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바로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이 바로 만화

[살가운 만화 43] 오자와 마리, <민들레 솜털>

등록 2009.03.06 18:11수정 2009.03.0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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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민들레 솜털 (1권∼ )

- 글ㆍ그림 : 오자와 마리

- 옮긴이 : hiyoko

- 펴낸곳 : 북박스 (2008.10.24.∼ )

- 책값 : 한 권에 3500원씩

 

 아귀힘이 세어지며 한손으로 책을 잡아채어 입으로 가져가는 아기는, 머잖아 책은 '먹을거리'가 아닌 '읽을거리'임을 알아채리라 믿습니다. 다만, 아직은 손수건이며 옷이며 연필이며 밥그릇이며 숟가락이며 오로지 입으로만 가져갑니다. 저도 살아 보겠노라 발버둥을 치는 셈인지, 몸부림을 치는 셈인지 모릅니다만, 아기니까, 아기라서 그렇다고 느낍니다.

 

 아기를 안고 아기랑 함께 보다가 지루해져서 바닥에 팽개쳐 둔 만화책을 아기가 꼬물꼬물 기어가다가는 덥석 집어들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으로 덥석 뭅니다. 이빨도 없는 주제에 우걱우걱 씹기를 좋아합니다. 그 만화책은 '아빠며 엄마며 재미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아기 침이 범벅이 되어도 내버려 둡니다. 책한테 더없이 미안한 노릇이지만, 아기가 즐겁게 놀이감으로 삼으니, 이런 대로 보람이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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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아기. 아기야, 책은 밥이 아니라 책이란다. ⓒ 최종규

책 먹는 아기. 아기야, 책은 밥이 아니라 책이란다. ⓒ 최종규

 

 지난 2월 18일 서울 나들이를 하며 들른 만화책방에서 《민들레 솜털》이라는 새로 나온 만화 1권과 2권을 장만했습니다. 이 만화책은 저로서는 재미있게 여기는 터라 아기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으면서 옆지기한테도 읽어 보라 건넵니다. 옆지기는 그다지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았다면서, 그저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빠랑 엄마랑 좋아하는 만화가 다를 테지' 하면서 서운한 마음을 달랩니다. 그냥 그저 그럴 뿐인가, 너무 뻔하게 흐르는 줄거리인가, 그림결이 썩 내키지 않은가 …… 여러모로 헤아려 보면서, '어쩌면 나나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만 좋아할는지 모르겠구나' 싶은 한편, 《민들레 솜털》을 그린 분이 좀더 발돋움할 앞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어떤 문화며 예술이며 공연이며 마찬가지이지만, 한 자리에 머무는 법이란 없습니다. 한 가지 틀에 매여 있으란 법은 없습니다. 그예 똑같이 흘러가는 글과 그림과 사진도 많으나, 나날이 조금씩 새로워지면서 거듭나는 글과 그림과 사진도 많아요. 만화 《민들레 솜털》을 그린 오자와 마리 님 책을 여러 해에 걸쳐 여러 작품을 보아 오면서, 이분은 이분 나름대로 남다른 그림결을 잘 간직하는 가운데, 이분 아니면 펼쳐 보일 수 없는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낸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크게 돋보이거나 널리 도드라지지는 않습니다만, 언제나 한결같은 자리에서 꾸준함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려 하고 있어요.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는, 아주 수수한 동네사람만이 '오자와 마리' 님 만화에 나오는 이들이고, 이들은 돈이 많거나 이름이 높거나 무언가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 골목길을 거닐면서 으레 스쳐 지나가는 동네사람이 만화에 나오고, 역사며 문학이며 학문이며 어느 자리에서 제 이름 석 자를 돋을새김할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이웃사람이 만화에 나옵니다. 어쩌면, 로또복권 같은 데에 뽑히지도 않으나 이런 복권을 아예 사지도 않는 털털한 사람들이 만화에 나온다고 할까요. 앞에 있지 않으나 뒤에 있지도 않고, 왼쪽에 있지 않으나 오른쪽에 있지도 않은 사람, 얼핏 보면 냄새도 맛도 빛깔도 없으리라 여길 수 있습니다만, 이러한 모습과 매무새야말로 고즈넉한 냄새요 맛이요 빛깔이라 할 만한 사람이 만화에 나온다고 할 수 있어요.

 

.. 그때 옛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학교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민들레를 따서 입원 중이던 엄마 병문안 갔을 때, 창밖을 바라보며 엄마가 '언젠가 토마가 어른이 되면 저 민들레 솜털처럼 자유로운 세상으로 날아가겠지'라고 했던 말이. "난 안 갈 거야. 계속 엄마 곁에 있을 거니까." "가도 돼.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토마가 원하는 곳이라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꽃을 피우는 걸 엄마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토마가 어디 있든, 엄마는 언제나 토마를 응원할 거야. 그걸 잊지 마." ..  (2권 1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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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1권과 2권 겉그림은 한 이야기 흐름입니다. 주인공 하루키가 형한테 눈사람 토끼를 선물로 주는 모습입니다. ⓒ 북박스

겉그림. 1권과 2권 겉그림은 한 이야기 흐름입니다. 주인공 하루키가 형한테 눈사람 토끼를 선물로 주는 모습입니다. ⓒ 북박스

 

 오자와 마리 님 다른 만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완전판 8권으로 마무리)을 한 해에 걸쳐 보는 동안(1권부터 8권까지 모두 나오는 데에 꼭 한 해가 걸려서), 처음에는 '아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음악이라며, 그 음악을 언제 들려주려고 하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5권 6권 7권째 넘기면서, 그리고 마지막 8권을 덮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란, '세상에서 가장 흔한' 노래이며, '세상에서 가장 손쉽게' 듣는 노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아름다움'이 깃든 노래라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임을, 믿음은 믿음일 뿐임을, 나눔은 나눔일 뿐임을 이야기하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라고 할까요. 겉꾸밈이나 겉치레가 아니라, 우리 사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래요 춤이요 글이요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라고 할까요. 멀디먼 나라에서 찾을 즐거움이 아닌, 바로 우리가 선 이 자리에서 즐거움을 찾자고 손을 내미는 오자와 마리 님 만화라고 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짝사랑해도 사랑이요, 힘을 내어 털어놓아도 사랑이며, 털어놓았는데 그이가 손사래를 쳐도 사랑입니다. 돈 잘 버는 일자리를 얻든, 돈 못 버는 일자리를 얻든, 제 땀을 기꺼이 바칠 만한 일자리를 얻으면 그때부터 누구나 제 삶자락을 아름다이 가꿀 수 있습니다. 바깥밥을 사먹어야만 맛이 아니며 선물이 아니며 잔치밥이 아닙니다. 집에서 된장찌개나 나물무침으로 차린 단출한 밥상으로도 얼마든지 맛이요 선물이요 잔치밥입니다. 백만 원짜리 옷만 따뜻하지 않고, 손뜨개 옷 한 벌도 따뜻합니다. 몇 만 원짜리 십자가를 벽에 걸어 두어야 하느님을 모실 수 있지 않고, 나무토막 하나를 서툴게 깎고 다듬어 벽에 걸어 두어도 하느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삶이 바로 노래이고 노래가 바로 만화임을, 삶이 바로 기쁨이요 기쁨이 바로 만화임을, 삶이 바로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이 바로 만화임을, 부드러운 붓끝으로 보여주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오자와 마리 님 다른 만화책에도 하나둘 손을 뻗치게 됩니다.

 

 《니코니코 일기》라든지 《퐁퐁》이라든지,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나온 《민들레 솜털》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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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마리 님 다른 만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 서울문화사

오자와 마리 님 다른 만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 서울문화사

.. "하루키, 밥 안 먹으면 천국에 엄마가 슬퍼한다? 엄마는 하루키가 이 세상에 태어나길 그 누구보다 기다렸단 말이야." "정말?" "그럼! 아, 맞다 그게 어딨더라? 아, 여기 있다! 이것 봐, 하루키. 이건 하루키가 꼭 지킬 걸 엄마가 써 놓은 노트야. 지금부터 형이 엄마 대신 읽어 줄 테니, 엄마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들어. '밥은 남기지 마세요♡ 엄마는 하루키가, 음, 하루키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있답니다.'라는데? 알았어, 하루키?" "응! 알았어! 잘 먹겠슘다!" …… "형아." "응?" "오늘도 읽어 줄 거야? 엄마 노트?" "그래. 음, 에헴, '밤늦게 자지 말 것.'" "그게 다야?" "음, '일본 속담에 잘 자는 아이는 쑥쑥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동안 성장호르몬이 활발히 움직여서 뼈와 근육이……'라는데?" "……(쌔근)" ..  (1권 59∼63쪽)

 

 방이 갑자기 조용해져서 아기 쪽을 바라봅니다. 딸랑이를 손에 쥐고 입으로 씹으면서 꿍얼꿍얼대던 아기가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서.

 

 아기는 노란 베개에 새겨진 곰돌이한테 잠깐 꽂혀 있다가 바닥에 굴러다디던 종이조각 하나를 씹고 있습니다. 그런데 낯빛이 좀 얄딱구리합니다. 기저귀를 만져 보니 물컹. 똥을 누었구나. 똥을 누고 조용해진 셈이로군.

 

 물을 덥혀 엉덩이와 잠지를 닦아 주고 새 기저귀싸개와 기저귀를 댑니다. 이제 또 한 번 기저귀 빨래를 해야겠군요. 아직 하늘에 해가 걸려 있으니, 저 햇볕에 기저귀싸개와 기저귀가 보송보송 마를 수 있도록. 아침부터 바람이 무척 찬데, 너무 늦지 않게 옆지기랑 아기랑 다 함께 바깥마실도 잠깐 다녀와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한테 아름다울 노래를 찾아서.

덧붙이는 글 | - <민들레 솜털>은 이제까지 2권이 나왔고, 앞으로 새로 더 나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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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6 18:1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 <민들레 솜털>은 이제까지 2권이 나왔고, 앞으로 새로 더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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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솜털 1

오자와 마리 지음,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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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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