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나스의 민물고기 시장식당에서 먹은 튀긴 생선요리
김준희
우즈베키스탄의 식당에서는 음식을 주문할때 '빨라비나(절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글자그대로 원래 음식양의 절반만 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국집에 가면 '곱배기'를 주문할 수 있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그 반대개념으로 음식을 시킬 수 있다.
볶음밥이나, 고기국, 우즈벡 짬뽕을 주문할때도 마찬가지다. 가격은 절반값보다 약간 비싸다. 그러니까 볶음밥의 원래 가격이 1000숨이라면, 빨라비나는 6-700숨 가량 한다. 음식양이 부담스러울때 또는 몇가지 음식을 함께 맛보고 싶을때 이 빨라비나를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튀긴 생선과 토마토 샐러드를 배부르게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지평선까지 직선으로 뻗어있는 도로를 한참 걸어서 작은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타슈켄트까지 45km란다. 하루종일 걸어서 33km를 온 셈이다.
나는 식당 앞 마당에 있는 탁자에 앉아서 꼬치구이와 맥주를 주문했다. 그러고보니 오늘 하루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치나스에서 잠시 절망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밋밋한 하루였다. 식당 주인인 무하맛은 1959년 생이다. 나랑 띠동갑이다. 그는 여기서 자도 된다면서 자기랑 같이 식당 안에서 자자고 말한다.
9시가 넘자 식당문을 닫기 시작한다. 마당에 있던 탁자와 의자를 안쪽으로 들여놓고, 그날 들어온 돈을 모아서 세기 시작한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나 여기나 마찬가지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즈베키스탄은 지폐의 양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큰 지폐단위가 1,000숨짜리라서, 그날 매출액이 십만 숨이라면 1,000숨짜리 백장을 세어야 한다.
그래도 이건 좀 사정이 좋은 경우다. 500숨, 200숨, 100숨 짜리 지폐가 전부 섞여있다면 그걸 일일히 분류해서 묵직한 지폐다발을 세어야 하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왜 5,000숨이나 10,000숨짜리 지폐를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고액권이 생기면 이곳의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궁금하다.
왜 우즈벡에는 고액권이 없을까고액권이 없어서 생기는 불편한 점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돈을 세는데 필요이상의 에너지를 낭비해야 한다. 이곳에서 항공권을 발권할때는 무조건 현금으로 해야한다. 타슈켄트에서 여행을 준비할때 그런 장면을 보았다. 여행사 사무실의 항공권 담당 여직원은 발권을 하러 간다면서 쇼핑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나 보았더니 쇼핑백 가득히 지폐다발이 채워져 있었다.
타슈켄트에서 인천까지의 항공권 가격에 맞게 1,000숨짜리와 500숨짜리 지폐를 세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그 돈을 항공사 사무실에 가져가면 그 쪽 직원도 쇼핑백에서 돈을 꺼내서 액수가 맞는지 확인할텐데 그것도 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타슈켄트에 있는 한국인 업체에는 대부분 지폐계수기를 가지고 있다. 여러명이 모여서 한인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몇만 숨이 나오는데 그 돈을 지폐계수기에 넣고 세면 훨씬 간단하다.
현지인들이 신용카드나 수표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타슈켄트 내에서도 신용카드가 통용되는 곳은 극히 제한되어있고, 수표는 구경도 못했다. 그것보다는 고액권을 만드는 것이 좀더 좋지 않을까. 내가 경제에 대해서는 쥐뿔도 아는 것이 없는 신세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비능률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좋을테고, 1,000숨이 가장 큰 지폐단위라는 것은 분명히 비능률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돈을 세는 것이 전부 끝난 모양이다. 무하맛은 자리를 정리하고 한쪽 평상에 드러누웠다. 나도 누웠다. 타슈켄트가 손에 잡힐듯이 가까워졌지만, 여행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