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73)

― ‘생협의 방향’, ‘부채의 짐’, ‘배의 요동’ 다듬기

등록 2009.03.15 20:03수정 2009.03.1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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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생협의 방향

 

.. 가난하지만 서로 돕고 협동하는 세상, 스스로의 삶을 자치적으로 해결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 또 이것이 생협의 방향이라 생각한다 ..  《시민의신문,KYC-도시 속 희망공동체 11곳》(시금치,2005) 39쪽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산다고, 같은 말이면 좀더 살갑고 알뜰하게 느껴지는 말을 찾아서 쓰면 좋습니다. "서로 돕고 협동하는 세상"이라 했는데 '협동(協同)'은 '돕다'를 한자로 적은 말일 뿐이에요. 그러니 "서로 돕는 세상"이라고 해야 알맞습니다. "스스로의 삶을 자치적(自治的)으로 해결(解決)하는"이라 했지요? 여기서는 '스스로'와 '자치적'이 겹칩니다. 말도 좀 어설프고요.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가는"쯤으로 손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이것이 생협의 방향이라 생각한다

 │

 │→ 이것이 생협이 갈 길이라 생각한다

 │→ 이것이 생협이 갈 곳이라 생각한다

 │→ 이 길로 생협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생협은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 생협은 이렇게 걸어가야지 싶다

 │→ 생협은 이 길로 가 주면 좋겠다

 └ …

 

 이 보기글에서는 '방향(方向)'이라는 말을 풀어내면서 생각해 봅니다. 이 낱말을 그대로 둔다면 토씨 '-의'를 떨어뜨리기 힘들어요. 먼저 '갈 길'과 '갈 곳'으로 풀어 봅니다. 다음으로 '가다-나아가다-걸어가다'를 넣어서 풉니다.

 

 나아갈 곳이거나, 걸어갈 길이거나,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생협이 나아갈 곳을 찾거나, 생협이 걸어갈 길을 되짚거나, 생협이 바라보는 자리를 추스릅니다. 생협은 생협대로 올바른 길로 나아가면 좋고, 우리 삶은 우리 삶대로 올바른 데로 나아가면 좋으며, 우리 말은 우리 말대로 아름다운 곳으로 뻗어나가면 좋습니다.

 

 

ㄴ. 부채의 짐

 

.. 더구나 칠레는 정부ㆍ상업 차원의 막중한 부채의 짐을 져야만 했다 ..  《필립 J.오브라이언/최선우 옮김-칠레혁명과 인민연합》(사계절,1987) 70쪽

 

 "정부ㆍ상업 차원(次元)의"는 꾸밈말처럼 쓰였습니다만, "정부ㆍ상업 차원에서"나 "정부ㆍ상업 모두"나 "정부와 상업 모두"나 "정부며 상업이며"로 고쳐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막중(莫重)한'은 '몹시 큰(많은)'이나 '엄청난'이나 '어마어마한'으로 다듬어 줍니다.

 

 ┌ 막중한 부채의 짐을 지다

 │

 │→ 어마어마한 빚을 지다

 │→ 크나큰 빚더미를 안다

 │→ 엄청난 빚에 허덕이다

 │→ 커다란 빚더미에 짓눌리다

 └ …

 

 우리 말은 '빚'입니다. '부채(負債)'는 우리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말 '부채'는 팔랑팔랑 흔들면서 바람을 일으키는 연장을 가리켜요. 보기글에서는 "빚을 져야만 했다"로 풀면 되는데, 작지 않은 빚인 만큼 '빚더미'라는 낱말로 담아내도 됩니다. "빚에 허덕이다"나 "빚에 짓눌리다"로 풀어내도 어울립니다.

 

 

ㄷ. 배의 요동

 

.. 배로 두 시간 남짓 걸렸는데 강풍으로 배의 요동이 대단했다 ..  《이진희/이규수 옮김-해협,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 233쪽

 

 '강풍(强風)'은 '센바람'으로 고쳐 줍니다.

 

 ┌ 요동(搖動) : 흔들리어 움직임

 │   - 감정의 요동 / 요동이 심하다 / 아무런 요동도 하지 않다 /

 │     배가 좌우로 심하게 요동했다

 ├ 배의 요동이 대단했다

 │→ 배는 대단히 요동쳤다

 │→ 배는 대단히 흔들렸다

 └ …

 

 국어사전에서 '요동'을 찾아보면 "흔들리어 움직임"이라고 풀이가 나옵니다. 그러면 '흔들리다'란 무엇이고, '움직이다'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서 다시 '흔들리다'를 찾아보면, "상하나 좌우 또는 앞뒤로 자꾸 움직이다"를 뜻한다고 나옵니다. '움직이다'는 "멈추어 있던 자세나 자리가 바뀌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 말풀이를 살피면 '흔들리다' 뜻풀이는 올바르지 않을 뿐더러, '요동'을 풀이하면서 적은 "흔들리어 움직임" 또한 올바르지 않습니다.

 

 ┌ 센바람이 불어 배는 몹시 흔들렸다

 ├ 센바람 때문에 배는 몹시 기우뚱거렸다

 └ …

 

 말풀이가 올바르지 않게 적혀 있는 국어사전을 살피면서 말을 헤아리고 말뜻을 익힐 수 없다고 느끼면서, 이러한 국어사전 잘잘못을 꼬집거나 나무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집니다. 이러한 잘잘못을 짚어 주었을 때, 국어사전 엮는이들은 얼마나 바로잡아 줄는지 또한 궁금합니다.

 

 그러나 국어사전 말풀이가 엉터리로 되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말을 잘못 하고 글을 잘못 쓰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국어사전을 거의 뒤적이지 않을 뿐더러, 국어사전을 뒤적여 보면서도 우리 말과 글을 찬찬히 곱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어사전은 국어사전대로 막나가는 한편, 글쓰고 말하는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함부로 살아간다고 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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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20:03ⓒ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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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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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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