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밸런타인 데이?

여성 이주노동자에 대한 소외의 고착화를 보며

등록 2009.03.09 10:34수정 2009.03.0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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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모님한테 꽃 선물했어요?"
"꽃, 무슨 꽃?"
"오늘 꽃 선물하는 날이잖아요?"
"오늘이 무슨 날인데요?"
"세계 여성의 날."
"아니, 그게 꽃 선물하고 뭔 상관이에요? 밸런타인 데이도 아니고."
"베트남에선 꽃하고 선물 많이 하는데…."
"아, 그래요, 그럼 오늘 선물 받으셔야겠네요. 한국에선 그런 거 하는지 모르겠는데…."
"베트남은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고, 10월 20일은 베트남 여성의 날이에요. 여자들은 모여서 놀기도 하고, 선물도 받아요."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1만5천여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특히 세계여성의 날은 일하는 여성들의 안전한 노동환경, 단결권 인정을 내세운 날로서 여성 인권신장의 기폭제가 된 날로, 세계 각 국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다양한 기념행사를 펼친다. 기념일이 제정된 이유와 오늘날까지도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살피면 상당히 심각한 날인 셈이다.  

그런데 이 날이 나라마다 약간씩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같이 하며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과 나눈 대화에서, 여성의 날을 여성의 정치, 경제, 사회권적인 의미보다는, '어머니 날' 혹은 '밸런타인데이'처럼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옆에 있던 인도네시아인에게 인도네시아도 그런 날이 있는지 물어봤다. 12월 22일이 '어머니 날'이라고 했다. '어머니 날'은 여성들이 요리와 육아 등의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는 날로 국가 기념일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세계 여성의 날이 있다는 것과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이들보다는, 여성의 날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아무리 많은 변화가 있다 해도, 전업주부든 직장여성이든 여전히 가부장적인 틀 속에서 아내로, 며느리로, 어머니로, 직장여성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가운데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여성이라는 이유 외에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결 무거운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는 현재 70만 정도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중 35% 이상을 여성으로 본다. 아시아 지역 이주여성이 전체 아시아 이주민의 65∼75%라는 통계에 비추어 보면 우리 사회의 이주여성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시아 타 지역의 절반 정도다. 


문제는 여성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이주노동자에 비해 소수라는 이유 외에도, 최근의 다문화 열풍 속에서 결혼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사회의 관심을 사지 못하는 '소외의 고착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결혼이주여성들에 비하면 한참 후순위 관심사다. 올해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25회 한국여성대회만 놓고 봐도 그렇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대회에 이주여성과 관련한 부스 제목이 "결혼이주여성과 완벽한 이웃이 되는 법"이다. 우리사회에 결혼이주여성이 15만 명이라고 한다. 해당 부스를 운영한 시민단체에서는 결혼이주여성과 관련된 통계 자료를 홍보하고, 지난 1월 31일 대구에서 있었던 가정폭력 피해 캄보디아 결혼이주여성 구명을 위한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임을 알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한 이번 행사는 분명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세계여성의 날에, 결혼 이주여성만이 아닌, '여성 이주노동자'의 소외와 차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 여성의 날 #여성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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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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