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가 선택한 '자살'

실직과 구직난 속에서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

등록 2009.03.12 17:46수정 2009.03.1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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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고인이 죽음을 앞두고 A4 용지에 짧게 적은 글 일부 ⓒ 고기복

▲ 유서 고인이 죽음을 앞두고 A4 용지에 짧게 적은 글 일부 ⓒ 고기복
 

"멀리 있어 생각나는 할아버지와 부모님, 저를 낳아 키워주시고 가르쳐 주셨는데 저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인생에는 시련이 많이 있는데 저는 극복할 수 없어요. 저로 인해 슬퍼하지 마시고, 제가 이 세상을 떠나며 소원이 있다면, 화장을 하여 (유골을) 절에 놓아주고..."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기로 작정한 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지만, 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오늘(12일) 오전,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가 한 장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망 추정 시간은 자정과 새벽 1시 사이라고 했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위와 같이 적혀 있었다.

 

자살을 작심하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당연지사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었음을 알 수 있는 고인의 유서를 보며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더 참지'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었다.

 

고인이 유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생에는 많은 시련이 있다. 그러나 그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 고인이 가졌던 문제는 무엇일까? 단정하기 이르지만, 그가 두 달 가까이 실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는 지인들의 설명이다.

 

주위 사람들에 의하면, 사망하기 전까지 평택과 안산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매우 애썼다고 한다. 고인은 실직하기 전까지는 한 업체에서 3년간 성실하게 일한 것을 인정받아 재계약을 맺고 휴가차 베트남에 한 달간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데 경제 불황 속에서 조업 단축을 결정한 회사에서는 그가 입국한 지 한 달 정도 지나 고인을 해고했단다.

 

고인은 갑작스레 해고를 당하자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까지 친구가 일하고 있는 회사 기숙사를 이용했었다고 한다. 매일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던 고인은 종종 "미치겠다.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기한인 두 달이 다 지나가도록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겼을 것이다.

 

세상이 어렵다 어렵다 한다. 그 와중에 경제난으로 자살하는 사람들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경제난에 따른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에 대한 전반적인 구조 분석을 통한 사회 안정망 확충이 필요하다.

 

어젯밤에 자살한 고인 역시 '2개월 이내 구직기간'라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경제난 속에서 2개월이라는 기한을 한정하고 있는 현 제도가 개정되었었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함께 남는다.

2009.03.12 17:46 ⓒ 2009 OhmyNews
#자살 #구직기한 #이주노동자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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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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