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웬 망치소리?

[온고을 사람들33] 도서관 직업체험 3인의 이야기

등록 2009.07.23 12:49수정 2009.07.2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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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의 도서관은 북적인다. 평소보다 두세 배 늘어난 이용객들 때문이다. 덕분에 도서관은 방학동안이면 소리없는 전쟁을 치른다. 어항의 고요히 가라앉은 밑바닥과 같아 보이는 도서관,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잘 모르는 사람은 도서관에서 하는 일이란 핸디스캐너로 책의 바코드 찍는 일이 전부인 줄로 안다. 도서관에서 근무한다는 것, 전주의 한 시립도서관의 희망근로 근무자 3인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자 주>

아침 9시에 출근하면 일단 청소부터 시작한다. 대부분의 직장이 그렇듯이 말이다. 바닥을 쓸거나 닦는 일이 아니다. 이들이 청소해야 할 대상은 책장이다.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은 책이다. 더구나 요즘은 선풍기를 돌리니까 먼지가 많이 날리기 때문에 꼭 청소를 해야한다. 책에서 나오는 먼지가 시쳇말로 장난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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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면 가장 먼저하는 책장청소. 책에서 나오는 먼지가 하룻새 책장에 수북하다. ⓒ 안소민


2인 1조가 되어 사다리를 타고 책장꼭대기까지 올라가 물걸레로 책장과 선반을 깨끗이 닦는다. 이 날은 김영숙(31)씨와 김이환(28)씨가 한 조가 되어 책장을 닦았다. 한 사람이 책장 꼭대기를 걸레로 닦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책장 사이사이를 닦는다. 걸레를 다시 깨끗이 빨아다주기도 한다. 그리 넓은 도서관은 아니지만 모두 닦고 나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린다. 요즘같이 더운 날, 책장 닦는 것만으로 진이 빠질 지경이다.

청소를 마치고 난 뒤에는 책 분류를 한다. 어제 반납된 책들과 오늘 방금전까지 들어온 책들을 책장에 꽂는다. 책 분류가 처음에는 어려웠다. 일련번호도 숙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 지금은 많이 숙달되었다. 책만 봐도 어느 자리에 가야하는지 감이 '척' 올 정도라고.

'그까짓 도서관 정도야....'라고 생각했다

김영숙씨는 사실 도서관을 특별히 희망한 것은 아니었다. 희망근로를 신청할 때 내근근무하는 쪽으로 희망했는데 도서관으로 배정되었다. 처음에는 '도서관 정도야 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 보름 정도 해본 결과, 그 말은 쏙 들어갔다. 도서관이라고 우습게 봤다가 큰코 다친 셈이다.

오는 8월에 대학 졸업예정인 김이환(28)씨는 6월 15일부터 시작했다. 김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신청하게 되었다. 전에 아르바이트 했던 선거사무실보다는 수월하다. 그러나 역시 쉬운 일은 없다.


책을 나르거나 무거운 책을 옮기는 일은 역시 남자인 김씨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한다. 책 한 권 한 권의 무게는 그다지 무겁지 않지만 하루종일 들고날라야 하는 책의 무게감의 누적은 장마날 온 몸에 번지는 눅눅함과 같다. 피곤하다.

"힘을 쓰는 일에도 많이 도움이 되지만 남자라서 필요할 때가 있어요. 책상에 여직원이 있으면 우습게 보는 분들이 간혹 있거든요. 괜히 큰소리치기도 하고 트집을 잡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를 대비해서 제가 옆에 앉아있죠. 그러면 안 되는데…."

얼마 전에는 한 할아버지가 신문 복사문제로 직원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본인이 원했던 복사가 안 나왔다며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직원들이 사비로 대신 복사를 해주고 나서야 일은 마무리됐다. 가끔 그런 이용자들이 있어서 직원들을 긴장시킨다. 쥐죽은 듯 조용한 도서관이기에 소동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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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디에 어느책이 있는지 훤히 알고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참 많은 책들을 헤매고 다녔다. ⓒ 안소민


직장체험차 나온 신군자(23)씨는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다. 세 명 중 가장 늦게 합류했다. 전공이 문헌정보학이지만 사실 사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단다. 그러나 이번을 기회로 다시 사서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단다.

"가장 어려운 점은 책 분류하는 작업이예요. 일련번호 매기는 게 결코 쉽지 않더라구요.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 안에 주제가 있고 질서가 있거든요. 전공자인 저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책에 부착된 바코드 스티커는 사서가 직접 만든다. 또한 북트럭은 책장 복도 사이에 들여올 수 없다. 이용객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기 때문이다. 북트럭에서 책을 한아름 들고 와 하나하나씩 꽂는 작업을 반복한다.

온종일 아무말 안 할 때도 있어... '입'이 아닌 '몸'으로

점심시간. 12시부터 1시까지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군자씨는 오전근무만 하는 관계로 퇴근. 영숙씨와 이환씨는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온다. 다행히 모두 집이 가깝다. 근무시간 중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도서관으로 출근. 점심 후 포만감으로 인해 졸음도 밀려오고 피곤함이 '급' 몰려온다. 이럴 때 동료들과 커피 한 잔 마시며 수다라도 떨면 좋으련만 도서관에서는 그것도 힘들다. 역시 도서관 근무 중 힘든 일 중의 하나는 '묵언'일 것이다. 물론 필요한 말은 하지만 가급적 말을 하지 않는다. 어느 때는 온종일 아무 말 안 하고 지나갈 때도 있다. 입이 아닌 '몸'으로 일하는 곳이다. 도서관이란 곳은.

"처음에는 무척 따분했어요. 몸은 바쁘지만 머릿속은 왠지 지루하다는 기분이 들었죠. 하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덕분에 과묵해졌다는 영숙씨의 말이다.

오후가 되면 도서관은 갑자기 바빠진다. 특히 대출종료시간 한 시간을 앞두면 분주함이 절정에 달한다. 당일 안에 반납을 하기위한 이용자들이 갑자기 몰려들기 때문이다.

불황 반영하듯 '주식'관련 서적도 인기

요즘 인기있는 책은 소설류이다. 소설은 시기에 상관없이 꾸준히 인기있는 분야다. 요즘은 불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주식관련 서적을 많이 찾는단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수학이나 영어 관련 서적을 많이 빌리기도 한다.

"도서관 매너요? 예전에 비해 도서관 매너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도서관내에서 큰 소리로 전화하는 분께 양해를 구하면 언짢아하지 않고 순순이 말을 잘 들어주세요. 가장 꼴불견은 이용자를 꼽으라면 큰 목소리로 전화하는 분, 그 다음으로는 에어컨이 잘 나오는 구석에서 과자 먹으며 소곤거리는 학생들 정도랄까요."

때론 황당한 경우도 있다. 회원증 갱신을 위해 개인연락처를 물어보면 도리어 큰소리를 치는 이용자들이 있다. 남의 개인정보를 알아서 뭐에 쓸 거냐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한단다. 대부분 할아버지들이 그러한데 그런 분들에게 자초지종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야 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다. 같이 맞짱뜬다고 될 일이 아니다. 

도서관에 망치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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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들은 글루건으로 붙인다. 글루건으로 붙이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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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사람들이 도서관 책을 이렇게 쉽게(?) 다룬다는 것을. ⓒ 안소민


도서관에 있다보면 가끔 망치를 들어야할 때도 있다. 도서관에 웬 망치? 갈기갈기 찢기고 낱낱이 해부된 책을 고쳐주는 것도 이들의 임무다. 잘 나가는 인기서적일수록 망치 신세를 지기 쉽다.

우선, 책의 낱장을 잘 모아서 큰 스테이플러로 찍는다. 그리고 스테이플러가 박힌 뒷자국을 망치로 꾹꾹 눌러줘야한다. 이용자의 손이 스테이플러에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 뒤 그 자리를 투명시트지로 잘 감싸준다. 마치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듯한 모습이다. 스테이플러로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두툼한 책은 글루건을 발라 붙인다. 망치에 글루건까지, 공작소가 따로 없다.

작업을 하는 영숙씨의 손길이 재고 야무지다. 보아하니 하루이틀 솜씨는 아닌 듯 한데...

"여기오기 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죠. 그런데 여기 와서 배우게 되었어요. 이제 집에서도 어지간한 책 수리는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책을 아껴서 봐야겠다는 것이예요. 자기 책이 아니라고 너무 함부로 다루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도서관은 깨끗하고 조용하고 단정한 곳이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도서관처럼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쉬운 곳도 없다.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돌고 돌다 온 책은 돈만큼이나 더럽다. 책은 온갖 세균의 온상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깨끗이 해야 한다. 퇴근무렵까지 중간중간 물걸레로 닦아줘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과 안 친했던(?)이들이 믿고 싶은 사실은...

이환씨의 한 달 급여는 어떨까? 지난 달 15일에 시작했기 때문에 6월 말에 보름어치의 급여를 받아보았다. 급여의 30%는 재래시장 상품권으로 입금되고 나머지 14만8천 원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급여에 대한 만족도를 물어보니 그냥 웃기만 한다. '왜 사냐건 웃지요'가 아니고 이런 걸 보고 우문현답이라는 거다. 

영숙씨의 꿈은 유치원 교사이다. 대학에서도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자신이 도서관에서 일할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지만 이번 경험은 두고두고 좋은 재산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환씨 역시 마찬가지. 대학 다닐 때도 도서관과 별로 친하지 않았기에 도서관 근무가 처음엔 의외였다며 멋쩍게 웃었다. 역시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법.

길지않은 이번 도서관 근무를 통해 그들이 알게된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상엔 쉬운 일이란 없다'는 것과 '땀은 꿈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 전자는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이고, 후자는 '부디' 믿고 싶은 것이란다.

덧붙이는 글 | 선샤인뉴스(www.sun4in.com)에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선샤인뉴스(www.sun4in.com)에도 올립니다
#도서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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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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