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이 끝나간다, 점점 커지는 아쉬움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기 39] 도보여행 39일(오크훈보바이 -> 미르자바바예프)

등록 2009.03.02 15:14수정 2009.03.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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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이둘라 할아버지의 식당 이곳에서 하룻밤을 잤다.

사이둘라 할아버지의 식당 이곳에서 하룻밤을 잤다. ⓒ 김준희


여기서 타슈켄트까지는 88km가 남았다. 그러니까 놀면서 가더라도 3일이면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금 무리하면 내일밤에도 가능하다. 그런데 굳이 내일밤을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새벽 6시, 일찍 잠에서 깼지만 따뜻한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다. 계속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생각을 하고 있다. 남은 일정은 어떻게 계획을 세울까. 처음 도보여행을 구상했을때만 하더라도 40일만에 타슈켄트에 도착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당시 나의 계획은 하루에 20km 씩, 그러니까 60일이면 1200km를 주파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현지에 도착해서 걷기 시작하니까 가속도가 붙은 모양이다. 대략 40일만에 1200km를 걸었으니, 하루에 30km 씩 걸은 셈이다. 그리고 이제 타슈켄트를 코앞에 두고 있다.

도보여행의 마지막을 즐기면서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을 것이다. 타슈켄트 입성은 모레로 계획하자. 누쿠스에서부터 걸어온 만큼 밤중에 타슈켄트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한낮에 찬란한 태양빛을 받으면서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도보횡단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끝낸 나는 평상의 이불속에서 뛰쳐나왔다. 사이둘라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 오따벡도 어느새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오따벡은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어제 먹다남은 양고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곳에는 전자렌지가 흔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식은 음식을 데울때 전자렌지에 집어넣고 몇분 동안 돌리면 되지만, 여기서는 일일이 가스불을 이용해서 데워야 한다. 지금 오따벡이 가져다준 우유와 양고기도 그렇게 데운 것이다. 이른 아침이라서 별로 입맛은 없지만 걷기 위해서 우유를 마시고 느끼한 양고기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이다. 친절하게 대접해준 사이둘라 할아버지와 오따벡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아마 오늘 점심때쯤에는 '치나스'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같다. 치나스는 시르다르야강 유역에 있는 지역이다. 강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곳에 커다란 민물고기 시장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가면 시장의 풍경도 구경하면서 생선요리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치나스 민물고기 시장을 향해서

a 타슈켄트 가는 길 지평선 까지 뻗어있는 철길

타슈켄트 가는 길 지평선 까지 뻗어있는 철길 ⓒ 김준희


a 타슈켄트 가는 길 지평선까지 뻗어있는 도로

타슈켄트 가는 길 지평선까지 뻗어있는 도로 ⓒ 김준희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행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이 자꾸 생겨난다. 우즈베키스탄을 도보로 횡단하면서, 나는 도보여행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러면서 점점 타슈켄트가 가까워지니까 아쉬움이 든다. 1200km를 혼자서 걸었다는 기쁨보다는, 섭섭한 감정이 더 커진다. 길이 끝났다, 여행도 끝났다. 이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관개사업 때문에 메마른 시르다르야강을 건너서 'TOSHKENT'라고 써진 관문을 통과했다. 타슈켄트 지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도로 한쪽의 좌판에서는 여인들이 말린 생선을 팔고 있다. 치나스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할 즈음, 저 멀리 'CHINOZ'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바자르(시장)가 보인다. 그런데 한눈에 보더라도 분위기가 아주 썰렁하다. 현지인들로 북적이는 그런 장면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떠오른 생각. 아, 오늘은 일요일이구나. 그래서 시장도 문을 안열었거나 아니면 일부 상인들만 나와있을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시장은 텅 비었다. 왜 하필이면 오늘이 일요일일까. 시르다르야 강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들 좀 구경하려고 했더니 그것도 뜻대로 안되는 모양이다.

시장 옆에는 커다란 식당들이 주욱 늘어서있다. 모두 생선요리를 취급하는 곳들이다. 나는 그중에서 한곳으로 들어가 앉았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가족단위로 나와서 생선요리를 먹는 현지인들이 많다.

"생선요리 얼마에요?"

식당의 아주머니는 생선 1kg에 12000숨(1숨은 한화 약 1원)이라고 한다. 냉장고를 열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커다란 생선들을 보여주지만 나는 이것들이 어떤 생선인지 구별이 안된다. 혼자 먹기에 1kg이 적당한 양인지도 잘 분간이 안된다. 그냥 절반인 500g만 요리해 달라고 부탁하고, 샐러드와 녹차도 함께 주문했다. 이렇게 하니까 가격은 모두 합쳐서 7200숨이다.

잠시 앉아있자 정체불명의 생선요리가 나왔다. 특별한 요리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적당한 크기로 생선을 썰어서 기름에 튀긴 것이다. 옆에는 작은 종지에 붉은색 소스가 들어있다.

"뻬레츠(고추)?"

내가 묻자 아주머니는 매운 양념이 아니라 그냥 소스라고 한다. 찍어 먹어보았는데 별다른 맛은 없다. 마치 토마토 케첩을 묽게 만든 것 같은 맛이다.

튀긴 생선으로 점심을 먹고

a 치나스의 민물고기 시장 일요일이라서 썰렁하다

치나스의 민물고기 시장 일요일이라서 썰렁하다 ⓒ 김준희


a 치나스의 민물고기 시장 식당에서 먹은 튀긴 생선요리

치나스의 민물고기 시장 식당에서 먹은 튀긴 생선요리 ⓒ 김준희


우즈베키스탄의 식당에서는 음식을 주문할때 '빨라비나(절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글자그대로 원래 음식양의 절반만 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국집에 가면 '곱배기'를 주문할 수 있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그 반대개념으로 음식을 시킬 수 있다.

볶음밥이나, 고기국, 우즈벡 짬뽕을 주문할때도 마찬가지다. 가격은 절반값보다 약간 비싸다. 그러니까 볶음밥의 원래 가격이 1000숨이라면, 빨라비나는 6-700숨 가량 한다. 음식양이 부담스러울때 또는 몇가지 음식을 함께 맛보고 싶을때 이 빨라비나를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튀긴 생선과 토마토 샐러드를 배부르게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지평선까지 직선으로 뻗어있는 도로를 한참 걸어서 작은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타슈켄트까지 45km란다. 하루종일 걸어서 33km를 온 셈이다.

나는 식당 앞 마당에 있는 탁자에 앉아서 꼬치구이와 맥주를 주문했다. 그러고보니 오늘 하루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치나스에서 잠시 절망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밋밋한 하루였다. 식당 주인인 무하맛은 1959년 생이다. 나랑 띠동갑이다. 그는 여기서 자도 된다면서 자기랑 같이 식당 안에서 자자고 말한다.

9시가 넘자 식당문을 닫기 시작한다. 마당에 있던 탁자와 의자를 안쪽으로 들여놓고, 그날 들어온 돈을 모아서 세기 시작한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나 여기나 마찬가지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즈베키스탄은 지폐의 양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큰 지폐단위가 1,000숨짜리라서, 그날 매출액이 십만 숨이라면 1,000숨짜리 백장을 세어야 한다.

그래도 이건 좀 사정이 좋은 경우다. 500숨, 200숨, 100숨 짜리 지폐가 전부 섞여있다면 그걸 일일히 분류해서 묵직한 지폐다발을 세어야 하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왜 5,000숨이나 10,000숨짜리 지폐를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고액권이 생기면 이곳의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궁금하다.

왜 우즈벡에는 고액권이 없을까

고액권이 없어서 생기는 불편한 점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돈을 세는데 필요이상의 에너지를 낭비해야 한다. 이곳에서 항공권을 발권할때는 무조건 현금으로 해야한다. 타슈켄트에서 여행을 준비할때 그런 장면을 보았다. 여행사 사무실의 항공권 담당 여직원은 발권을 하러 간다면서 쇼핑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나 보았더니 쇼핑백 가득히 지폐다발이 채워져 있었다.

타슈켄트에서 인천까지의 항공권 가격에 맞게 1,000숨짜리와 500숨짜리 지폐를 세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그 돈을 항공사 사무실에 가져가면 그 쪽 직원도 쇼핑백에서 돈을 꺼내서 액수가 맞는지 확인할텐데 그것도 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타슈켄트에 있는 한국인 업체에는 대부분 지폐계수기를 가지고 있다. 여러명이 모여서 한인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몇만 숨이 나오는데 그 돈을 지폐계수기에 넣고 세면 훨씬 간단하다.

현지인들이 신용카드나 수표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타슈켄트 내에서도 신용카드가 통용되는 곳은 극히 제한되어있고, 수표는 구경도 못했다. 그것보다는 고액권을 만드는 것이 좀더 좋지 않을까. 내가 경제에 대해서는 쥐뿔도 아는 것이 없는 신세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비능률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좋을테고, 1,000숨이 가장 큰 지폐단위라는 것은 분명히 비능률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돈을 세는 것이 전부 끝난 모양이다. 무하맛은 자리를 정리하고 한쪽 평상에 드러누웠다. 나도 누웠다. 타슈켄트가 손에 잡힐듯이 가까워졌지만, 여행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하루다.

a 저녁에 들른 식당 이곳에서 하룻밤 묵는다.

저녁에 들른 식당 이곳에서 하룻밤 묵는다. ⓒ 김준희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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