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11)

'예의 나폴리사람들은' 다듬기

등록 2009.06.15 10:55수정 2009.06.1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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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의 나폴리 사람들은

 

.. 신랄한 비웃음소리, 끊임없는 삿대질, 예의 나폴리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는 혓바닥을 가진 듯이 그렇게 말도 잘하고 모두들 달변가이다 ..  <이탈리아 이야기>(막심 고리끼/이강은 옮김,이성과현실,1991) 15쪽

 

 '신랄(辛辣)한'은 '따가운'이나 '매서운'으로 손봅니다. 보기글 뒤쪽에 "말도 잘하고 모두들 달변가(達辯家)이다" 하고 나오는데 겹말이 되었으니, "모두들 말도 잘한다"쯤으로 고쳐씁니다.

 

 ┌ 예(例)

 │  (1) 본보기가 될 만한 사물. '보기'로 순화

 │   - 전형적인 예 / 예를 보이다 / 예를 들어 설명하다

 │  (2) ('예의' 꼴로 쓰여) 이미 잘 알고 있는 바를 가리킬 때 쓰는 말

 │   - 그 사람 역시 예의 그 문제로 고민 중이에요 /

 │     예의 그 쾌활함은 어디 가고 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  (3) 관례나 의례를 통틀어 이르는 말

 │

 ├ 예의 나폴리사람들은

 │→ 바로 그 나폴리사람들은

 │→ 언제나처럼 그 나폴리사람들은

 │→ 누구나 알듯 그 나폴리사람들은

 │→ 흔히 보여지듯 그 나폴리사람들은

 └ …

 

 어떤 '보기'를 들거나 가리킬 때 흔히 '예'를 든다고 이야기합니다. "보기를 들어"처럼 말하는 분이 있으나, 나날이 "예를 들어"로 바뀌고 있으며, 교과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은 으레 '예'만을 이야기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무래도, 국어사전 말풀이에서 '例'를 '보기'로 고쳐쓰도록 적어 놓고 있는 줄 깨닫고 있는 분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까 싶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건, 집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분이건, 국어사전 한 번 제대로 들춰보는 일이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 예의 그 문제로 → 바로 그 문제로 / 다름아닌 그 문제로

 └ 예의 그 쾌활함은 → 예전 같은 그 밝음은 / 지난날 같은 그 시원시원함은

 

 한자말 '예'가 올바르지 못한 낱말이라 '보기'로 고쳐써야 한다면, 이 낱말이 둘째와 셋째 쓰임으로 국어사전에 실리는 일 또한 썩 올바르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첫째 쓰임부터 고쳐써야 하는 한자말이라면 둘째와 셋째 쓰임에서도 마땅히 고쳐써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예의 나폴리사람"이나 "예의 그 문제로"나 "예의 그 쾌활함은"처럼 말하는 이들은 어른들입니다. 어른 가운데에도 제법 나이가 든 분입니다. 젊거나 어린 사람은 이 말투를 잘 안 쓰거나 거의 안 쓰거나 아예 안 씁니다. 어른들 사이에서 지내는 동안 익숙해지고, 어른들한테 차츰차츰 배우면서 쓸 뿐입니다.

 

 아이들이건 젊은이들이건, 둘레 사람이 쓰는 말에 따라 저희가 쓸 말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도 배우고 반가운 말도 배우지만, 얄궂은 말도 배우고 짓궂은 말도 배웁니다. 곱고 싱그러운 글도 배우지만, 추레하고 메마른 글도 배웁니다. 가르치는 쪽에서는 미처 못 느낄 텐데, 미처 못 느끼는 사이에 물려주거나 이어주는 말투와 말씨와 말결이 외려 더 오래도록 남거나 깊이 파고들기 마련입니다.

 

 엊그제 전쟁문학 하나를 읽었는데, 싸움터에 나아가 간호사 일을 맡았던 아가씨가 고향나라로 돌아온 뒤 둘레 사람하고 도무지 어울리지 못합니다. 제 몸짓과 말씨 모두 싸움터 거친 몸짓과 말씨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강원도 산골짜기 민통선 안쪽에서 총부리 맞들고 죽느냐 죽이느냐 하는 막다른 벼랑에 내몰리면서 이태를 보내게 되었던 지난날, 가까스로 살아남아 사회로 돌아오는데 너무 낯설고 고달파서 다시 군대로 돌아가 말뚝을 박고 싶었습니다. 식구나 동무나 제 몸짓과 말투가 몹시 거칠어졌다며 깜짝 놀랄 뿐 아니라 싫어하고 꺼렸습니다. 군대 몸짓과 말씨를 씻어내기까지 무척 오래 걸렸는데, 아직 다 씻어내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 그러니까 나폴리사람들은

 ├ 그러니까 그 나폴리사람들은

 ├ 그러니까 바로 그 나폴리사람들은

 ├ 그러니까 말이지, 바로 그 나폴리사람들은

 └ …

 

 사회 흐름이 말을 바꿉니다. 나라 흐름이 말을 바꾸며, 집안 흐름과 마을 흐름이 말을 바꿉니다. 교사와 어버이가 쓰는 말에 따라 말이 바뀌고, 책에 적히고 신문과 방송에서 흘러넘치는 글에 따라 글이 바뀝니다.

 

 살아가는 매무새에 따라 말이 달라지며, 우리 삶자락을 저마다 어떻게 붙잡느냐에 따라 글이 바뀌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이 가꾸고자 애쓰는 매무새라면, 말뿐 아니라 생각과 넋 모두 아름다이 자리잡게 됩니다. 대충대충 또는 어영부영 살아가려는 몸짓이라면, 말뿐 아니라 생각과 넋 모두 대충대충이 되거나 어영부영이 되고 맙니다.

 

 삶 따로 말 따로인 적은 없습니다. 삶은 형편없는데 글은 훌륭한 적이 없습니다. 삶과 동떨어진 말인 적은 없습니다. 삶은 마구잡이로 굴리는데 글은 맑게 빛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내 일을 사랑하며 내 발 디디는 이 땅을 사랑하는 매무새를 지키는 이한테서 어설프거나 어리석거나 어줍잖은 말과 글이 튀어나오는 적이란 없었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내 일을 사랑하지 않으며 내 발 디디는 이 땅을 사랑하지 못하는 매무새로 나뒹구는 이한테서 즐겁거나 싱그럽거나 고운 말과 글이 샘솟는 적이란 없었다고 느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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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10:55ⓒ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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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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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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