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 효과, 연예인만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고용허가제 구직기한 제한 개정해야

등록 2009.03.16 14:39수정 2009.03.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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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자살 소식이 부쩍 늘었다. 그 중 '당신이 최고야'라는 히트곡을 낸 바 있는 트로트가수 이창용과, 욕하면서 본다는 인기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바 있는 신인배우 장자연의 자살은 연예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은 흔히 일반인의 자살 도미노로 이어지는 '베르테르 효과'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기 때문에 상당한 우려를 낳고 있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다른 선택이 없다고 생각할 때, 앞서 자살한 사람의 선택을 따라하는 모방 자살 현상인 '베르테르 효과'는 영화배우 이은주나, 탤런트 정다빈의 자살 직후 여성 자살자 수가 전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급증했던 것들을 통해 이미 검증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베르테르 효과가 유명 연예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2003년 11월 11일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다나카가 성남 단대역 지하철에 투신 자살한 직후, 십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연이어 자살을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던 적이 있다. 다나카에 이어 방글라데시 출신 비꾸는 공장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고,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는 바다에 투신 자살했고, 우즈베키스탄 브르혼은 공장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부의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되자 직장을 잃고 상실감과 좌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나카 이후 줄지어 자살을 택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인 다나카가 자살하던 날 밤,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그의 컨테이너 숙소에서 고인의 친구들과 함께 유품들을 살폈던 적이 있다. 사람이 살았었다는 흔적이라곤 방 안 구석구석에 흩어진 선불제 전화카드 정도였고, 그의 죽음을 예견할 만한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이거 사람들 죽어나가는 신호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는지 답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열흘도 안 가 비꾸의 자살 소식이 들렸고, 이어 닷새 만에 또 다른 소식이 연이어 들려 왔었다. 그러한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얼마 전 그와 같은 기억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경각심을 심어 준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발생한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홍(Hong, 32)의 자살이었다. 홍은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합법 체류자였다.

 

그는 경제 불황 속에서 회사가 조업 단축을 하며 갑자기 해고되자, 친구가 일하고 있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매우 애썼다고 한다. 자살하기 전까지 평택과 안산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매일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던 홍은 종종 "미치겠다.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결국 고인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기한인 두 달이 다 지나가도록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자살에 앞서 유서를 다음과 같이 남겼다.

 

"멀리 있어 생각나는 할아버지와 부모님, 저를 낳아 키워주시고 가르쳐 주셨는데 저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인생에는 시련이 많이 있는데 저는 극복할 수 없어요…."

 

홍 같은 경우 '2개월 이내 구직'라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2개월이라는 기한을 한정하고 있는 현 제도가 경제난 속에서 개정되었었다면 천하보다 귀하다는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남는 이유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그 와중에 자살하는 사람들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경제난에 따른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에 대한 전반적인 구조 분석을 통한 사회 안정망 확충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구직 기한 제한 등과 같은 조항의 시급한 개정만이 베르테르 효과를 차단하는 지름길이다.

덧붙이는 글 | 홍의 시신은 현재 유해송환 절차를 밝고 있다. 

2009.03.16 14:39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홍의 시신은 현재 유해송환 절차를 밝고 있다. 
#자살 #이주노동자 #베르테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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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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