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70) 묘하다 妙

[우리 말에 마음쓰기 70] '묘한 냄새', '묘한 행복감', '묘한 행동' 다듬기

등록 2009.06.03 11:11수정 2009.06.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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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묘한 냄새

 

.. 이윽고 오븐에서 빵과 생선이 함께 구워지는 묘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  《모이치 구미코/김나은 옮김-장미마을의 초승달 빵집》(한림출판사,2006) 81쪽

 

 "냄새가 풍기기 시작(始作)했습니다"는 "냄새가 풍겨 옵니다"나 "냄새가 풍깁니다"로 고쳐 줍니다.

 

 ┌ 묘한 냄새

 │

 │→ 야릇한 냄새

 │→ 알쏭달쏭한

 │→ 재미난 냄새

 │→ 놀라운 냄새

 │→ 이도 저도 아닌 냄새

 └ …

 

 잘 어울리지 않을 듯 보이는 두 가지가 섞인 냄새라면 '야릇'하거나 '알쏭달쏭'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냄새가 처음 맡는 냄새이면서 그럭저럭 괜찮다고 하면 '재미난' 냄새일 수 있어요. 뜻밖으로 괜찮은 냄새라면 '놀라운' 냄새이거나 '대단한' 냄새이겠지요. 그냥 뒤죽박죽인 냄새라면 '뒤죽박죽' 냄새나 '이도 저도 아닌' 냄새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냄새인지 모른다고 하면 '알 수 없는' 냄새라 해도 돼요. 잘 모르겠지만 괜찮다면 '알 수 없지만 괜찮은' 냄새라 하고요.

 

 

ㄴ. 묘한 행복감

 

.. 단지 그것뿐인데, 왠지 이제서야 나도 지역민의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묘한 행복감마저 들었다 ..  《후쿠오카 켄세이/김경인 옮김-즐거운 불편》(달팽이,2004) 86쪽

 

 '단지(但只)'는 '다만'이나 '그저'로 다듬습니다. "지역민(地域民)의 한 사람이"는 "지역민 가운데 한 사람이"나 "지역사람이"로 손질합니다. "행복감(幸福感)마저 들었다"보다는 "행복했다"나 "즐거웠다"로 손봅니다.

 

 ┌ 묘한 행복감마저 들었다

 │

 │→ 야릇하게 즐겁기까지 했다

 │→ 즐거움을 슬그머니 느꼈다

 │→ 알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 어렴풋이 기쁨을 느꼈다

 │→ 기쁨을 뿌듯하게 느꼈다

 └ …

 

 '무엇인지 알 수 없는'을 넣어 주어도 괜찮습니다. '시나브로'나 '슬그머니'나 '살며시'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또는, "즐거움을 소담스레 느꼈다"나 "즐거움을 살포시 느꼈다"나 "즐거움을 가만히 느꼈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즐거움이나 기쁨은 '야릇하게' 느끼기도 하며, '짜릿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어쩌면 '뿌듯하게' 느낀 즐거움이었는지 모릅니다. '마음 따뜻하게' 느낀 기쁨이었는지 모릅니다. '가슴 벅차게' 느낀 기쁨이었을 수 있고요.

 

 보기글을 통째로 손질해서, "그저 그것뿐이었는데, 왠지 이제서야 나도 이 동네 사람이 된 듯하면서 알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처럼 적어 보아도 괜찮습니다.

 

 

ㄷ. 묘한 행동을 할 것 같으면

 

.. 아돌프를 감시하도록. 묘한 행동을 할 것 같으면 죽여도 상관없어 ..  《우라사와 나오키/윤영의 옮김-플루토 (3)》(서울문화사,2007) 116쪽

 

 '감시(監視)하도록'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잘 지켜보도록"이나 "잘 살피도록"으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죽여도 상관(相關)없어"는 "죽여도 돼"나 "죽여도 좋아"로 손질합니다.

 

 ┌ 묘한 행동을 할 것 같으면

 │

 │→ 수상한 짓을 할 것 같으면

 │→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 엉뚱한 짓을 하면

 │→ 말썽을 일으키면

 │→ 말썽을 부리면

 └ …

 

 일본 만화를 한국말로 옮기며 드러난 말투입니다. 만화를 보다가 그냥 넘어갈 수 있고, 만화를 볼 때에는 줄거리나 그림결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거나 저러거나, 이런 번역말 한 가지 두 가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이 만화책을 즐길 이 나라 아이들 말투는 적잖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대충 옮기고 만다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가까이하는 만화 말투에 시나브로 물들거나 길들어 버립니다. 만화가 우리 넋과 생각을 얼마나 확 빨아들이는데요. 저도 어릴 적에 만화를 많이 보며 느꼈습니다만, 만화에 나오는 말마디는 알게 모르게 제 입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좀더 꼼꼼히 들여다보고 살피고 가누고 가다듬고 손질하는 만화 말투라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살갑고 싱그럽고 넉넉하고 따뜻한 말마디에 익숙하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에 쓰인 "묘한 행동"은 어떠할까 생각해 봅니다. 이와 같은 말투는 아이들한테 어떻게 다가갈까요. 이처럼 옮겨적은 말투는 이 만화를 즐길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한테 어떻게 스며들까요. 슬기롭게? 기쁘게? 즐겁게? 싱그럽게? 얄딱구리하게? 짓궂게? 안타깝게? 슬프게?

 

 ┌ 엉뚱한 짓을 할라치면 죽여도 돼

 ├ 말썽을 일으킬 듯하면 죽여 없애 버려

 ├ 허튼 짓을 하겠다 싶으면 죽여도 괜찮아

 ├ 쓸데없는 짓을 할 듯하면 죽여 버리라고

 ├ 바보스런 짓을 한다 싶으면 죽여

 └ …

 

 낱말 하나 말투 하나 곰곰이 되씹어 줍니다. 가장 알맞춤하다 싶은 낱말과 말투는 무엇인가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꼭 한 마디로 마무리해서 넣어 줍니다. 내 모든 슬기를 담아낸 한 마디를 찾고, 내 모든 사랑을 싣는 두 마디를 살피며, 내 모든 믿음을 풀어낸 세 마디를 보듬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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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11:11ⓒ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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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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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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