 맞춰서 사건을 은폐시킨거나 마찬가지다. 마을 주민들은 아무도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 하물며 고등학생인 미치는 말할 것도 없다.

 

17년의 시간차이를 오가며 진행되는 구성

 

사건은 한참 뒤인 17년 후에 다시 시작된다. 고향에서 쫓겨나 객지생활을 하던 미치는 그때 이후로 모든 것이 뒤틀려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서 그리고 언제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당시 아버지의 행동을 알고 싶어서 다시 고향을 찾아온다. 미치는 17년 전 사건의 진상을 모두 파악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잃어버린 그 세월을 어떻게 보상받을까?

 

<스몰 플레인의 성녀>는 1987년과 2004년의 공간을 오락가락한다. 17년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세월이다. 얼어죽은 여인은 마을에서 '성녀'로 추앙받고, 오랜만에 나타난 미치는 마을사람들에게 경계의 대상이다.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도 자신을 멀리한다. 아버지는 미치에게 "나는 너를 보호했다. 그 일을 건드리지 말거라"라고 말한다.

 

작가 낸시 피커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을 전개시키는 구성과 함께, 고립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스몰 플레인스를 고립시키는 것은 여름에는 토네이도, 겨울에는 폭설이다. 폭설로 시작된 사건은 토네이도로 종결된다. 눈보라가 사건을 흐릿하게 뒤덮었다면, 폭풍우의 세찬 바람은 모든 거짓을 벗기고 진실이 드러나게 만든다. 그 결과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더라도.

 

어쩌면 오래된 과거를 캐낸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불쾌한 일이다. 인간에게는 감추고 싶은 사연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마을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집요하게 그런 것들을 들쑤시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왕따'를 자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리 감추려해도 결국에는 드러나게 마련인 일도 있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연관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것이다. 오래된 사랑은 17년의 시간도 단숨에 뛰어넘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낸시 피커드 지음 / 한정은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2009.02.25 11:19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낸시 피커드 지음 / 한정은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낸시 피커드 지음, 한정은 옮김,
영림카디널, 2009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낸시 피커드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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